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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온 북부여 해모수와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관계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1. 9.

"환지십칠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구등조, 호위영락태왕"

(還至十七世孫,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太王)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관계


















약 15년 전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고, 스토리 전개의 문제점 때문에 때론 비판도 받았던 화제작 '주몽'을 기억하실 겁니다. 드라마 '주몽'은 한류 열풍을 타고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외국인은 한국의 역사 드라마를 시청한 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뿐만 아니러 한국인도 우리가 만든 우리의 역사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배우면서 왜곡된 역사 이미지는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역사 드라마가 바로 '주몽'입니다.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주몽'은 고조선의 멸망 때부터 고구려가 건국되는 시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주몽'은 방영 당시 때도 중국의 '한사군' 문제와 일제 식민사관을 반영한 심각한 역사 왜곡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주몽' 드라마에서 가장 왜곡이 심한 부분은 고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북부여를 건국한 시조 해모수 단군과 북부여를 계승하여 고구려를 창업한 시조 고주몽 성제를 부자(父子) 관계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사서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역사서 중 고구려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및 한韓민족의 역사와 정신문화의 참모습을 기록한 <환단고기>를 부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단편적인 역사기록만 아는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자 중 누구도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온 내용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광개토대왕비문 중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 조작 가능성이 있는 글자, 논란이 있는 해석 부분을 제외하고 판독 가능한 글자 중에서 고구려가 어느 나라를 계승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주는 내용이 있고,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관계를 밝혀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이 풀리 못하는, 아니 풀지 않는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을 소상하게 밝혀주는 사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환단고기>를 무조건 부정합니다. <환단고기> 역사를 인정하면 자신들이 그동안 주장한 식민사학을 부정해야 하고 기득권이 모두 사라져 밥그릇을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환단고기>의 <북부여기>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부터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께서 건국한 역사를 다루고 있고,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고구려국본기>에는 고구려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북부여기>에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과 고주몽 성제께서 북부여의 마지막 7대 단군으로 즉위한 내용이 나옵니다. <태백일사 - 고구려국본기>에는 "고구려지선 출자해모수, 해모수지모향 역기지야(高句麗之先 出自解慕漱 解慕漱之母鄕 亦其地也, 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왔는데, 해모수의 고향이 또한 그 땅(고구려)이다."라고 나옵니다.




<북부여기 -고구려국본기>에 "고리군왕고진 해모수지이자야 옥저후불리지 고진지손야 개이토적만공 득봉야(稾離郡王高辰 解慕漱之二子也 沃沮侯弗離支 高辰之孫也니皆以討賊滿功 得封也), 고리군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고,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으로 봉토를 받았다."라고 하여 해모수에서 고진, 불리지(고주몽의 아버지 고모수)로 이어지는 혈통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광개토왕비문에는 "환지십칠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구등조 호위영락태왕(還至十七世孫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太王), 다시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는데, 18세에 왕위에 오르셔서 칭호를 영락태왕이라 하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시조로부터 17세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대사를 가르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자 중 과연 고주몽 성제의 고조할아버지가 해모수 단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는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에 나온 북부여 시조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종하는 일제 식민사학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1935년 중국의 길림성 집안현에서 발견된 모두루 묘지(墓誌)에 고주몽 성제가 건국한 고구려가 해모수 단군이 건국한 북부여에서 왔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는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로부터 13세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19대 임금입니다. 













고구려의 열아홉 분의 임금 중 형제상속과 종손상속을 제외하면 19대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13세손이 됩니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비문에 쓰인 17세손에 대한 비밀은 북부여의 역사를 알때 수수께끼를 풀 수 있습니다.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역사를 알기 위한 비밀의 열쇠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는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4세손입니다. <환단고기>의 <삼성기>에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께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 단군을 시조로 삼아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계해춘정월 고추모 역이천제지자 계북부여이흥 복단군구장 사해모수 위태조 시건원 위다물 시위고구려시조야(至癸亥春正月 高鄒牟 亦以天帝之子 繼北夫餘而興 復檀君舊章 祠解慕漱爲太祖 始建元爲多勿 是爲高句麗始祖也), 계해(단기 2276, BCE 58)년 봄에 이르러 고추모(고주몽)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 지내며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시니,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다."



해모수 단군께서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건국한 북부여로부터 고주몽 성제께서 건국한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역사의 문을 닫을 때까지 907년의 역사입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은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려 세운 것입니다. 만인에게 공개된 광개토대왕비문을 해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역사학자라고 자칭하는 참으로 우스운 세상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 편 - 1부 한민족 역사광복의 성지 강화>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 편 - 2부 환단고기가 밝히는 단군조선>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 편 - 3부 동방 천자의 나라 단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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