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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조선(단군조선)과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 위만조선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3. 14.

중국의 역사 왜곡 '기자조선'과 이은 일본의 역사 조작을 그대로 계승한 주류 강단사학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역사는 말살하고 등장한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 '위만조선'

 

 

 

 

 

 

 

 

 

중국 시진핑 주석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자리에서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 때문에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을 신봉하는 한국 주류 강단사학의 입장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충격적인 망언을 사실로 받아들였을지 몰라도 한국인 대다수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분노했습니다.

 

 

한국 역사학의 태두 이병도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 왜곡 조작에 앞장섰던 친일파입니다. 이병도는 "위만은 조선족 옷을 입고 상투를 틀었으니 조선 사람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정작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는 "(위만은) 전국시대 연나라 사람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일제 식민사학과 이병도의 주장을 쫓아 단군조선(고조선)을 계승한 것이 '위만조선'이라고 역사를 조작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인 소위 '위만조선'은 단군조선(고조선, BCE 2333~BCE 238) 멸망 후 고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 단군 재위(BCE 239~BCE 195) 때 일입니다. 소위 '위만조선'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단군조선이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의 국가경영제도와 단군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이 건국한 북부여를 알아야 합니다.

 

 

 

 

 

 

 

 

초대 단군왕검부터 21세 소태 단군(BCE 2333~BCE 1286)까지 중앙 진한, 서쪽 번한, 한반도 마한으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송화강 아사달(하얼빈) 시대의 제1왕조입니다. 22세 색블루 단군부터 43세 물리 단군(BCE 1285~BCE 426)까지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린 백악산 아사달 시대의 제2왕조는 고조선의 삼조선 시대입니다.

 

 

국호를 대부여로 바꾼 44세 구물 단군부터 47세 고열가 단군(BCE 425~BCE 238)까지 장당경 아사달 시대는 제3왕조이며, 해모수 단군이 고조선을 계승하여 BCE 239년 북부여를 건국합니다. BCE 202년 유방은 역발산기개세의 초패왕 항우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한漢나라를 건국합니다.

 

 

한고조 유방의 친구로 한漢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노만은 연나라 왕으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한고조 유방이 죽고 난 후 여태후는 개국 공신들에 대한 피의 숙청을 시작합니다. BCE 195년 연나라 왕 노만은 숙청을 피해 흉노 땅으로 도망가고, 노만의 부하였던 위만은 BCE 194년 조선인처럼 조선옷과 상투를 틀고 번조선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북부여 영토는 삼한관경제로 나라를 다스린 단군조선(고조선, 대부여)의 중심인 진조선 지역입니다. 단군조선(고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 단군(재위 BCE 239~BCE 195)께서 번조선의 준왕(기준)에게 위만을 받아주면 나라가 망하니 절대 받아주지 말라고 했지만, 준왕은 위만을 받아들이고 번조선과 한나라 국경지대 상하운장의 수비대장에 임명합니다.

 

 

번조선 준왕에게 은혜를 받은 위만은 배은망덕하게도 한漢나라가 쳐들어오니 왕검성(수도)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사를 일으켰고 왕검성(수도)을 점령한 후 번조선 준왕을 쫓아냅니다. BCE 194년 위만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 것은 단군조선(BCE 2333~BCE 238)이 아닙니다. 북부여의 영향권 아래 있던 번조선 지역을 차지하고 86년간 존속한 위만정권은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 한漢나라 무제에 의해 멸망합니다.

 

 

단군조선(고조선)은 BCE 238년 역사의 문을 닫고 북부여로 계승됐고, 위만이 정권을 찬탈했을 때는 북부여 시조이신 해모수 단군이 재위(BCE 239~BCE 195) 때 일입니다.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준왕(기준)은 유민을 이끌고 한반도 금강 유역으로 망명했고, 번조선 준왕은 청주 한씨의 원 시조가 됩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을 교육한 교과서에는 "위만이라는 자가 이 지방에 와서, 기자의 후계자인 준(準)을 쫓아내고 나라를 빼앗았다. 위만의 손자 우거 시기에, 한나라의 무제(武帝)가 이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에 사군(한사군)을 설치했다."라고 한국사를 조작해 놨습니다.

 

 

소위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의 계승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이병도와 주류 강단사학이 식민사학의 잔재를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인터넷의 '올바른 역사'에서 "기원전 3~2세기 준왕 대의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평양을 도읍으로 하고 있었다."라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날조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고조선 1호 박사'라는 송호정은 단군조선은 국가가 세워질 수 없는 신석기시대라고 주장하면서 실존 역사를 부정하고 고려 때 '만들어진 신화'라고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소위 '고조선 1호 박사'라는 송호정은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에 노예가 되어 '위만조선'의 철기문명이 전해지면서 단군조선이 국가기능을 갖추고 전성기를 누렸다고 허무맹랑한 주장을 합니다.

 

 

송호정의 주장은 일본 제국주의의 주장과 똑같은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일 뿐입니다. 송호정은 단군조선(전조선)-'기자조선(후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진다는 소위 '삼조선설'을 주장했고, '위만조선'의 수도가 현재 북한의 평양이라고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기자조선'이 중화 사대주의 사관의 잔재이듯 '위만조선'은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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