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3. 동서양 문명과 문화, 사상을 융합한 진정한 '최초의 세계인' 이마두 마테오리치 신부님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서방(西方)에서 온 현자(賢者)' 또는 '최초의 세계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기독교(가톨릭) 예수회 선교사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절대로 그냥 붙인 수식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소도시 마체라타 시장의 13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난 이마두 신부님은 시장직을 계승할 수 있었으나,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가톨릭 예수회 수도원 수사(修士)가 된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이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 한 서약은 "세상의 명리(名利)를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설교를 위하여 어느 나라에서든 살겠습니다."였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세상에 태어났던 16세기 서양은 종교개혁이 일어나 북부 유럽은 신교(新敎)가, 남부 유럽은 구교(舊敎) 가톨릭이 차지해 지형도가 나뉘어져 있었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북부 유럽 신교(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일어난 가톨릭 내부의 혁신으로 생긴 것이 로욜라가 창시한 예수회였다.
예수회는 기도 등 영성 수련을 통해 하느님과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기치 아래 해외 선교에 중점을 둔 조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구습을 과감히 폐지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채택하였다.
예수회는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세 가지 서원을 하고, 교황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군대적 명령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재양성과 선교활동, 신앙심의 확립 및 외교력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 등을 도모하는 조직이었다.
19세 되던 해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던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인도의 고아에서 4년간 머무르고, 30세가 되던 1582년 중국의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을 갖고 있던 중국인들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말과 글을 익혀야 한다고 판단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어려서 배운 기억법과 노력으로 중국말과 글에 능통하게 된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가톨릭의 사제에 해당하는 계층이 승려였으므로, 마테오 리치 신부님도 불교 승려의 복색을 갖추고 선교를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동서양의 벽을 허문 우주 역사의 큰 공덕
1 이마두가 천국을 건설하려고 동양에 왔으나 정교(政敎)에 폐단이 많이 쌓여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2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3 이마두의 공덕이 천지에 가득하니 신명계의 영역을 개방하여 동서양의 신명들을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 자가 이마두니라. 4 선천에는 천지간의 신명들이 각기 제 경역(境域)을 굳게 지켜 서로 왕래하지 못하였으나 5 이마두가 이를 개방한 뒤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었나니 6 이것이 오늘의 서양 문명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3:1~6)
동서양 문명과 문화, 사상을 융합한 진정한 '최초의 세계인' 이마두 마테오 리치 신부
서양 문명을 동양에 전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이미 사제 시절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독일 출신의 클라비우스 교수에게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을 배웠으며 해시계, 자명종, 지구의 등의 제작법을 전수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구의, 천체의, 프리즘, 해시계 등을 남경에서 황족인 건안왕에게 선사한다.
북경에 도착해서는 세계지도와 자명종, 성화(聖畵), 프리즘, 클라비코드, 수학책을 포함한 서적 등 20여 가지를 공품 목록을 작성해서 황제께 올린다. 그리고 황궁의 고장 난 자명종을 수리한다는 이유로 정기적으로 황궁에 드나들게 되었고, 마테오 리치 신부는 천문을 맡아보는 흠천감에 유숙하며 관상의(觀象儀) 제작법을 가르치게 된다. 또한, 스승 클라비우스의 일궤측시학과 관상의, 실용수학 등을 한문으로 편역하였다.
중국인들을 놀라게 한 세계 지도 '곤여만국전도'
중국 사람들에게 실제 크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는 큰 충격이었다. 지도에는 유럽, 아프리카,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등 모든 나라가 그려져 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으로 알던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변방에 있으며 천하도에 그려진 중국의 크기보다 더 작다는 사실에 놀라, 이 지도 내용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달력, 시헌력(時憲曆)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새롭게 만든 그레고리 역법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그레고리 역을 한문으로 번역해 서양의 천문학과 역학을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청나라에서는 1644년부터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한 '시헌력(時憲曆)'이 시행되었다.
