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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

by 도생(道生) 2017. 5. 14.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日章旗) 말소 사건

 

 

 

 

 

 

 

 

 

 

 

 

 

42.195km를 완주하는 마라톤을 흔히 인간의 신체적 한계와 정신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라고 말한다.

 

마라톤 경기는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까지 인간의 몸과 정신에 끊임없이 가해지는 고통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강인한 인내심으로 극복하고 몸과 마음의 한계를 뛰어넘는 운동경기로 마라톤을 올림픽의 꽃이라고 한다.

 

 

올림픽 마라톤 경기는 1회 대회 때부터 정식 경기종목이었지만, 올림픽을 개최하는 지역에 따라 40km에서 41.86km까지 다르게 적용되었다. 

 

42.195km의 올림픽 마라톤은 1908년 제4회(하계올림픽) 영국 런던 올림픽에서 최초로 시행되었고, 5회와 6회 올림픽은 약간의 차이가 나는 거리로 마라톤 경기를 하였다. 그리고 1924년 제8회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 42.195km가 올림픽 마라톤 정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은 1936년 8월 13일 자 조선중앙일보와 1936년 8월 13일과 25일 동아일보가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운동복 가슴 부위에 새겨진 일장기를 인위적으로 지운 사건이다.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 영웅 손기정 선수(1912~2002) 선수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육상대회에서 우승하였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한다.

압록강 건너 중국 단둥에 취직한 손기정 선수는 차지 때문에 매일 신의주에서 단둥까지 뛰어갔다 뛰어왔다. 

 

 

 

 

 

 

 

 

 

 

 

 

1931년과 1932년 육상경기에서 2위에 입상하여 체육특기생으로 양정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전문적인 육상선수로 교육을 받으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13번의 마라톤 대회에서 10번을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

 

손기정 선수는 1935년 3월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할 일본 마라톤 대표를 뽑는 대회에서 당시 세계 신기록보다 5분여가 빠른 2시간 26분 14초의 기록을 세운다. 4월에 개최된 마라톤대회에서는 2시간 25분 15초의 기록을 세운다.

 

 

 

 

 

 

 

 

 

 

 

 

손기정 선수는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당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는 전 대회 우승자였던 아르헨티나의 우안 카를로스 자바라도 참가하였다.

베를린 마라톤에서는 손기정 선수가 1위, 2위는 영국의 하퍼, 남승룡 선수가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 손기정과 남승룡은 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와 3위를 하였으나, 결승선을 통과한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두웠다. 손기정 선수는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이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마라톤 시상대에 올라서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는 일본 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국기 게양대에 올라가는 일장기를 외면한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딛고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 인간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얼굴은 어둡고 슬픈 표정이 역력했다.

머리에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는 민족의 아픔을 가리듯 손에 든 월계관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손기정 선수의 운동복 오른쪽 복부에 일장기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마라톤 우승 시상대에 선 손기정 선수의 운동복 가슴 부위에도 일장기가 새겨져 있었다.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은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장면 사진이 게재된 일본 주간지 아사히 스포츠 기사를 복사하여 1936년 8월 13일 자 신문에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 가슴 부위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서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8월 25일 자 신문 기사에 또다시 손기정 선수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워서 신문을 발행했다.

 

 

1936년 8월 5일 제7대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 총독은 일장기 말소 사건을 보고 받고 대노하면서 신문사와 관련자들이 고초를 당한다.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9일부터 무기정간에 들어갔다가 1937년 6월 3일 복간된다. 

조선중앙일보 역시 휴간했다가 1937년 내부 문제로 폐간된다.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동아일보 현진건 사회부장, 신낙균 사진 과장, 백운선, 서용호, 이길용, 장용서, 임병철 기자, 이상범 화백과 일장기가 지워진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월간 신동아에 게재한 최승만 부장과 송덕수 기자도 잡혀갔다.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말미암아 동아일보 송진우 사장과 장덕수 부사장, 김준연 주필, 설의식 편집국장 등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관련자들은 40여 일간 옥고를 치르고, 언론기관에 절대 참가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쓴 다음에 자유의 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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