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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일제의 조선침략사 한국인의 민족혼 한국사 말살 정책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5. 15.

'임나일본부와 '정한론'을 시작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일제의 조선침략사

일본과 한국의 고대 역사를 조작해 한국인의 민족혼, 한국사 말살 정책

 

 

 

 

 

 

 

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는 국가와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는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무장한 일본군을 데리고 천인공노할 을사늑약 만행을 저지릅니다. 당시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은 친일파 을사오적은 서명했지만,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옥새를 찍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특명전권대사 이등박문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옥새가 찍히지 않은 외교문서를 가지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박탈합니다.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후 대한제국은 실질적으로 통치권을 잃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조선침략사의 시작은 1868년 명치유신 이후 대두된 정한론(征韓論)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심혈을 기울인 정책은 한국인의 민족혼인 한국사를 조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일본사를 조작한 후 한국사 말살 작업에 들어간 일제 관변사학자들이 역사 왜곡 조작에 나섭니다. 19세기 말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 민족을 영구적으로 식민지배하기 위한 식민사관 마스터플랜을 수립합니다. 

 

 

 

 

 

 

고대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바탕으로 조선을 정벌하자는 소위 '정한론'을 주장한 나카 미치요는 일제의 역사교과서 체제를 '일본사'와 '동양사'와 '세계사' 체제로 만들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합니다. 나카 미치요의 제안은 한국인의 민족혼인 한국사를 '일본사'에 넣는 것입니다.

 

 

일제는 1902년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집필지침을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침략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나카 미치요가 주장한 것은 일본사에 속한 한국사입니다. 조선 침략의 사전 정지작업을 끝낸 일제는 한국사 말살 정책을 하나씩 실현해 나갔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905년 11월 17일 불법적인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906년 2월 조선통감부를 설치했습니다. 혹자는 대한제국은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의 국권을 강탈당했기 때문에 1906년 설치된 일제의 조선통감부가 조선 침략의 교두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 알려져 있듯이 일제의 조선통감부는 대한제국 황제의 통치권을 빼앗고 내정을 장악하여 실질적으로 식민지배했습니다.

 

 

 

 

 

 

조선 침략에 앞장선 국가와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운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이 됩니다. 1906년 8월 공포한 '보통학교령'으로 소학교가 '보통학교'로 바뀌게 됩니다. 일제가 보통학교 교과를 통합하면서 우리 민족혼을 일깨워주던 한국사 역사교과서 내용이 대폭 축소됩니다. 이어서 공포된 '사범학교령'과 '외국어학교령'과 '고등학교령' 등 기존 교육관제를 폐지하고 일제가 준비한 학제체제로 개편됩니다.

 

1907년 1월 대한제국에서 편찬된 국정교과서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독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할 정도로 역사 왜곡이 심각해져 갔습니다. 1907년 '신문지법'을 공포하여 신문과 잡지까지 사전검열 및 허가를 받도록 통제했고, 1908년 '사립학교령'을 공포하여 신설 사립학교와 기존 사립학교는 학부의 인가를 받도록 합니다.

 

1908년 공포한 '교과서용도서검정규정'과 '학부편찬교과용도서규정'으로 말미암아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한 보통학교는 일제 식민사학자가 주도하여 만든 교과서를 배우게 됩니다. 국권침탈이 이루어지기 전이었지만, 일제가 치밀하게 준비한 식민지 교육정책은 설계한 그대로 궤도에 들어서게 됩니다.

 

 

 

 

 

 

당시 대한제국 학부대신이 '허가'와 '불허'에 대한 권한이지만, 대한제국의 학부대신은 일제가 한국인의 민족혼인 한국사를 말살하는 식민지 교육정책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조선통감부가 대한제국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과서용도서검정규정'은 한국인이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한 조선통감부의 식민지 교육정책입니다. 

 

 

 

일제는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관변사학자들을 내세워 일본사와 한국사와 중국사를 왜곡 조작한 가짜이론인 식민사학을 뿌리내리면서 대한제국의 학제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교육내용을 서서히 바꾸는 식민지 교육정책을 실시합니다. 학제 개편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것은 한국인의 역사, 즉 우리의 민족혼인 한국사를 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제가 한국사 말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인이 올바른 역사와 정신문화를 알게 되면 민족혼을 되살아나 무장 독립투쟁을 한 독립운동가들처럼 저항하면 식민지배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뿌리를 잘라내면 죽어버리듯 한국인의 역사와 민족의 뿌리를 잘라내서 충직한 식민지 노예로 만들려는 일제의 조선침략사는 아주 치밀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배를 반대하는 한국의 성인들은 총칼로 위협하고 고문해 어느 정도는 친일파로 전향시킬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공개적으로 성인처럼 막대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은 고대 한국을 지배한 나라이며 근대화시켜준 고마운 나라라는 동화정책으로 한국인을 어려서부터 식민지 교육을 받게 하여 서서히 세뇌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사교과서 내용은 일제가 만든 식민주의 역사관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미국편 3, 4, 5회>

https://www.youtube.com/watch?v=dX1KpgNUrXs&list=PLGD5OCKBh-RP7cx4SWxNapepRBZalI_LM&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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