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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일제 식민사관의 낙랑 임둔 진번 현도 '한사군 한반도설'

by 도생(道生) 2021. 3. 20.

이나바 이와기치가 조작하고 해방 후 이병도가 뿌리내린 조선총독부 역사관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의 '한漢사군 한반도설'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백의종군한 적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같이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고, 동양과 서양의 정복 전쟁에서 전투에 승리하거나 적국을 정복하는 데 공을 세운 장군에게 큰 상을 내려줍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황제의 명으로 전쟁에서 장군과 황제의 명을 받은 사신(使臣)을 죽인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漢나라 무제는 장군을 참수고 서인(庶人)으로 만들었습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중국 역사에서 위대한 황제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한국의 고대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인물입니다.

 

 

한漢나라 무제(BCE 156~BCE 87)는 강력한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재위 기간 대부분을 흉노와 전쟁하면서 재정 파탄으로 국가 위기까지 가게 됩니다. 흉노를 북쪽으로 내몰았지만, 완전하게 멸망시키지 못한 한무제는 후일 흉노가 옛 번조선 지역의 우거 정권(위만의 손자)으로 내려올까 두려워 우거 정권(옛 번조선)을 공격합니다.

 

 

 

 

 

 

 

 

한漢나라 무제는 육군과 수군을 동원해 옛 번조선 지역의 우거왕(위만의 손자)을 공격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됩니다. 1년이 넘는 전쟁에서 한漢나라가 우거정권을 쓰러뜨리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은 한漢나라 장군이 아니라 우거정권의 내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거는 신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고, BCE 108년 우거 정권(위만의 손자)은 한漢나라 무제에 의해 멸망합니다.

 

 

한漢나라 무제는 우거 정권을 멸망시킨 후 북부여까지 침략합니다. 이때 북부여의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한漢나라 군대를 격파하여 내쫓아버립니다. 고두막한은 고조선 마지막(47세) 단군인 고열가 단군의 후손입니다. 한무제를 내쫓은 고두막한은 북부여의 4세 단군으로 즉위하시는데 이분이 바로 동명왕(동명성왕)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삼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조선'이 아니라 우거정권입니다. 한漢나라 무제가 멸망시킨 것은 우거정권(옛 번조선)입니다. 또한 <사기-조선열전>에는 '조선과의 전쟁'에 대하여 "양군구욕兩軍俱辱 장솔막후의將率莫候矣, (한漢나라의 육군과 수군) 양군이 모두 치욕을 당했다. 장수 중 제후로 봉해진 자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부여(조선) 전쟁에서 한漢나라 군대가 치욕을 당했고, 상을 받은 자가 없다는 것은 사실상 전쟁에서 패했다는 것입니다.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은 중국의 역사 왜곡을 놓치지 않고 역사를 조작합니다. 일제 식민사관은 우거정권이 멸망한 것을 '위만조선', 즉 고조선(단군조선)이 멸망한 것으로 역사를 조작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은 요동에 있는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의 한漢사군을 한반도로 끌어들여 소위 '한사군 한반도설'의 한국 역사 날조에 돌입합니다. 한漢나라는 북부여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후 육군과 수군의 사령관과 한무제의 사신(使臣)을 극형으로 다스립니다. '조선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거짓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한漢나라의 육군을 지휘한 순체 장군은 극형, 수군을 지휘한 양복은 극형을 선고받은 후 서인(庶人)이 됐고, 한무제의 사신 위산, 공손수와 전쟁의 선봉장이며 사신이었던 졸정다는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한무제의 사신(使臣) 섭하는 전쟁 중 사망했습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과 조작한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조작의 선봉장이 되어 한국사 말살에 일등공신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인은 아직도 '위만조선'이 단군조선을 계승했으며, 한나라의 한漢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됐다는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나바 이와기치가 주장한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소위 '한사군 한반도설'의 일제 식민사관은 해방 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 왜곡 조작에 앞장섰던 이병도가 해방 후 한국고대사의 정설로 정착시킨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에 매몰된 이병도는 위만을 조선사람으로, 번조선인 '위만조선'의 수도를 중국의 요령성 서쪽에서 한반도 평양으로 왜곡 조작했고, 한국사가 단군조선(고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진 후 한漢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됐다는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한漢사군의 위치에 대하여 중국의 사료 <태강지리지>, <사기>, <한서>, <후한서>, <수경> 등에서 "낙랑군 수성현(遂城縣)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점이다.", "패수가 서쪽으로 증지현에서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왕망은 낙선정이라고 했다.",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낭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 바다로 흘러들어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漢사군의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 땅이라는 것입니다. 한漢사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중국 문헌이 있음에도 이병도는 <한국고대사연구- 한사군 문제의 연구 낙랑군>에서 "수성현...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한漢나라 한漢사군의 낙랑군 위치가 요동에 있었다는 중국의 기록을 무시한 일제감점기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는 낙랑군을 한반도 평양으로 옮겨왔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추종자 이병도와 주류 강단사학도 한漢사군을 한반도로 끌어들이고 중국의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쭉 늘려 대동강 평양에 가져다 놓으면서 중국의 한국 고대사 침탈의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가 일제 식민사관을 계승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한 원죄는 법정 최고형의 천 배, 만 배에 해당하는 역사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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