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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려 국경선 거란과 외교담판으로 얻은 서희 장군의 강동6주

by 도생 2021. 8. 29.

한국과 중국의 문헌 사료를 부정하고 조선총독부 역사관만 신봉하는 한국 역사학계

거란 소손녕과 외교담판으로 얻은 고려의 서북쪽 국경선 서희 장군의 강동 6주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에는 1977년 경기도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된 부부의 묘가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공은 고려 재상이었던 서필의 아들입니다. 고려 광종 황제 11년(960)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한 후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 문관(文官)이었지만, 고려 성종 12년(993) 거란의 1차 침입을 계기로 무관(武官)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무덤의 주인공은 서력 993년(성종 12) 거란의 80만 대군이 침입했을 때 고려 성종 황제의 특명을 받고 거란군 적장 소손녕과 마주 앉았습니다. 고려를 정벌하기 위해 80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온 소손녕은 서희(942~998) 장군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지만, 서희 장군은 거란의 소손녕과 외교담판으로 80만의 거란군을 철수시키고 강동 6주까지 얻어냈습니다.

 

 

거란의 소손녕은 서희 장군에게 고려는 신라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자신들의 소유인데 고려가 침범했으니 고구려의 옛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또한 거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니 송나라와는 국교를 단절하고 거란과 외교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서희 장군은 소손녕과의 외교담판에서 소손녕이 고구려의 영토는 거란의 소유라고 주장한 것은 거란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서희 장군은 우리나라(고려)가 고구려의 옛땅에 있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으며 평양으로 수도를 정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서희 장군은 고려야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옛 고구려 땅인 거란의 동경까지도 고려의 땅이라며 강력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고려사>에는 서희 장군이 거란 소손녕과의 외교담판을 끝내고 얻은 고려의 동북쪽 국경선인 강동 6주와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권94 열전 권제7> "성종 13년(994)에 서희가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쫓아내고, 장흥진, 귀화진과 곽구, 귀주에 성을 쌓았다. 이듬해 다스 군사를 거느리고 안의진, 흥화진에 성을 쌓았고, 또 그 이듬해 선주, 맹주에 성을 쌓았다."

 

 

<고려사 권82 지(志) 권제36>에 "성종 13년(994)에 평장사 서희에게 명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게 하고, 장흥, 귀화 두 진(鎭)과 곽주, 구주에 성을 쌓게 하였다.", "성종 14년(995) 서희에게 명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 깊숙이 들어가 안의, 흥화, 두 진(鎭)에 성을 쌓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서> 권38 지(志)제8 지리지2에는 "동경에서 동쪽으로 북오로호극까지 4백리, 남쪽으로 바닷가의 철산까지 8백60리이다." 요나라의 동경은 현재 심양 아래에 있는 요양입니다. 고려의 서쪽 국경선이 현재의 요녕성 본계시 근처라는 것입니다. <고려사> 지(志) 권제10에서는 "우리 해동(海東)은 삼면이 바다에 막혀 있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는데, 그 폭과 둘레는 거의 1만 리(里)나 된다."라고 하여 육지, 즉 요동반도에 연결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 인종 때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송나라로 귀국하여 제출한 일종의 출장보고서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와 서쪽으로는 요수(遼水) 북쪽으로는 거란의 옛 지역과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접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의 서북쪽 국경선은 요동반도 서쪽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요수, 즉 요하(遼河)입니다.

 

 

한국의 <고려사>, <고려사절요>와 중국의 <요사>, <금사>, <대명일통지> 등의 기록을 보면 서희 장군이 거란 소손녕과 외교담판으로 얻은 강동 6주와 인근에 있는 압록강(鴨淥江)은 현재 중국 요녕성을 남북으로 흐르는 요하(遼河)입니다.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의 윤한택 교수는 고려의 서북 국경선인 압록강은 한자 음(音)이 같아 혼동해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강원대학교 사학과 남의현 교수도 중국의 여러 사서를 확인한 결과 고려의 서북 국경선인 압록강은 현재의 요하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말해 압록강은 서쪽의 압록강(요하)현재 중국과 북한의 경계인 동쪽 압록강 두 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중국과 한국 문헌 사료에 등장하는 서압록강동압록강에 대한 지명이 나오는 유일한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환단고기 - 태백일사 - 신시본기> "세속에서 묘향산을 태백산이라고 한다면 그 소견은 '동압록강' 이남의 모퉁이 땅에 국한시킨 것이 된다." <환단고기 - 태백일사 - 고구려국본기> "3대 대무신열제 20년(37) 열제께서 낙랑국을 기습하여 멸하셨다. 이리하여 '동압록' 이남이 우리에게 속하였으나, 다만 해성 이남의 바다 가까이 있는 여러 성은 아직 항복시키지 못하였다.", "'동압록'의 황성에 광개토경대훈적비가 있다."

 

 

<환단고기 - 북부여기> "임금(북부여 4대 고우루단군)께서 장수를 보내 우거를 토벌하게 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이에 고진을 발탁하여 '서압록'을 지키게 하셨는데...", "고두막 단군께서... 한漢나라 도적과 여러 번 '서압록하' 강가에서 싸워 크게 승리를 거두셨다."

 

<환단고기 - 태백일사 - 고구려국본기> "(고진의 손자) 불리지가 일찍이 '서압록'을 지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환단고기 - 태백일사 - 대진국본기> " 조대기에 왈, 진국장군 대중상이 '서압록하'를 지키다가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736년.... '서압록하' 상류에서 삼신일체상제님께 천제를 올리셨다. '서압록'은 옛 고리국의 땅이다."

 

 

 

 

 

 

한국의 모든 교과서에는 현재 북한과 중국의 경계인 압록강 하류 지역이 고려의 서쪽 국경선이며 원산만 이남 지역이 고려의 동쪽 국경선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인 쓰다 소키치가 반도사관에 따라 '조선역서지리'에서 조작한 가짜 고려의 국경선이며 실제 고려의 국경선이 아닙니다.

 

 

서희 장군이 거란군 대장 소손녕과의 외교담판으로 80만 거란군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흥화, 용주, 통주, 철주, 구주, 곽주 등 강동 6주를 얻어냈습니다.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부분은 거란이 고구려의 후예라고 주장했다는 것과 고려의 서북쪽 국경선인 강동 6주의 위치입니다. 대한민국 대학의 '역사교육과'는 역사교사 및 역사교육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과입니다.

 

 

성균관대 역사교육과 출신의 한국사 강사인 심용환은 '단박의 한국사'라는 책에서 '꾸준한 북진 정책을 펼쳤던 고려 역시 함경북도 지방을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용환의 주장은 한국과 중국의 문헌 사료에 근거한 주장이 아닙니다. 심용환을 비롯하여 한국 주류 강단사학과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들은 조선총독부가 한국사를 왜곡 날조한 일제 식민사학, 즉 가짜한국사를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연세대편: 26, 27회 신지비사에 숨겨진 단군조선 삼한의 비밀>

https://www.youtube.com/watch?v=w9kiAtDhB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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