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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황제(명성황후)

by 도생 2016. 10. 1.

근세조선 26대 왕이며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황제 - 중전 민씨(명성왕후 → 명성황후)

 

 

 

 

 

 

 

 

 

 

 

 

1895년 조성의 국모 중전 민씨가 일본 자객의 칼에 의해 무참하게 시해된다.

중전 민씨(명성황후)가 승하하자 일본 제국주의는 고종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폐서인으로 강등시켰다가 고종의 명에 의해 빈으로 몰려진다. 

 

1897년 중전 민씨에게 명성왕후의 시호가 내려지고, 1919년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황제가 승하한 후 명성태황후 시호가 올려진다.

 

 

 

 

 

 

 

 

 

 

 

 

 

 

1896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조선의 26대 왕 고종은 세자(순종)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여 약 1년간 머문다.

 

 

 

19세기 말 조선은 동서양 제국주의로부터 통상수교를 요구받는다.

나라의 문을 쉽게 안 열어주자 동서 열강은 침략과 약탈에 이어 불평등 조약과 동학 농민혁명 때는 백성 수십만 명을 학살하고,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는 등 내정간섭을 넘어 조선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선포되기 전 이응준이 태극기의 원형을 처음 제안하였다고 전하며, 1882년 조미 수호통상과 박영효 등이 일본 수신사로 건너갈 때 나라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처음 사용하였다.

 

조선의 26대 왕 고종은 1883년 3월 6일 태극기를 조선의 국기로 선포한다.

흰 바탕에 중앙의 태극과 그 주위를 건곤감리 사괘가 둘러싸고 있다.

 

 

 

 

 

 

 

 

 

 

 

 

 

 

조선왕조는 임금의 깃발, 즉 어기(御旗)로 태극 팔괘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태극기의 유래는 바로 한민족의 위대한 조상 배달국 5대 태우의 천황의 막내 아드님이신 태호복희씨가 팔괘를 처음 그리면서 유래됐다.

 

 

우주의 시작인 태극과 만물의 근원이며 생성변화를 일으키는 천지일월(건곤감리, 하늘 땅 물 불)이 그려진 태극기는 우주와 인간이 역사가 하나의 그림 속에 그려진 것이다.

 

 

 

조선은 유학(성리학)의 나라다.

유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공자는 유학을 집대성한 분이고, 실제 유교와 도교 사상의 시조가 바로 배달국 태호복희씨다.

 

태호복희씨는 중국에서는 인류문명의 시조로 받들어지고 있고 한족(漢族)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태호복희씨는 명백한 한민족의 조상이며 실존 인물이다.

 

고종과 박영효 등이 태극기에 다른 의미도 부여하였지만 태극기는 우주의 섭리와 인간 역사의 섭리가 오롯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풍전등화와 같은 이러한 상황에서 외세 열강에 맞서 1897년(고종 34)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다.

 

종은 1897년 10월 12일 제후국에서 황제국(천자국)으로 격상하고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며 자주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알린다.

 

조선 고종 34년에 새로 정한 우리나라 국호가 바로 대한제국이다. 태극기가 대한제국 정식 국기로 사용되었다.

 

 

 

 

조선의 26대 왕 고종 이희는 원구단(환구단)에서 하늘의 상제님께 제천의례를 올리며 대한제국 초대황제로 즉위한다.

연호는 광무(光武)다. 덕수궁을 황궁으로 하여 왕의 복식도 황제의 지위에 맞는 황룡포로 바꿨다.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일본 제국주의는 원구단 자리에 경성철도호텔(조선호텔)을 지어 원구단을 훼손하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갔다.

1904년(고종 41)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황제를 압박하였다.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국가 재정권을 박탈하고 일본이 조선의 필요한 땅을 언제든지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긴 1차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한다.

 

 

1905년(고종 42)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또다시 압박하며 2차 한일협약이 강제로 맺는다.

바로 을사늑약이다.

 

 

 

 

 

 

 

 

 

 

 

 

 

 

1907년(고종 44)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것인 만큼 부당하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시작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907년 헤이그에 밀사 사건이다.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일본 제국주의와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가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다.

조선의 26대 왕이며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황제는 재위 46년 1907년 7월 20일 순종황제에게 양위하며 강제 퇴위 된다.

 

 

일본 제국주의 무력과 거기에 빌붙은 친일파 세력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빼앗는 한일강제병합을 체결시킨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국권이 침탈된 경술국치로 조선왕조 519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는다.

 

 

 

 

 

 

 

 

 

 

 

 

고종의 왕비이며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를 무참하게 시해한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까지 빼앗고 말았다.

나라를 빼앗고 황실을 왕으로 격하시킨 일제는 대한제국 황족을 말살시킨다.

 

대한제국 초대황제 광무황제(光武太皇帝)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식혜를 마시고 승하한다.

고종황제 승하와 독살설은 1919년 3·1 만세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대한제국 광무태황제 이희는 대한제국이 망한 후 묘호와 시호가 붙여졌다.

묘호는 고종(高宗)이며 시호는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광무태황제(高宗統天隆運肇極敦倫正聖光義明功大德堯峻舜徽禹謨湯敬應命立紀至化神烈巍勳洪業啓基宣曆乾行坤定英毅弘休壽康文憲武章仁翼貞孝光武太皇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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