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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깡패 아유카이 후사노신

by 일신우일신 도생 2021. 7. 24.

'임나는 곧 가야,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아유카이 후사노신

조선의 국모 중전 민씨(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깡패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은 1895년(을미) 양력 10월 8일(음력 8월 20일)에 발생했습니다. '을미사변'은 일제의 공사관과 영사관의 관원, 일본군, 일본 순사, 낭인 깡패집단 등의 무리가 조선 25대 왕 고종이 정사를 돌보던 궁궐을 습격해 국모(대한제국 선포 후 명성황후 추존)를 시해한 사건으로 사실상 불법적인 침략과 전쟁 선포입니다. 

 

 

일본군 출신의 미우라 고로(1847~1926) 공사는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1841~1909)과 같은 죠슈번 출신입니다. 조선의 국모 중전 민씨 시해 사건은 미우라 공사의 주도 아래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입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난처해진 일제는 '강화도조약'을 빌미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56명을 일본으로 소환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범들이 경복궁에 들어가 중전 민씨를 시해했다고 자백했지만, 일본 재판관은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깡패 중에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이 대학자로 추앙하는 아유카이 후사노신(1864~1946)도 있었습니다.

 

 

 

 

 

 

1896년 의협심이 많고 혈기가 넘치던 22살의 동학(東學) 교도 김창수는 황해도 안악의 한 주막에서 조선인으로 변장한 쓰치다 조스케를 국모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깡패라고 오인해 쓰치다 조시케를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청년 김창수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고종은 특사로 사형을 면했고 1898년 탈옥에 성공합니다. 1912년 젊은 청년 김창수는 백범(白凡)이라는 호를 짓고 김구로 개명합니다.

 

 

1985년 일제 공사관과 영사관의 관원과 일본군 600명, 일본군에게 군사훈련을 받은 훈련대 800명과 낭인 깡패 등이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민간인들도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습니다. 을미의숙(乙未義塾, 덕수상고의 뿌리)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일본 신문인 한성신보의 주필과 기자 등 한양(경성)에 머물던 일본인들과 함께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낭인 깡패 출신입니다. 

 

 

한국사를 작위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한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1930년대 '잡고雜攷)'라는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고, 전라남도 화순의 석탄 광산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깡패 출신의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고대 한반도 남부 지역의 가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더 넓게 확장하기 위해 '일본서기 조선지명고'에서 '고대 야마토 왜(일본)가 전라도와 충청도까지 차지했다.'라고 허무맹랑한 주장을 했습니다.

 

 

 

 

 

 

<일본서기>에는 야마토 왜(일본)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식민지로 삼았고, 심지어 고구려의 광개토태왕까지 조공을 받쳤다는 개가 웃을 내용이 있습니다. 경성제국대에서 식민사학 후예들을 양성하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 왜곡 조작에 앞장선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말도 안 되는 역사 조작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임나흥망사'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까지 임나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한국 강단사학에 뿌리내린 중심은 서울대 국사학과입니다. 김태식은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으로 홍익대 역사학과 교수,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한국고대사학회장 등을 지냈습니다. 한국 주류 강단사학을 대표하는 김태식은 가야 건국은 3세기였고 '가야는 곧 임나'라고 주장은 <일본서기> 내용, 즉 조선총독부 역사관과 똑같습니다.

 

 

김태식이 1997년 발표한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논문에서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방대한 문헌고증을 통하여 임나의 지명 비정 범위를 경남, 경북 및 충남, 전남까지 확장시켜서 임나는 경주지방 부근과 부여, 공주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역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서기'에 왜(倭)의 한반도 내 지배 영역이었다고 상정된 '임나'의 범위를 넓혀 잡기 위해 그가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함으로써 얻어진 연구 결과였다고 여겨진다."라고 아유카이 후사노신이 대학자인 양 극찬했습니다.

 

 

 

 

<이덕일 TV: 전라도는 일본땅? 일본이 침략 논리로 만든 '전라도 가야설'

명성황후 시해 낭인 깡패가 만든 침략이론>

https://www.youtube.com/watch?v=EWh5PRU6t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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