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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대한민국 대통령 국무총리 등을 배출한 만주군관학교

by 도생(道生) 2017. 5. 28.

대한민국의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고위 장성 등

기라성(綺羅星)같은 인물들을 배출한

일본군(황군皇軍) 장교 성소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신경군관학교)

 

 

 

 

 

 

 

 

 

 

 

 

 

 

군대(軍隊)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군인(軍人)은 국가의 안정과 평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군대의 구성원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괴뢰국가 만주국에 세운 만주군관학교(만주국 육군군관학교 또는 신경군관학교)는 표면적으로는 만주국의 만주군 장교 양성기관이지만, 실제는 일본 천황의 군대다.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제의 황군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모든 사람은 지원동기와 상관없이 졸업과 동시에 만주국을 지배한 관동군사령부의 지휘 통제를 받았다.

 

일제의 관동군사령부는 만주국에 만주군관학교의 전신인 봉천군관학교(1932년), 몽골족의 흥안군관학교(1934년), 육군군의학교(1934년), 육군군수학교(1937년), 육군수의학교(1938년), 육군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 1939년), 육군비행학교(1940년) 등을 세웠다.

 

 

 

 

 

 

 

 

 

 

 

 

일반적으로 '내로라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기라성(綺羅星)은 일제의 식민잔재다.

일제강점기 '반짝이다'라는 일본식 발음 '기라きら'의 한자 음을 취하고, 별 성(星) 자를 붙여서 만들어진 말이 기라성이다.

 

기라성이란 말은 일제 잔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충성을 다한 만주군관학교를 비롯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만주국 군사학교 출신들에게는 일제의 잔재인 기라성이란 말이 가장 적당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지원하여 일본군 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 만주의 여러 군사학교 출신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정부와 군(軍) 요직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육해공군 고위 장성,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 기업대표 등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만주에 배치한 관동군사령부가 실질적으로 괴뢰국가 만주국을 움직였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 일본군 출신들이 대한민국의 국군 창설을 주도했다.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의 군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영욕의 삶을 살다 대다수가 죽었다.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한 공로?였는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고위 장성 등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군 출신 외에도 일제강점기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활동했던 친일파들은 광복 후 대한민국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호의호식하며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되었다.

 

 

 

 

 

 

 

 

 

 

 

 

만주군관학교 출신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정희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박정희는 자랑스러운 황국의 신민이 되기 위해 '다카기 마사오'란 일본식 이름(창씨개명)으로 바꿨다.

 

 

문경 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다카기 마사오는 혈서(血書)를 써서 일제가 세운 허수아비 나라 만주국의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 15등으로 입학한 다카기 마사오는 240명 2기 졸업생 중 1등을 차지하여 대표 선서를 한다.

 

 

다카기 마사오가 쓴 혈서(血書)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오직 대일본 제국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滅私奉公)'의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 혈서다.

 

 

 

 

 

 

 

 

 

 

 

 

만주군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입학의 은혜를 받은 다카기 마사오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하면서 다카기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오카모토 미노루는 영광스럽게도 대일본제국 육군대신상을 수상하고, 일제의 중국 침략 전초기지 관동군 23사단 72연대에 배속된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 들어갔고, 1946년 귀국한다.

 

 

 

 

 

 

 

 

 

 

 

 

남한에 돌아온 박정희는 당시 군(軍) 경력자들 단기과정으로 교육한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2기로 졸업하여 육군소위로 임관한다.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면서 공산주의자인 형 박상희와 함께 남로당 활동을 하였고, 여순반란사건에 연루되어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를 받았고, 10년 형으로 감형받고 다시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강제 예편당한 박정희는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9기 출신이며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있던 백선엽의 배려로 육군 정보국 문관으로 일했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자 현역 소령으로 복귀한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취임한다.

스스로 자신의 어깨 위에 별 4개를 붙이고 전역한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이 된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던 다카기 마사오는 광복 후 빨갱이로 변신하였고, 4.19 혁명 후에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2기 동기생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을 맞고 영욕의 생을 마감한다.

 

 

 

 

 

 

 

 

 

 

 

 

만주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를 비롯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 전신), 일본항공학교, 일본군 지원병, 일본군 장교, 만주군 출신들이 일제가 항복하고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자 대한민국 군대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배출한 일본군 출신과 친일파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의해 반민족특별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면죄부를 받게 된다.

 

 

오직 일본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일본군 출신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회의원,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외무부, 내무부, 상공부, 무임소, 건설부, 교통부, 체신부, 농림부, 무임소 장관 등과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해병대 사령관), 헌병 사령관, 육군사관학교장, 국방대학원장, 고위 장성, 사립학교 이사장 등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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