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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후와 금관성의 파사석탑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8. 7.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 역사학계가 없앤 한반도 남부 520여 년 가야사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후와 한반도에 없는 재질 금관성의 파사석탑

 

 

 

 

 

 

 

 

한국 역사학계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는 고대국가로 인정하면서 동시대에 520여 년의 역사를 지속한 가야국은 고대국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국 역사학계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3~4세기 이후에야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었다고 주장합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이러한 주장은 한국사를 조작한 조선총독부 역사관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이 고대 한반도 남부, 곧 가야를 식민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뿌리내리기 위해 한국고대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약 2,000년 전 요즘 말로 국제결혼을 한 부부는 12명의 자녀를 두고 백년해로했습니다. 12명의 자녀 중 큰아들은 김(金)씨 성(姓)을 물려받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은 어머니의 성인 허(許)씨 성(姓)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한 혈족인 김해 김씨와 허씨는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2000년 전 국제결혼을 한 부부는 한국고대사에서 520여 년의 자취를 남긴 신비의 왕국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허황후는 슬하에 열두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 거등왕, 둘째 아들 허석, 셋째 아들 허명, 넷째 아들 혜진, 다섯째 아들 각초, 여섯째 아들 지감, 일곱째 아들 등연, 여덟째 아들 주순, 아홉째 아들 정영, 열 번째 아들 계영과 2명의 딸입니다.

 

 

김부식이 주도하여 편찬한 <삼국사기>의 <김유신 열전>에는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이 서력 42년 건국했다고 나와 있고,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는 가야국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력 42년 김수로왕과 형제들이 김해 구지봉에 내려와 나라를 세웠고, 대가락(大駕洛)이라 불렀는데, 곧 여섯 가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은 서력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출신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습니다. <삼국유사>의 '금관성 파사석탑' 조에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허황옥은 오빠 장유화상과 함께 배를 타고 가야로 올 때 파도가 심해 다시 돌아갔고, 아유타국의 왕(아버지)이 심한 파도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파사석탑을 싣고 가라는 명을 받들어 마침내 무사히 가야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조선총독부 역사관 그대로 가야의 건국 시조와 건국사를 부정합니다. 또한 강단사학은 중국에서 불교가 가야국으로 처음 들어온 때를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의 8대손인 김질왕이 김수로왕과 허황후를 위해 왕후사라는 사찰을 세웠던 서력 452년으로 봅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무조건 추종하는 무지한 한국 역사학자들이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가야국 제8대 김질왕이 가야국의 시조이며 생명의 뿌리가 되는 김수로왕과 허황후를 위해 사찰을 세웠다고만 기록했을 뿐 불교가 처음 들어왔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가야인들이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를 믿지 않아 사찰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지 불교가 처음 들어왔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일연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고려 문종 때의 금관지주사 문인(文人)이 편찬한 <가락국 본기>를 간추려 실었다고 했지만, 사실 확인을 위해 금관성의 파사석탑을 직접 답사한 후 기록을 남겼습니다.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후가 가야로 올 때 싣고 온 금관성의 파사석탑은 우리나라에서 나오지 않는 성분의 돌이라는 것이 검증됐습니다.

 

 

 

 

 

 

약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금관성의 파사석탑은 본래 가야국 제8대 질지왕이 서력 452년 왕후사와 함께 세운 김해의 호계사에 있었습니다. 조선 고종 때 김해부사로 부임한 정현석은 파사석탑이 호계사에 있는 것을 알고, 허황후께서 아유타국에서 가야로 오실 때 가져온 파사석탑은 당연히 허황후의 곁에 두어야 한다고 결정하고 허황후릉 옆으로 옮깁니다.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후와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이야기를 간직한 금관성의 파사석탑은 마땅히 국보가 되어야 하지만, 1996년에야 겨우 경남 문화재 227호로 지정됐었습니다.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넷째 아들부터 열 번째 아들까지 총 일곱 명은 외삼촌 장유화상과 함께 현재의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암자를 짓고 성불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제2의 가야국을 건설합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부경대 가야편: 38, 39, 40회 가야와 임나의 진실을 밝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AOXK8Tjt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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