시헌(時憲)은 마테오 리치 신부의 호(號)이며,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역법이다. 조선에서도 1653년(효종4)부터 조선말까지 이를 사용하였으며, 1895년(고종32)에 태양력이 채택되었을 당시 시헌력도 같이 참용(參用) 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구력(舊曆)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동양에 전한 서양의 새로운 학문의 세계
마테오 리치 신부는 학창시절 라틴어와 헬라어를 연상에 의한 기억법으로 익혔다. 어떤 책이든 한번 읽으면 모조리 외울 수 있었으며, 이런 천재적인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중국에서 『기법(記法)』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법학을 전공하다 사제가 된 그는, 신학 외에도 수학,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 박학다식하기 이를 데 없어 중국인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당시 중국의 천문학과 역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은 아무런 증명도 없이 단지 명제를 주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유로 진사에 급제한 서광계와 더불어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 15권 중 첫 6권을 『기하원본』이란 이름으로 출간한다. 이 책은 동양인에게 수학적, 논리적 사고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동양에 전해진 서양의 예술의 세계
마테오 리치 신부가 황제에게 진상한 명품 가운데 클라비코드(피아노의 전신)라는 악기가 있다. 황제는 악관들로 하여금 선교사에게 연주법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당시 중국의 전통 악곡이 5음 14성으로 되어 있고 반음 처리가 되지 않아 음계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진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태감들에게 유럽의 음계와 연주법을 전수하기도 한다.
또한, 이탈리아 민요인 '아니무치아'와 '나니노'를 가르쳤으며, 그는 '서금곡의 팔장'이라는 한문곡을 지었는데 이 곡은 중국인의 심성과 사고에 부합하는 가사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후 클라비코드는 오랫동안 중국의 악기로 사용되게 된다.
한편, 그는 투시법에 의한 원근법을 적용하는 화법도 전해 주는데, 처음 그림을 접한 황제는 그림이 살아 있다며 무척 놀랐다고 한다.
동양의 문화를 서양에 전하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어를 배우고 한문을 익혔으며, 중국의 관습과 법을 연구하였다.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특히 유학을 공부하여 라틴어로 번역하는 등 유교와 천주교 교리의 유사성에 천착(穿鑿)하였다.
중국에서 『사원행론四元行論』이라는 책을 펴내 우주관과 인식론 등 당대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갖춘 사대부들과 토론을 벌이며 학식과 인품을 널리 인정받는 등 푸른 눈을 가진 마테오 리치 신부의 열정이 동양문화의 정수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건곤체의乾坤體義』, 『동문산지同文算指』, 『기하원본幾何原本』, 『변학유독辯學遺牘』, 『이십오언』, 『천주실의』, 『기인십편』, 『교우론』, 『기법記法』 등 많은 한문 저술을 남겼으며, 말년에 중국 선교 활동 보고 내용을 기록한 『예수회와 천주교의 중국 진입』을 이탈리아어로 작성한다.
특히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일차적으로 기독교 교리 문답서로 알려졌지만, 그 내용은 동서 교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획기적인 저작이다. 그것은 동서양의 철학적, 종교적 사상에 대한 핵심적 논변과 융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앞에 계신 것같이 하고 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신이 있는 듯이 한다." (논어),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중국인의 제례를 윤리적으로 이해하였다. 조상 숭배는 우상 숭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이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조상에게 효를 행하는 도덕적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테오 리치 신부님의 견해는 사후 완전히 무시되었고, 조상 제사나 공자 배례 등에 대한 찬반 문제인 '전례(典禮) 논쟁'을 유발시켜 결국 기독교의 중국 선교 자체가 수포로 돌아가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오늘날 유비쿼터스 문화로 발전하는 컴퓨터와 디지털 문화의 기반은 0과 1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2진법이다.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2진법을 발견하면서 세계 최초로 사칙연산(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을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하는데, 사실인즉슨 2진법이란 태극의 궤의 원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간 친구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보낸 편지에서 우연히 두 장의 '태극도'를 입수하게 되고, 그는 태극도 64괘의 배열이 바로 0에서 63에 이르는 이진법 수학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원리에서 계산기 작동의 힌트를 얻었으며, 이진법의 원리는 오늘날 컴퓨터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코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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