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과 주류 강단사학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3. 7.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이 추종하는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학

대한민국 역사관련 3대 국책기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일제 식민사관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침략과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허위로 만든 역사관입니다. 식민사학은 이론적으로 역사를 왜곡 날조 말살하는 학문입니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식민사학은 조선을 정벌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운 명치유신(메이지유신)부터 출발했습니다.

 

 

일제가 1868년 명치유신 이후 약 70년 동안 최고의 인력과 시간과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정신문화 왜곡 날조 말살 작업을 지속한 것은 한국의 역사 뿌리가 없는 민족, 자주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게으르고 나태한 민족, 자기끼리 싸우는 민족 등로 인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은 이런 미개한 한국인을 구제해준 구세주라고 한국인의 정신을 완전히 개조하여 노예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대한민국의 3대 역사관련 단체인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및 역사 관련 3대 기관과 한 몸입니다.

 

 

 

 

 

 

 

 

'정한론'으로부터 시작된 일제의 한국 역사 왜곡 조작 말살의 만행은 1938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 35권>이 편찬되면서 1차 목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해방 후 신석호가 주도하여 만든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사 35권>을 가져와 우리나라 국사책을 만들면서 역사 왜곡과 정신 말살의 목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한국 역사교육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길을 지금까지 걸어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한국사 왜곡 날조 말살에 앞장선 친일파 이병도와 신석호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 카르텔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에서 길러진 소위 '역사학자'는 중앙과 지방의 역사관련 단체의 연구원 등으로 가거나 역사관련 3대 국책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으로 들어갑니다. 1946년 설립된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약한 신석호가 해방 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 35권>을 그대로 가져와 주도적으로 만든 단체입니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개원하여 2005년 명칭을 변경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시 주류 강단사학에서 길러진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역사재단'은 2004년 중국의 역사 왜곡 동북공정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고,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식민사학은 한국사를 장악한 주류 강단사학과 역사관련 3대 국책기관을 통해 일제 식민사학을 대한민국 국민의 머릿속에 주입했습니다. 일제의 이런 만행을 알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무장투쟁을 하면서 한편으로 우리의 자주적 역사와 정신문화를 교육했습니다.

   

 

한국의 아픔의 역사, 뼈저린 통한의 역사라는 제목의 「한국통사韓國痛史」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이 지은 책입니다. 박은식 선생은 역사학자이기도 합니다.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 서문에서 고려말 수문하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의 「단군세기」 서문에 나오는 "국유형(國有形) 사유혼(史有魂),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라고 글귀를 인용했습니다.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 서문에서 "옛사람이 말하길 나라는 멸(滅)할 수 있으나 역사는 가히 멸(滅)할 수 없으니 대개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다. 지금 나라의 형체가 훼손되었으나 정신만은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내가 통사(痛史, 한국통사)를 쓰게 된 동기다. 정신이 살아있어 불멸하면 형상 또한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의 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한국의 진짜 역사는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오직 일제가 한국사를 왜곡 날조 말살한 결정체 <조선사 35권>의 가짜 역사만 주장합니다.

 

일본은 한국 식민지와 한국인의 노예화를 완벽하게 이루는 것이 세계정복의 초석이라고 인식하고 명운을 걸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많은 돌발 변수가 발생하여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일제 식민사관은 1938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약 100만 엔의 천문학적인 자금과 일제 관변사학자들을 동원하여 35권 2만 4천여 페이지 <조선사 35권>의 식민사학을 완성합니다.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이 쓴 논문과 책을 다 열거할 수도 없지만, 단순히 역사만 왜곡 날조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을 완전히 개조하기 위해 일본 왕이 직접 칙령을 내리고 정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1868년 하급 무사들이 주도한 왕정복고 쿠데타, 명치유신(메이지유신) 

1869년 (일본)국사편집국, 1872년 태정관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의 역사와 지리를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1875년 단군에서 고려까지를 다룬 스가와라 다쓰키치의 <계몽조선사략啓蒙朝鮮史略>이 간행됩니다.

1883년 일본 참모본부 소속 사코 가게아키가 광개토태왕비문을 몰래 탁본한 후 1889년 일본의 시각으로 해석한 <회여록會余錄>이 발표됩니다.

