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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산 사건과 만주사변,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건국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7. 5. 3.

만보산 사건과 일본군 민주 침략 전쟁 만주사변,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건국

 

 

 

 

 

 

 

 

 

 

 

 

 

 

만주는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독립무장투쟁 근거지였다.

 

1928년 6월 4일 친일성향으로 동북 3성(만주)을 지배하고 있던 장작림이 일제의 일부 관동군 참모들에게 폭살 당하자, 1928년 말 장작림의 아들 장학량이 국민정부 장개석의 국민혁명군에 합류하고 반일정서가 일어나면서 만주에 있던 일제는 입지가 불안해지게 된다.

 

 

팽창주의 야욕에 불타있던 일제는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선다.

 

일본 제국주의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괴뢰국(傀儡國, 인형 나라) 만주국을 건국하여 중국과의 전쟁을 위한 교두보를 만들고 새로운 전쟁(1937년 중일전쟁)을 준비한다.

 

 

 

 

 

 

 

 

 

 

 

 

 

1931년 7월 2일 중국 만주의 만보산 인근에서 중국인과 조선인 간에 수로(水路) 문제로 충돌이 일어났다.

일본 경찰은 조선인이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이라는 명분으로 개입하여 일을 더 크게 만들었고, 중국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다행하게도 만보산 사건이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지만, 정작 만보산 사건의 여파는 한반도 지역에 살고 있던 중국인에게서 발생한다. 일제는 만보산 사건 당시 중국인이 조선인 수백 명을 죽였다는 헛소문을 내면서 중국과 조선을 이간질했다.

 

 

 

 

 

 

 

 

 

 

 

 

조선에 살던 중국인 화교가 조선인들에게 백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치고 생활터전을 빼앗기는 문제가 발생하자 중국인과 조선인 간에 감정이 극도로 악화된다. 만보산 사건의 여파는 중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조선인을 적대시하던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은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로 크게 완화된다.

 

 

 

 

 

 

 

 

 

 

 

 

중국인과 조선인 간에 수로 문제로 벌어진 만보산 사건을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키기 위한 물밑작업으로 이용했다.

만주지역에 사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 역시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이기 때문에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명분으로 일제는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일제는 중국 침략 전쟁 만주사변을 일으키기 위해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만주 봉천의 유조호 부근 남만 철도 일부를 파괴한다.

 

일제는 중국의 동북군 장학량 군대가 남만 철도를 파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9월 19일 새벽 공격을 시작으로 1932년 2월에 걸쳐 만주 전역과 몽골 일부 지역을 점령한다. 만주사변의 원인이 된 남만철도 파괴 사건은 일제가 만주를 장악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다.

 

 

 

 

 

 

 

 

 

 

 

 

1931년 12월 10일 국제연맹은 만주사변의 진상을 조사단을 구성하고, 영국 리튼 백작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을 만주에 파견했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는 세계의 이목이 만주에 집중하자 이목을 돌리기 위해 상해사변을 일으킨다.

일제는 상해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돈으로 매수해 일본인을 공격하게 한다.

 

 

 

일제는 1932년 1월 28일 수십 척의 군함과 전투기와 수천 명의 일본군을 동원하여 약 한 달간 중국군과 전투를 벌여 중국인 6천여 명을 죽인 이른바 상해사변을 일으킴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상해로 돌렸으며 중국 본토 공격을 위한 새로운 교두보도 확보했다.

 

 

국제연맹은 4개월간의 조사 끝에 일본이 9개국 조약 위반을 했고, 만주에 자치정부를 만들어 비무장지대로 할 것을 제안했다.

1933년 3월 24일 리튼보고서는 국제연맹 총회에서 통과됐고, 일제는 1933년 3월 27일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중국의 만주를 침략한 전쟁인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는 만주 지역 유력자와 군벌 출신을 회유했고, 1932년 2월 18일 중국의 동북 3성 수뇌부들이 중국으로부터 만주 독립을 선언한다.

 

 

1932년 3월 1일 괴뢰국 만주국이 건국되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선통제)가 만주국 집정에 올랐다.

 

 

 

 

 

 

 

 

 

 

 

 

일제에 의해 건국된 괴뢰국 만주국은 일제 관동군 사령관이 실권을 가지고 좌지우지한 꼭두각시 나라다.

일제가 만주국을 건국함으로써 중국 본토 공격을 위한 병참기지화 작업에 들어간다.

 

1932년 9월 일본 제국주의는 자신들이 만든 괴뢰국 만주국 건국을 정식 승인한다.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무장투쟁을 하던 항일독립군은 독립운동의 거점을 잃고 중국 본토를 이동하게 된다.

 

 

 

 

1931년 7월 만보산 사건 이후 2달 만에 일어난 만주사변과 1932년 초 상해사변과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건국은 아주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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