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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노구교사건 일제의 중국본토 침략전쟁 중일전쟁

by 도생(道生) 2017. 5. 9.

일본 제국주의가 조작한 사건 노구교사건

일제의 중국 본토 침략 전쟁 중일(中日)전쟁

 

 

 

 

 

 

 

 

 

 

 

 

 

일제가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중국 정부는 수도 난징을 떠나 충칭으로 천도한다.

중국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중일전쟁을 피해 창사, 광저우, 유저우, 치장으로 옮겨 다녔다.

 

 

중국 공산당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일제가 저지른 중일전쟁에 대항하기 위해 국공(國共)합작을 실시하여 일제와 전쟁을 벌인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하여 일제와 중일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서로 싸운다.

 

 

 

 

 

 

 

 

 

 

 

 

일제는 1932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허수아비 왕(집정)으로 세우고 만주국을 건국하여 만주 일대를 점령했다.

1937년 7월 7일 노구교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군 지역에 총알이 날아오고 용변을 보러 간 병사를 행방불명됐다고 우긴다.

노구교 사건을 조작한 일제는 중국군의 도발 행위로 규정하고 보복공격을 감행하여 노구교를 점령한다.

 

 

 

7월 11일 중국은 일본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협상을 타결됐으나, 호시탐탐 중국본토 침략을 엿보던 일제는 만주의 2개 여단 병력, 조선의 1개 사단 병력, 일본 본토의 3개 사단 병력을 충원하여 7월 28일 중국 본토 침략 전쟁,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는 1937년 7월 7일 노구교사건을 조작하였고, 일제는 이를 빌미 삼아 7월 28일 전면적으로 중국 본토를 침략하며 중일전쟁을 벌이면서 우리 항일독립군 부대의 만주 지역 무장독립투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일제가 중국본토를 침략하면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소련의 스탈린은 일본과의 전쟁을 벌이면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조선인)들이 일본과 내통하거나 가담할 것을 우려해 강제이주를 결정한다.

 

 

1937년 9월부터 12월까지 고려인 약 18만 명을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이주시켰다. 강제이주하는 과정과 도착 직후 추위와 굶주림, 질병 등으로 우리 동포 약 2만여 명이 죽어갔다.

 

 

 

 

 

 

 

 

 

 

 

 

일제가 중국 본토를 침략하는 중일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조선은 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만들고 조선을 병참기지화하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인적·물적 수탈과 피해는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엄청나게 커졌다.

공출(供出)이라는 명분으로 무조건 강탈해서 갔고, 위안부, 징용, 징병 역시 강제적으로 동원됐다.

 

 

 

 

 

 

 

 

 

 

 

 

일제는 노구교사건을 조작하여 중국본토를 침략하여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천인공노할 난징대학살을 자행하면서 전선을 동남아시아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일전쟁의 전선이 고착화되고 장기화하자 일본 제국주의는 무리수를 둔다.

 

침략욕이 강한 일본 제국주의는 새로운 돌파를 찾기 위해 1941년 12월 9일 미국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중일전쟁은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선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가 무조건 항복하면서 중일전쟁이 끝이 나고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간에 내전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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