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국통맥(國統脈, 나라의 계보)과 정신문화를 밝힌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태백일사』의 소장자이며 『환단고기』를 감수한 역사가이며 항일독립운동가 해학 이기 선생
해학 이기 선생은 잃어버린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복원하는데 불멸의 공덕을 쌓은 고성 이씨 가문의 후손으로 1848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예술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실학자 석정 이정직(1840~1910) 선생과 고창 출신의 실학자이며 애국지사로 매천야록의 저자인 매천 황현 선생과 함께 호남의 삼재(三才)로 불렸습니다.
호남의 삼걸이라고도 불린 해학 이기, 석정 이정직, 매천 황현 선생은 모두 성리학과 실학을 섭렵한 학자로 실용적인 실사구시를 주장했습니다.
고성 이씨 가문의 위대한 업적은 필설로 다할 수 없습니다.
자주적 역사관과 자주부강론을 설파했던 후암 이존비 선생,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저술하신 행촌 이암 선생, 행촌 이암 선생의 동생 도촌 이교 선생은 『환단고기』의 『삼성기 下』를 저술하신 원동중 선생의 스승입니다.
또, 행촌 이암 선생의 손자로 세종대왕에게 『단군세기』를 올린 용헌 이원 선생, 『환단고기』의 『태백일사』를 저술하신 일십당 이맥 선생 등 한韓민족의 참역사와 정신문화를 밝힌 고성 이씨 가문의 유업을 계승한 분이 구한말 항일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해학 이기 선생입니다.
이건창, 이정직, 황현 선생 등은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소장자이며 『환단고기』(합본 이전의 다섯 권)를 감수한 해학 이기 선생을 두고 대문장가이며 행동적 저항주의자라고 평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8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녹두장군 전봉준을 찾아가 "동학군을 이끌고 한양으로 올라가 간사한 무리를 물리치고 임금을 받들어 국가의 질서를 새롭게 하자"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전봉준 장군은 해학 이기 선생과 뜻을 같이했지만, 김개남 장군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1897년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소장자 해학 이기 선생(1848~1909)을 찾아온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후일 『삼성기 上』,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의 사서를 하나로 묶어 『환단고기』라는 이름으로 편찬한 운초 계연수 선생입니다.
해학 이기 선생의 문하에 들어온 운초 계연수 선생(1864~1920)은 스승의 가르침 아래 2년(1898~1899)에 걸쳐 『태백진훈』, 『단군세기』, 『참전계경』, 『태백일사』, 『천부경요해』 등의 책을 간행합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러일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와 일본 간에 강화조약이 체결될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왕과 정계에 항의 서면을 제출하고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침탈한 을사늑약 직후 귀국해 한성사범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06년 장지연, 윤효정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해 국권 회복과 계몽운동에 앞장섰고, 1907년 나인영(홍암 나철), 오기호, 윤주찬 등 10여 명이 모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해 을사오적을 척살하려 했지만, 친일매국노 권중현에게만 상처를 입히고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7년 형을 선고받은 해학 이기 선생은 진도로 유배되었고, 2년 만에 석방되어 호남학보를 발행해 민족계몽을 운동을 벌이는 한편 민족의 주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단학회를 조직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1909년 5월 5일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와 광개토태왕을 추모하는 광개절을 맞아 제자 운초 계연수 선생을 데리고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모십니다.
회갑이 넘은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던 해학 이기 선생의 애국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를 견디지 못한 대한제국의 국운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기울었습니다.
해학 이기 선생께서 1909년 7월 13일 서울의 한 여관에서 단식 자진하시니 향년 62세였습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소장자이며 항일독립운동가인 해학 이기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에 『환단고기』가 출간됩니다.
해학 이기 선생의 제자 운초 계연수 선생은 스승께서 생전에 세세하게 감수해준 『삼성기 上』,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하나로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출간했습니다.
『태백일사』 소장자이며 『삼성기 上』, 『삼성기 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권의 책을 감수해준 해학 이기 선생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지으신 행촌 이암 선생과 『환단고기』의 『태백일사』를 지으신 일십당 이맥 선생의 후손입니다.
해학 이기 선생은 고성 이씨 가문에 비장 되어 온 역사서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보았기 때문에 자주적 역사관이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후암 이존비 선생부터 행촌 이암, 일십당 이맥, 해학 이기 선생까지 근 7백 년 동안 고성 이씨 가문이 올바른 정신과 희생과 정성으로 환단(桓檀)의 역사를 밝혔고 지켜왔습니다.
고성 이씨 가문의 7백 년 혈성과 희생, 그리고 역사적인 사명감으로 한韓민족의 역사를 밝히고자 했던 운초 계연수 선생에 의해 우리의 참역사와 정신문화를 복원한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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