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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중국 동북공정과 창바이산(장백산) 백두산공정

by 도생(道生) 2021. 5. 9.

한韓민족의 시원 역사가 시작된 민족의 성산을 중국에 바친 한국 주류 강단사학

일제 조선총독부 <심상소학국사>와 중국 '동북공정''창바이산(장백산) 백두산공정'

 

 

 

 

 

 

 

 

 

일본 제국주의는 19세기부터 조선(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에 눈먼 일제는 조선을 정벌하자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운 후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한국사 왜곡 날조에 들어갑니다. 한국은 아직도 일제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역사관에 갇혀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는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한국의 상고 역사와 고대 역사 조작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과 한韓민족의 첫 나라인 신시 배달국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단군신화'로 만들면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실재한 고조선 역사가 '단군신화'로 조작되면서 고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역사까지 사라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주몽 성제가 세운 고구려는 뿌리 없는 나라로 남아 있습니다. 고주몽 성제는 단군왕검의 고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 단군의 현손으로 서력 37년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꿉니다. 중국은 2002년부터 시작해 2007년까지 고구려, 발해 등 한韓민족의 고대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한 소위 '동북공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동북공정'이 마무리되어가던 2005년부터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창바이산(장백산)'으로 굳히는 소위 '백두산공정'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중국이 한韓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백두산을 '창바이산(장백산)'으로 굳히는 '백두산공정'은 '동북공정'의 일부입니다.

 

 

일제가 무력으로 국권을 침탈하고 강제 점령했던 1920년 조선총독부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심상소학 일본역사>를 바탕으로 일본의 입맛에 맞게 한국사를 조작해 뒤섞어 만든 소학교(現 초등학교)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아동용>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가 만든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아동용>은 한국 역사를 조작한 교과서입니다.

 

 

일제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조작한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아동용>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은 고대부터 한국인을 보호하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한국의 상고와 고대 역사를 조작한 '동북공정'과 백두산을 중국 명 '창바이산(장백산)'으로 하는 소위 '백두산공정'은 일제가 역사를 날조한 <심상소학국사 보충교재> 내용과 같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이 한국사를 왜곡 조작한 <심상소학국사>에는 고조선 역사를 날조한 소위 '위만조선설'도 나옵니다. 조선총독부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영토를 조선반도, 즉 한반도로 국한시킵니다. '위만조선설'에 이어 한漢나라의 낙랑, 임둔, 진번, 현도 4군이 한반도를 점령해 다스렸다는 소위 '한漢사군 한반도설'과 고대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합니다.

 

 

"조선반도(한반도)의 북부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통치했으며, 따라서 중국의 속국 또는 영토였다는 사실을, 남부는 곧 조선인의 조상인 한韓족의 거주지로서, 이 지방은 일찍부터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심상소학국사 교수참고서'의 교수요지敎授要旨)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은 중국 역사서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소위 '한漢사군 한반도설'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강단사학이 고대 한반도 북부를 중국이 다스렸다고 주장하는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위만조선설'은 연나라 유민 위만이 번조선 왕위를 찬탈한 것을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날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의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학자들도 한국 역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했고, 해방 후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는 학설이 모두 조선총독부 역사관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 고대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한 '동북공정'과 한韓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창바이산(장백산)'으로 굳히는 소위 '백두산공정'은 한국 역사학계의 학설을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한국 주류 강단사학은 상고사와 고대사를 부정할 때 언제나 중국 역사서를 인용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역사서라는 사마천의 <사기>에 연나라와 백두산이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나와 있음에도 한국 역사학계는 중국이 한국 고대사를 중국사로 편입한 '동북공정'과 '창바이산(장백산)'으로 굳힌 '백두산공정' 역사 조작 당시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방관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 주류 강단사학은 만리장성을 요동반도 건너편의 발해만 연안에서 한반도 평양까지 끌어들였습니다. 현재의 만리장성은 명나라가 대부분 돌로 쌓은 것입니다. 초기 만리장성은 토성으로 연나라, 진나라, 조나라 등이 북방 흉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흙성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소진 열전> 기록에서 연나라의 국경을 특정하고 있습니다. 연나라 동쪽 국경선과 백두산 거리는 1,000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중국 사마천 <사기>의 <소진 열전>에 연나라의 국경선이 나옵니다. "연나라의 동쪽은 조선(고조선)과 요동(遼東), 북쪽에는 임호와 누번, 서쪽은 운중과 구원, 남쪽은 호타와 역수가 있는데 지방이 2천 리쯤 된다. 연나라가 남쪽에는 갈석(碣石), 안문(雁門)의 풍요로움이 있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사마천 <사기> 기록을 무시하고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가 약 2,200~2,400여년 전 백두산 일대에 있었다', '고구려는 연나라를 계승한 나라다.'라고 허무맹랑한 주장을 합니다. 한국 주류 강단사학자 중 단 한 사람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백두산을 '창바이산(장백산)'으로 만들어 한국의 역사를 빼앗으려는 '백두산공정'에 항의한 자가 없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와 한국 역사학계는 '위만조선설'은 '정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중국은 고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소위 '동북공정'과 백두산을 '창바이산(장백산)'으로 굳히는 '백두산공정'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주류 강단사학은 단순한 묵인과 방조를 넘어 중국에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를 갖다 바친 꼴이 된 것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편 16, 17, 18회 - 환단고기가 밝히는 단군조선>

www.youtube.com/watch?v=4gyRISzy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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