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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단군조선(고조선)과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3. 13.

한민족 최초의 나라 배달국을 계승한 단군조선의 상고사를 왜곡 날조한 중국과 일본

동북아를 지배한 황제의 나라 단군왕검의 고조선과 가짜역사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최근 중국의 언론과 포털사이트, 그리고 일부 유튜버가 김치와 한복의 원조가 중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윤동주와 김구 선생, 그리고 김연아, 이영애 등 스포츠와 연예인 한류 스타까지도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보다 휠씬 더 심각한 '동북공정'과 '단대공정'과 '탐원공정' 등 중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역사 왜곡 조작의 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정부와 역사학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방관하고 있을 때 한국의 평범한 국민들이 앞장서서 대응했습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과 3대 역사관련 국책연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의 국통맥(나라 계보)은 단군조선(고조선)은 신화일뿐이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우리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소위 '고조선 1호 박사'라는 송호정은 단군조선은 신화이며 부여가 한국 고대 국가 출발의 원류라고 주장합니다. 

 

 

 

 

 

 

 

 

부여의 역사는 단군조선(44세 구물단군 때 대부여로 나라 이름을 바꿈)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이 건국한 북부여입니다. 북부여 해모수 단군의 현손(玄孫) 고주몽 성제는 국호를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꾸었습니다. 중국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단군조선(고조선)과 북부여의 역사는 신화가 되었거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들어갔습니다.

 

 

소위 '기자조선'은 BCE 12세기 경 중국 은나라(상나라) 사람 기자가 조선의 왕이 됐다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고, 소위 '위만조선'은 BCE 2세기경 중국 연나라 사람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 왕이 되었다는 일제의 역사 왜곡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과 역사관련 국책연구기관의 학자들은 고대 한국사를 중국의 예속된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기자가 조선(단군조선)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라는 소위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은 복생의 「상서대전」과 사마천의 「사기」를 근거로 퍼져나갔습니다. 고려 때 「삼국사기」 편찬을 주도한 김부식을 비롯한 유학자는 '고조선으로 도주했다'라는 내용에 자의적으로 '동쪽' 넣었습니다. 중화 사대주의가 판치던 조선 왕조 때 일부 유학자들도 중국 사료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중국은 약 3,100년(BCE 12세기) 전 주나라의 제후국인 '기자조선'부터 한국사가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상서대전」은 한漢나라 5대 문제(文帝) 때 인물 복생이 「사기史記」는 한漢나라 7대 무제(武帝) 때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것입니다. 

 

 

복생의 「상서대전」은 한漢나라 5대 문제(文帝) 때 인물 복생이 유교의 경전인 「서경書經」을 풀이한 「상서대전尙書大傳」은 중국의 상고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상나라(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이 감옥에 있던 기자를 풀어주었고, 주나라 무왕에 의해 풀려난 것을 부끄럽게 여긴 기자는 치욕을 참을 수 없어 조선으로 떠나버렸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주나라 무왕은 기자가 조선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를 조선 왕으로 봉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복생의 「상서대전」과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무왕이) 기자를 제후로 책봉했지만, 주나라의 신하로 삼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후라면 당연히 황제의 신하가 되어야 마땅한데 신하로 삼지 않았다는 모순을 중국인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자가 은나라 동이족이라는 사실과 고려와 조선 때 나온 문헌은 중국의 사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아 논외로 하고, 중국의 <상서대전>과 <사기>와 <논어>를 비롯하여 <한서>, <회남자>, <후한서> 등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기자가 도망갔다는 조선, 기자로부터 한국사가 시작됐다는 중국의 주장은 이미 고조선, 단군조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기자가 무왕의 신하였던 적이 결코 없었으며 조선의 왕으로 책봉된 사실도 없음을 보여줍니다.

 

 

공자는 「논어」 <미자편>에 '은나라의 3현인으로 미자(微子)와 기자, 비간(比干)을 지목했다. 세 사람은 모두 은나라 주(紂) 왕의 친척이라고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력 3세기경 서진(西晋)의 정치가 두예(222~285)는 사마천의 「사기」 주석에 "기자의 무덤은 양국 몽현이 있다고 말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려사」의 '예지'에 고려 유학자들이 '기자의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기자사당과 함께 가짜 기자묘(箕子墓)도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북한 평양에 있는 기자묘는 고려 때 만든 가짜묘입니다. 소위 '기자조선'은 중국이 한국사를 왜곡하기 위해 조작한 것인데, 한국의 역사학자는 중국의 역사 왜곡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한술 더 떠서 일제의 식민사학을 계승하여 소위 '위만조선'이 한국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편

<환단고기가 밝히는 단군조선>

www.youtube.com/watch?v=4gyRISzy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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