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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환단고기 -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역사 위만조선

by 도생(道生) 2016. 5. 26.

황국사관과 식민사관으로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가 조작한 역사 위만조선

동북아 5대 역사 조작극 - 일제 식민사학의 위만조선

환단고기 - 환단고기가 전하는 역사의 진실, 위만조선이 아니고 위만 정권이다.

 

 

 

 

 

 

 

 

 

 

 

 

 

명치(메이지)유신 성공으로 일본 왕에서 일본 천황으로 격상된 일본 제국주의는 먼저 자신의 뿌리를 조작합니다.

일본 왕가(王家)는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내려왔다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논리는 황국사관을 만들었고, 동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서양 제국주의의 부도덕한 모습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역사와 문화를 모두 조작 왜곡 말살하여 사람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괴물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입니다.

 

 

 

 

 

 

 

 

 

 

 

단군조선(고조선)의 국가 변천과 멸망 과정

 

 

조선(朝鮮, 삼한관경제 1048년간 지속) → 삼조선(三朝鮮,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 860년간 지속) → 대부여(大夫餘 188년간 지속)

 

 

단군조선(고조선)삼한관경제에서 삼조선 체제로 바뀌었고,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게 됩니다.

 

그러다가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이 각각 독립 국가로 운영되다가 진조선은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로 흡수되고, 막조선은 번조선에서 넘어온 대부호 최숭에 의해 낙랑국(樂浪國)이 들어섭니다.

 

 

단군조선(대부여)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번조선은 한漢나라에서 망명해온 위만이란 자에게 나라를 강탈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47분의 단군께서 2096년간 다스리던 조선(고조선)은 역사의 문을 닫게 됩니다.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역사 위만 조선

위만은 누구인가?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에게는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란 생년월일(生年月日)이 같은 노관이란 죽마고우가 있었습니다. 

한漢나라 창업에 공을 세운 노관은 한漢나라 황제가 된 유방으로부터 연나라 왕으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한고조(漢高) 유방이 죽자 여태후는 한漢나라 창업공신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하게 되고, 연나라 왕으로 있던 노관은 가혹한 숙청을 피해 흉노로 도망가 버립니다. 이때 연나라 왕 노관의 부하로 있던 위만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하들과 함께 연나라와 인접한 번조선으로 도망칩니다. (서기전 195년) 

 

 

 

번조선의 준왕은 조선의 백성으로 위장한 위만에게 서쪽 변방 상하 운장을 수비하는 장수로 임명하였으나, 1년 동안 세력을 키운 위만은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합니다. (서기전 194년) 

 

 

한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중국 한漢족 출신의 쿠데타이며 위만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대륙을 호령했던 옛 조선(단군조선)의 한쪽 귀퉁이를 강탈한 위만 정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검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 모두 단군조선은 신화이며 한漢나라(연나라) 유민으로 번조선에 들어와 나라를 강탈한 위만 정권이 한반도 최초의 국가라고 합니다.

 

위만 정권은 손자 우거까지 86년간 통치하였는데 일제 식민사관은 이것을 마치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 위만조선으로 조작해 놓았습니다.

 

 

 

번조선의 74대 준왕(기준)은 위만에게 쫓겨나 조선의 유민들과 함께 망명길에 올라 황해(黃海)를 건너 한반도 금강(군산) 유역으로 오게 됩니다.

 

한반도로 건너온 준왕은 청주 한씨의 시조가 되며, 금강 하구에는 임금님이 오신 곳이라는 어래산(御來山)이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며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위만조선의 역사 실체입니다.

 

 

 

 

 

 

 

 

 

 

 

 

위만은 한漢나라에서 도망 나와 번조선의 왕위를 찬탈한 자로서 손자 우거왕 때 이르러 한漢나라 무제의 침입과 정권 지도층의 분열로 결국 망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제 식민사관이 조작한 또 다른 역사 한사군漢四郡 한반도 주둔설이 나오게 됩니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안정복(1712~1791)은 "위만은 나라를 찬탈한 도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1858~1932 선생은 "위만은 한 명의 강도에 불과하다."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은 "위만조선은 변강(邊疆,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땅) 침략사로 다루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위만조선의 실체

 

 

 

재위 19년 경진(단기 2113, BCE 221)에 기비(箕丕)가 홍서(제후나 왕공, 귀인의 죽음을 이르는 말)하자 아들 준(準)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번조선 왕으로 책봉되었다.

 

 

재위 45년 병오(단기 2139, BCE 195)년에 연나라 노관이 한漢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달아나자 그 일당인 위만이 우리나라에 망명을 구하였다. 임금(해모수 단군)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으나, 병이 들어 능히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셨다.

번조선 왕 기준이 (물리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치고 마침내 위만을 박사(博士)로 삼고 상하 운장을 떼어 주어 지키게 하였다.

환단고기 역주본 북부여기 상 中

 

 

 

 

 

 

 

 

 

 

기비가 세상을 떠나고 경진(단기 2113, BCE 221)년에 아들 기준(箕準, 번조선 75세 왕)이 즉위하였다.

정미(단기 2140, BCE 194)년에 떠돌이 도적(유적流賊) 위만에게 속아 패하여 마침내 배를 타고 바다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환단고기 역주본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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