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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발명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명언

by 도생(道生) 2015. 11. 1.

세상을 바꾼 천재발명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명언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후 최대의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어둠을 밝혀주는 인류의 생활을 크게 바꾸어 놓은 인공적인 불 '전구'의 발명일 것이다. 전구를 발명하지 않았지만, 인류 역사는 전구를 발명하였다고 알고 있는 시대를 바꾼 천재발명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1847 ~ 1931)

 

토마스 에디슨이 발명한 제품은 무려 1,000여 가지 이상의 제품에 이르며 이런 제품은 에디슨이 직접 발명하거나 개량하여 특허를 등록하였다. 물론 먼저 발견한 제품을 개량하여 특허를 등록한 것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에디슨의 노력으로 인류의 생활이 크게 바뀐 것도 사실이다.

 

 

 

 

 

 

 

 

백열전구와 같은 일부 제품은 에디슨의 독창적인 개발은 아니지만, 또 그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에디슨과 같이 실행하였을 것이다. 제품의 발명이 아닌 모방과 개량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창조적 모방이라 할 수도 있다.

 

현대문명 속에 지구촌 절대 대다수는 에디슨과 같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삶이 윤택하여졌고 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에디슨의 말처럼 그가 발명한 제품은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다. 반복되는 실험과 검증을 통해 만들어진 노력의 산물이었다.

 

 

 

 

 

 

 

 

토마스 에디슨은 어려서부터 호기심과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였다. 일례로 달걀을 품어 부화가 되기를 시도하였던 일화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선천적인 장애와 어릴 때 앓은 질병으로 약간의 청력 장애가 있었고, 난독증(難讀症, 글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학습 장애)과 주입식의 틀에 박힌 학교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 에디슨은 출석일 수가 불과 3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등학교 중퇴로 정규학교 교육을 그만두게 된다.

 

많은 책을 읽고 기차에서 신문과 잡지 등을 팔며 생활하던 에디슨은 기차에 치일뻔한 역장의 아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철도 전신기사로 일하게 된다. 

 

 

 

 

 

 

 

 

20살이 넘어 에디슨은 전기투표기록기를 발명하게 된다. 자신이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실용적인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은 에디슨이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적인 제품을 발명하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

 

30살이 된 토마스 에디슨은 그의 발명의 산실이 되는 멘로파크 연구소를 설립하게 된다.

1876년 설립한 뉴저지의 멘로파크 실험실은 에디슨의 발명품 대부분이 만들어진 곳이다.

 

 

 

 

 

 

 

 

에디슨의 발명품은 그가 1868년에 최초로 발명한 (국회) 전기토표기록기를 비롯하여 주식시장 표시기, 인자 전신기, 전동타자기, 4중 전신기, 탄소전화기, 축음기, 백열전등, 전구용 필라멘트와 소켓과 스위치, 영사기, 에디슨 축전기, 에디슨 녹음기, 에디슨 라디오, 축음기, 에디슨 다리미, 전기기관차, X선 투시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에디슨이 특허출원한 백열전구와 소켓, 퓨즈, 전기 스위치 등 발전과 송전, 배전 등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었다.

어둠을 밝혀줄 전기제품에 발명으로 말미암아 1882년 미국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중앙발전소가 가동되었고, 에디슨 전등회사가 만들어진다.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은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후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인공적으로 전기를 만들어 어둠을 밝히는 제품으로 인류의 생활문화가 상전벽해 하는 분기점이 된다.

 

에디슨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창업주이기도 하다.

1,000여 가지 이상의 많은 물건을 발명한 천재 발명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을 혹자는 다른 사람의 발명품을 모방하거나 사업주로서 직원이 개발한 발명품을 도둑질하였다고도 한다.

 

이런 세간의 말을 누구보다도 에디슨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산업과 상업에서 누구나 남의 것을 훔치기 마련이다. 나 자신도 많은 것을 훔치면서 살았다. 하지만 난 어떻게 훔치면 좋은지 그 방법을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에디슨은 업적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노벨상은 받지 못하고 만다.

 

 

 

 

 

 

 

 

백열전구 발명 특허

 

1878년 에디슨은 투자자들을 모집하여 에디슨 일렉트릭 라이트 컴퍼니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탄소 필라멘트를 사용하는 백열등을 발명(특허 출원)하였다.

 

이보다 앞서 물리학자인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볼타 교수가 1800년에 최초로 빛나는 전선을 만들었었고, 영국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는 인류 역사 최초의 전구 '데이비 램프'를 만들었으나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산업용 등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헨리 우드워드, 매슈 에번스, 모자스 파머, 윌리엄 소여, 워런 드 라뤼, 윌리엄 그로브, 존 웰링턴 스타, 하인리히 괴벨, 등이 백열전구를 만들었으나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구로는 실용화시키지 못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여 특허를 출원한 1878년 에디슨보다 10개월 앞서 영국의 조지프 스완도 백열전구 개발에 성공한다.

조지프 스완은 에디슨이 자신이 만든 전구를 도용했다고 고소하였으나 패소하고 만다. 이후 에디슨은 조지프 스완의 특허권을 사들여 백열전구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고 개량하여 상업화에 성공한다.

 

19세기 동시대에 창조적인 생각을 시작으로 세계의 여러 사람이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창조적으로 모방하고 보완하여 위대한 발명품 '백열전구'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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