1888년 동경제국대 국사학과에서 본격적으로 '조선사'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이 제정되면서 일본 왕은 살아있는 신(神)으로 추앙받으며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존재가 됩니다.

 

1890년 식민지배를 위해 일본과 조선은 본래 하나라는 소위 '일선동조론'에 입각한 시게노 야스쓰구, 구메 구니다케의 <국사안國史眼>이 간행됐습니다.

1892년 하야시 다이스케의 <조선사朝鮮史>가 간행되는데 이때 소위 '통일신라'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1912년 하야시 다이스케의 <조선통사朝鮮通史> 간행)

1893년 요시다 고고의 <일한고사단日韓古史斷>

1894년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단군고>

1894년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흉노 및 동호 민족의 언어에 대하여>

1895년 니시무라유타카의 <조선사강>

1896년 기쿠치 겐조의 <조선왕국>

1897년 나가 미치요의 <조선고사고>

 

1901년 시노부 준페이의 <한반도>

1901년 쓰네야 세이후쿠의 <조선개화사>

1903년 후쿠다 도쿠조의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

1904년 사토세이지로의 <한반도의 신일본>

1905년 구보 텐즈이의 <조선사> 등 일제는 관변사학자와 군인을 동원하여 영구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한국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해 왔습니다. 

 

 

 

 

 

 

 

 

1910년 조선총독부 산하의 취조국은 약 10만 권의 장서가 보관된 대한제국의 국립도서관인 대한도서관(大韓圖書館)의 장서를 몰수합니다.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일본 역사학자들이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과 관습 등을 조사하는 '조선 구관 제도조사'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1910년~1911년까지 51종 약 20여 만권의 책을 압수하여 불태우거나 일본으로 빼돌렸습니다.

1911년 조선총독부 취조국과 참사관실이 주도한 <반도사> 간행

 

1912년 아오야기 쓰나타로의 <이조오백년사李朝五百年史>가 간행됩니다.

1913년 쓰다 소키치의 <조선역사지리>

1916년 1월 조선총독부 산하 중추원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1922년 12월 조선총독부 직할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개편됐습니다.

 

1922년 이나바 이와키치 <만선불가분의 사적 고찰>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

1925년 6월 일본 왕의 칙령 제218호가 공포된 후 '조선사편수회 관제'에 따라 조선총독부 직할 기관으로 승격됐습니다.

1926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부수고 웅장한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습니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을 고시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통과한 남대문(숭례문)을 보물 1호, 고니시 유키나가가 통과한 동대문(흥인지문)을 보물 2호로 지정했습니다.

1936년 일본 신도(神道)와 기독교, 불교 외에는 모두 유사종교, 사이비종교로 매도한 소위 '유사종교 해산령'이 내려집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편찬된 <조선사 35권>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기 훨씬 이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결정판이며 영구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완수합니다.

지금은 한국인이 일본인의 하수인이 되어 일제 식민사학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제가 조작해 만든 식민사관 이론은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당파성론', 정체성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한사군 한반도설' 등과 함께 '만선사관'이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사를 왜곡 날조 말살하는 한편 1894년 우리나라 영토에서 일어난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한국의 역사와 정신문화 날조와 말살을 넘어서서 중국, 몽골, 만주 침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양사 역사 조작으로 확대합니다.

 

만주와 조선사(한국사)를 하나로 묶은 소위 '만선사관滿鮮史觀'은 일제 식민자가 만든 가짜이론입니다. 일제가 만든 '만선사관'은 한국 역사는 자율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정체되었고, 고대부터 외세의 간섭에 의해 타율적으로 발전했다는 이른바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의 다른 이름입니다.

 

시라토리 구러키치를 비롯하여 쓰다 소키치, 이나바 이와키치, 이케우치 히로시 등이 '만선사관' 조작에 관여했습니다. 중국사를 공부하기 위해 1900년 청나라로 유학 간 이나바 이와키치는 일제의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입니다. 그가 1922년 쓴 <만선불가분의 사적 고찰>에서 한국사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부인하고, 민족과 영토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만주와 불가분의 관계 아래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댓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