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신시 배달국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민족의 영산(성산) 백두산

by 도생 2021. 8. 28.

학원 강사 출신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심용환, 서울대 경제학 교수 출신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일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가진 자와 일본 극우세력을 대변하는 자의 삐뚤어진 역사관

환웅천황의 백두산 신시에 세운 배달국,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민족의 영산(성산) 

 

 

 

 

 

 

 

이영훈은 일본 극구세력으로부터는 찬사를 받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는 지탄을 받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문제의 책을 공동 집필한 사람입니다. 서울대 경제학교 교수 출신의 이영훈은 일본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역사 왜곡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검증됐습니다. 

 

 

입담 좋아 대중적인 인기가 많았던 설민석은 방송사 예능과 역사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했던 한국사 강사입니다. 그러나 논문 표절과 역사 오류 등으로 인하여 출연 중이던 문화방송의 '선을 넘은 녀석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습니다. 설민석의 빈 자리를 채운 인물은 학원 강사 출신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심용환입니다. 이영훈과 심용환은 밥벌이와 역사의 가면을 뒤집어쓴 이념만 있을 뿐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문화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1980년대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 대학 강단의 경제학 교수에서 일본 극우세력 대변자가 된 이영훈과 역사교육과 졸업 후 학원 강사를 하다가 '역사N교육연구소'를 차리고 역사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심용환은 환웅천황께서 백두산 신시에 도읍을 정하고 건국한 배달국, 즉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성스러운 성산(聖山)인 백두산에 대하여 부정하는 내용이 마치 말을 맞춘 것처럼 똑같습니다.

 

 

 

 

 

 

어떤 근거도 없이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이영훈과 이영훈의 주장을 비판하는 심용환은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를 인용하여 백두산이 한민족의 영산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육당 최남선이 백두산을 여행하고 1926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기행수필입니다. <백두산 근참기覲參記>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문명의 역사를 개척해온 우리 민족의 뿌리이며 영산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영훈과 심용환뿐만 아니라 설민석과 대한민국의 모든 강단사학자와 우리나라 국사를 가르치는 초중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나머지 5천만 모든 국민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완전히 사라진 신시 배달국과 '단군신화'가 된 고조선의 역사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왜곡 조작된 일제 식민사학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논리는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의 영산도 아니고 우리의 역사와 관련없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신시 배달국이 건국된 한민족의 성스러운 영산입니다. 신시 배달국을 계승한 단군왕검의 고조선, 고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 성제의 고구려, 고구려를 계승한 대중상과 대조영의 대진국(발해), 고구려를 계승한 왕건의 고려, 고조선의 국명을 그대로 계승한 이성계의 근세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이며 성스러운 성산(聖山)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의 <문종실록> 문종 1년 7권에는 전 부사정 정안종이 문종께 아뢰기를 "대저 우리나라의 산천은 백두산에서 비롯하여 대맥이 나뉘어 나가 대세가 활달하고, 천지만엽이 그로부터 어지러이 내려와서 천태만상으로 활처럼 당기고, 손톱처럼 뻗는 모양이 되어 종횡으로 내달아 그사이에 음양 두 길의 산이 안팎으로 문호를 견제하니....후인이 감히 경모하여 만에 하나도 자취를 쫓지 못하겠습니까?"라고 신라 말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이 옳고 잘 맞아 후세의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왔고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조실록> 정조 21년 46권의 규장각에서 임금께 아뢰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숙묘(숙종) 29년(1703)에는 한라산이 유독 사전(祀典, 국가의 공식적인 제사 규정)에 누락되었다고 하여 특별히 봉내의 다른 제사와 나란히 지내게 하였으며, 선조(先朝, 영조) 44년(1768)에는 백두산이 나라의 진산(鎭山)이 된다는 이유로 봄가을로 향을 내려주고 악독(嶽瀆, 나라에서 국전國典으로 제사지내는 큰 산과 강)에게 지내는 제사 축에 끼이도록 하였는데, 이는 모두 방전(邦典, 경국대전)에 있지 않은 것인데도 유독 의리로 일으켜서 처음으로 시행한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선국사가 살았던 신라 시대와 유교적 통치 이념을 담은 <경국대전>에 백두산에 제사를 지내야한다는 내용은 없지만, 신시 배달국 건국이래로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의 진산(鎭山), 즉 민족의 영산과 나라의 성산이었기 때문에 제사를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영훈과 심용환의 주장처럼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 때문에 우리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이라고 신성시하고 기리기 시작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집필자 이영훈은 2006년 박지향, 김철 등과 함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영훈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서 "백두산을 민족의 발상지로 신성화하고 장차 그곳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민족이 소생할 것을 노래한 최초의 사람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 다소 성급히 말하자면 최남선이다.... 최남선이 '근참기'를 지은 것은 당시 조선 사람들이 백두산을 너무 경시해서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몇 년전부터 소위 '역사N교육연구소'를 운영하는 심용환은 '단박에 한국사'라는 책에서 "백두산은 우리 역사와 그다지 관련이 없어요. 우선 고조선은 랴오닝(요동) 지방에서 발생했고 단군 신화에도 백두산 이야기는 없습니다. 고구려 역시 압록강변 근처인 졸본-집안 지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백두산과 무관합니다. 부여는 만주 복판이고.... 통일신라는 대동강 이남 지역만 확보했기 때문에 백두산은 커녕 평양도 장악하지 못했고, 꾸준한 북진 정책을 펼쳤던 고려 역시 함경북도 지방을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조선 세종 시대에 들어와서야 압록강-두만강 국경선을 확보한 것입니다....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기리게 된 계기는 이광수, 최남선 때문입니다.... 근대기획의 산물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최고 명문대 경제학 교수 출신과 학원 강사와 작가로 활동하다 최근 들어 '역사학자'로 불리기 시작한 자의 손끝에서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글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영훈과 심용환의 주장은 한 마디로 조선총독부가 한국사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 논리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새빨간 거짓말이며 역사도 모르는 자들이 국민을 우습게 알고 기만하는 것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미국편: 3, 4, 5회 대한, 천지광명의 역사를 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X1KpgNUrXs 

 

댓글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