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개벽중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이강훈 원심창 백정기 의사 육삼정 의거

by 도생(道生) 2017. 5. 6.

한국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비밀결사조직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 단원 

이강훈 의사, 원심창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 의거

 

 

 

 

 

 

 

 

 

 

 

 

 

일제강점기 무장투쟁을 하던 독립군 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독립투쟁 방식의 차이 때문에 때론 대립하며 분열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학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강력한 무장투쟁으로 조국의 자주독립을 이루겠다는 열망은 누구나 똑같았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도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누구보다 무장투쟁에 앞장섰던 분들이다.

 

 

권력 등에 지배받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아나키스트를 세상에서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면서 소위 무정부주의자라고 부른다.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약산 김원봉 선생 등이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며 투쟁했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이강훈 의사, 원심창 의사, 백정기 의사는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비롯한 일본 수뇌부가 상해 홍구에 있는 일본 요정 육삼정에서 중국인 친일파들을 초대해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강훈, 원심창, 백정기 의사는 폭탄을 투척하여 주살하려다 발각되어 체포된다.

 

이강훈, 원심창,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 의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우리의 자주독립의지를 동포와 중국인을 비롯하여 세계만방에 다시 한번 크게 각인시켰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이강훈 의사는 1903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한동안 활동한다.

 

북간도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후진을 양성한다. 

1932년 상해로 들어온 이강훈 의사는 아나키스트연맹에서 활동한다.

 

 

 

1933년 3월 17일 주중 일본공사를 주살하기 위한 육삼정 의거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40년 징역 8년 11개월로 감형받고, 1942년 형기가 끝났지만, 일제는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강훈 의사를 풀어주지 않았다. 무기한 예방구금 판결을 받고 있던 중 1945년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하고, 1945년 10월 10일 출옥한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원심창 의사는 1906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했다.

평택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동학교 2학년 재학 중 학교를 그만둔다.

1923년 일본 도쿄의 니혼대학 사회과에 입학하다가 학비 문제로 자퇴한다.

 

원심창 의사는 아나키스트 최초의 노동조합 동흥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일본과 중극 등지를 오가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강훈은 그 즈음 일본의 아나키스트 등을 접하면서 무정부주의에 심취한다. 

 

 

 

1933년 3월 17일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백정기, 이강훈 의사와 함께 주중 일본공사를 주살하기 위한 육삼정 의거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45년 무기징역에서 20년형으로 감형 받았고 8.15광복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다.

 

 

 

 

 

 

 

 

 

 

 

 

 

"나의 구국 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 전 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 평화 위에 세계 일가의 인류 공존을 이룩함이니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주시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백정기 의사는 1896년 전라도 부안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였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했다.

 

서울로 상경한 백정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만주와 조선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던 백정기 의사는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동경 대지진이 발생하여 중국으로 간다.

 

 

 

1928년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국가 아나키스트 모임인 동방 무정부주의자연맹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다.

1932년 3월 17일 주중 일본공사를 주살하기 위한 육삼정 의거를 준비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일본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34년 6월 5일 지병이 재발하고 악화되어 옥중에서 순국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