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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진표율사 김제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

by 도생(道生) 2015. 6. 26.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 진표율사

4. 김제 금산사 미륵전 밑 없는 철 시루 위의 미륵불상

 

 

 

 

 

 

 

 

 

 

 

 

대우주의 통치자이시며 도솔천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께서 직접 강림하시어 진표대성사의 일심 정성을 찬탄해셨다.

 

"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 수미산(須彌山)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다." 하신 말씀처럼 천지를 주재하시는 미륵부처님의 조화권을 비롯한,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우주의 절대 자성(自), 심법(心法)이 회복된 진표대성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는 말씀이다.

 

 

 

도솔천의 미륵불께서 직접 강림하시어 친견하였고, 당신님 모습을 닮은 미륵 불상을 조성하여 미륵불의 진리를 세상에 펴라는 말씀을 받들어 진표대성사는 우주의 가을(방위로는 西, 오행으로는 金)을 열어주시는 미륵부처님의 강림 비밀이 담겨 있는 성지(聖地)로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군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금산사(山寺) 용추(용소龍沼) 연못을 메우고 미륵존불 모양의 불상을 조성하게 된다.

 

 

 

 

 

 

 

 

 

 

 

진표대성사는 금산사 앞의 사답(寺畓) 칠 두락(마지기) 정도 연못을 메우기 위해 흙으로 아무리 하여도 메워지지 않게 된다. 때마침 지장보살께서 나타나 연못은 숯으로 메워야 한다는 계시를 주고 떠난다. 진표대성사는 인근 지역에 눈병을 퍼트리고 숯을 가지고 와서 금산사 연못에 붓고 연못의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깨끗이 낫는다는 하자 금방 연못이 메워지게 된다.

 

 

그 큰 연못을 숯으로 다 메워지고 중앙부분에 우물 크기만 한 부분은 아무리 하여도 메워지지 않자, 큰 바위로 연꽃 모양의 석련대(연화대, 높이 1.67m 둘레 10m 이상))를 만들어 우물 크기의 남은 연못을 덮어버렸다. 그런데 밤사이 그 무거운 석련대가 수십 미터 밖으로 옮겨져 버리고 만다.

 

 

 몇 번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아도 또다시 석련대는 옮겨져 있게 되자 고민하는 진표대성사에게 밑 없는 시루를 걸고 그 위에 미륵 불상을 조성하라는 계시가 내려온다. 이에 무쇠로 된, 밑 없는 시루를 만들어 그 위에 우물 정(井) 자 모양의 받침목을 얹고 철로 된 미륵 불상을 세우게 된다. 실로 공사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서력 766년의 일이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 불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그것은 미륵 불상이 철수미좌(鐵須彌座, 철 솥, 무쇠 시루) 위에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진표와 나와 큰 인연(大緣)이 있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66:3),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가 석가모니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 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증산도 도전道典 2:30:12~13) 라는 말씀하셨다.

 

 

 

 

 

 

 

 

 

 

이는 대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시며, 미륵존불이신 증산(甑山) 상제님과 금산사에 미륵불상을 조성한 진표대성사와의 과거 큰 인연에 따라오셨고, 상제님의 존호인 증산(甑山)은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 불상을 떠받치고 있는 철수미좌(시루 甑 = 솥)가 바로 우주의 봄 여름철 설익고 미완성된 선천(先天)의 모든 문명을 총체적으로 익히고 성숙시켜 신천지 후천의 조화 세상의 만사지(萬事知) 문화를 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진표대성사는 김제 금산사 미륵전에 미륵 불상을 조성한 이후, 속리산 법주사와 금강산 발연사에 미륵 불상을 조성하여 미륵 도량을 세우게 된다. 더불어 점찰법회를 통해서 중생들이 전생과 이생에서 지은 악업을 닦고 십선업을 쌓아 미륵존불께서 이 땅 위에 오셔 펼치실 용화세계에 더욱 많은 중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미륵불의 계법과 복음을 전함으로써 미륵신앙을 대중화하고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평생을 바치게 된다.

 

 

 

 

 

 

 

 

 

 

진표대성사께서는 말년에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으며 살았다.

진리의 표상, 구도자의 표상, 참의 표상, 진표(眞表)대성사는 발연사 동쪽 큰 바위에 앉아 입적하였다.

제자들은 시체를 옮기지 않 공양을 하다가 해골이 흩어져 떨어지자 흙을 덮어 무덤으로 삼았다 한다.

 

 

 

 

『삼국유사』 「발연수석기鉢淵藪石記」 편(금강산 발연사 주지 영잠 스님이 돌에 새겨진 기록을 1199년 비를 세워 옮겨 새)

 

진표율사(眞表律師) 세상을 떠날 절의 동쪽 바위 위에 올라가서 죽으니 제자들이 시체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공양하다가 뼈가 흩어져 떨어지자 흙으로 덮어 묻어서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에 푸른 소나무가 바로 나더니 세월이 오래되자 말라죽었다. 다시 나무 하나가 났는데 뿌리는 하나이더니 지금은 나무가 쌍으로 있다. 대개 그를 공경하는 자가 있어 소나무 밑에서 뼈를 찾는데, 혹은 얻기도 하고 혹은 얻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율사의 뼈가 아주 없어질까 두려워하여 정사(丁巳, 1197) 9월에 특히 소나무 밑에 가서 뼈를 주워 통에 담았는데 3가량이나 되었다. 이에 바위 위에 있는 쌍으로 나무 밑에 돌을 세워 뼈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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