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최정예부대 관동군사령부와 간도특설대

중국 대륙 침략 전진기지이며 일본 왕 직속의 일본군 최정예부대 관동군사령부와

민간인과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한 만주국 특수부대 간도특설대

 

 

 

 

 

 

 

 

 

 

 

 

 

 

일본 제국주의 군대, 즉 일본군은 일본 천황의 군대이며, 오직 일본 천황을 위해 만들어진 군대다.

만주국을 세운 일본군 최정예부대 관동군사령부를 포함하여 모든 일본군은 일본 왕(천황)의 직속이었다.

 

일본 천황이 곧 국가이며 군대도 일본 천황의 군대이며, 일본 국민도 천황의 신민(臣民)이다.

 

 

 

일본군 최정예부대 관동군사령부는 만주국을 지배한 최고 통치기관으로 중국 침략의 전진기지였다. 

만주국(滿州國)은 일본 왕 직속의 최정예부대 관동군사령부가 주도하여 중국 침략을 위해 허수아비로 세운 괴뢰국가다.

 

만주국에 있던 봉천군관학교와 육군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를 비롯하여 육군비행학교 등의 출신들은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한 일제의 황군으로 일제가 침략야욕을 채우기 위해 세운 장교 양성 학교다.

 

 

 

 

 

 

 

 

 

 

 

 

일제는 청일전쟁에 승리하면서 랴오둥(요동)반도를 손에 넣었으나 3국 간섭(러시아, 프랑스, 독일)으로 포기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는 러일 강화조약(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한다.

이때 러시아의 조차지(租借地)였던 요동반도를 넘겨받은 일본은 관동주(關東州)를 바꾸고 군사, 사법, 행정을 통괄하는 관동도독부를 설치한다.

 

 

 

 

일제는 무력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한다.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제는 간도 지역에 살던 조선인 보호를 명분으로 일본 경찰을 파견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포츠머스 조약, 만주 선후 조약을 근거로 남만주 일대에서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일체의 권리를 갖게 된다. 일제는 러시아가 경영하고 있던 철도사업을 인수하여 1906년 일본은 국책기관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중국 동북 지역에 철로를 건설한다.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병력과 군수품 운송을 원활하게 하려면 만주의 철도가 필요했다.

일제는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만주철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6개 대대 병력의 일본 군대를 주둔시킨다.

남만주철도의 일본군 수비병력은 1919년 창설된 일본 관동군사령부의 모태가 되었다.

 

 

일제는 1909년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결정해 버린다. 

1919년 관동도독부가 폐지되면서 일본 왕 직속으로 순수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1개 사단 병력의 관동군사령부가 만들어졌다. 

 

 

1931년 일본의 관동군은 만주철도 폭파사건을 조작하여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의 관동군사령부는 중국 침략의 전진기지가 된다.

 

 

 

 

 

 

 

 

 

 

 

 

일본 관동군사령부는 남만주철도 일부가 중국 장쉐량(장학량)의 동북군에 의해 폭파됐다는 자작극을 만들어 중국의 군벌 장쉐량의 동북군을 몰아낸다.

 

 

관동군사령부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집정) 부의를 허수아비 집정으로 앉히며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우는데, 일본군 관동군사령부가 세워놓은 허수아비 집정답게 만주국 황제 부의는 일본 천황과 만주 황제는 일체라고 주장한다.

 

 

 

 

일본군 최정예부대 관동군사령부는 중국 침략을 꾀하기 위해 허수아비 만주국을 세웠고, 쫓겨난 장학량의 동북군을 주축으로 해서 만주군을 창설하였다.

 

광동군과 만주군이 함께 만주 지역에서 무장독립투쟁을 하던 우리의 독립군부대를 탄압하면서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항일무장투쟁 독립군은 활동무대를 빼앗기면서 상해 등지로 옮기게 된다.

 

 

일본 왕의 직속인 일본군 관동군사령부는 1931년 만주국을 세우고, 1932년 만주 봉천에 2년제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 만주군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였다.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운 일제는 1932년 만주개척단이란 이름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대대적으로 이주시킨다.

 

 

 

 

 

 

 

 

 

 

 

 

만주국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 관동군사령부는 1937년 노구교사건을 조작하여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의 관동군은 일본군 중에서도 최정예부대로 알려졌으며, 731부대를 만들어 끔찍하고 잔인한 생체실험을 하였고, 중일전쟁 중에 30여만 명의 중국인을 잔인하게 학살한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의 만행을 자행하였다.

 

 

 

 

1939일제는 정예의 황군 장교 양성기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모방하여, 만주국 신경(현재 장춘) 시에 4년제 만주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 만주국 육군군관학교)를 만들어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을 다 할 장교를 양성한.

 

 

일본 관동군사령부는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동북항일연군(중국과 조선인 공산당)을 토벌하기 위해 1939 조선인을 중심으로 간도특설대를 만든다. 일제가 세운 허수아비 나라 만주국의 봉천군관학교와 만주군관학교 출신 조선인들이 민간인과 동북항일연군을 체포, 고문, 사살 등 무자비한 탄압에 앞장섰다.

 

 

 

 

 

 

 

 

 

 

 

 

 

일본군 최정예부대 관동군 사령부가 만주국 산하에 만든 간도특설대는 조선인과 중국인으로 구성된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조선인은 조선인으로 상대한다'라는 발상 아래 만들어진 간도특설대는 약 9백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간도특설대 장교의 상당수와 하사관과 일반 사병 전원이 조선인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로 일제가 패망하던 1945년까지 동북항일연군 토벌과 민간인 학살에 앞장서며 무수한 훈장을 받았다. 

 

 

 

 

간도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성지와도 같았다.

신흥무관학교는 항일무장투쟁을 할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삼형제,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의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을 이룬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간도특설대가 만들어진 시기에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은 이미 항일무장투쟁 독립군의 활동무대가 아니었다.

 

 

 

 

 

 

 

 

 

 

 

 

혹자는 일본군 최정예부대 관동군사령부가 만주국 이름을 빌려 만든 간도특설대를 만주국에서 활동하던 불순세력(공산당) 토벌과 치안유지를 위해 만든 부대라고 주장하지만, 간도특설대가 학살한 사람은 민간인과 동북항일연군이다.

 

 

 

동북항일연군에 포함된 조선인이 모두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탄압 피해 이주한 사람과 일제의 강제이주 정책 등으로 만주 지역에 이주한 조선인 중 동북항일연군에서 비공산당계 항일무장투쟁 독립군도 다수가 있었다.

 

또, 김일성을 비롯하여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공산주의자들이 북한 세우고 나서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등 동북항일연군 활동을 조작했다.

 

 

만주국을 세운 일본 관동군사령부는 1933년 10만 명까지 병력을 증원하였고, 1941년에는 100만 명에 육박하였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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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7.05.28 1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공부 잘하고 갑니다^_^
    좋은 주말 되세요 도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