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원나라와 명나라가 설치한 쌍성총관부와 철령위 위치 문제

by 도생(道生) 2021. 10. 9.

요동과 만주에 있던 쌍성총관부와 철령위를 한반도로 끌어들인 친일파 한국 역사학계 

원나라(몽고)와 명나라가 한반도에 설치한 것으로 조작된 직할 통치기구의 위치 문제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즉 여말선초(麗末鮮初) 역사와 중국과 한국의 문헌 사료인 <명사>, <원사>, <요사>, <금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환단고기> 등의 역사와 너무 다릅니다. 특히 고려의 국경선과 관련된 원나라(몽고)와 명나라가 현재 함경남도 일대에 설치했다고 주장하는 직할 통치기구의 위치 문제는 심각을 넘어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가 편찬한 명나라 역사책 <명사明史, 한족>, 명나라가 편찬한 원나라의 역사책 <원사元史, 몽고>, 원나라 때 편찬된 요나라의 역사책 <요사遼史, 거란>와 <금사金史, 여진>,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과 <환단고기-태백일사-고려국본기> 등의 모든 역사서 중 <환단고기>를 제외한 모든 사서는 국가에서 편찬한 관찬사서입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배출된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학자는 원나라(몽고)와 명나라가 설치했다는 직할 통치기구의 위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 주장을 '정설'이라고 유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쌍성총관부와 철령위 위치가 문헌과 유적 등을 통해 조작됐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 식민사학만이 소위 '정설', '통설', '만고의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최근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를 조작한 내용을 배제하고 기존의 중국 역사를 기록한 <명사>, <요사>, <금사>, <원사> 등의 중국 사서를 통해 중국의 행정구역과 국경선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국경선 내용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우리나라 역사서를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고려의 23대 고종 황제 재위 45년(1258) 북방의 강력한 몽고제국(원나라)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겁에 질린 조휘와 탁청이 지방관을 죽이고 몽고에 항복하면서 바친 땅에 몽고(원나라)가 직할 통치기구인 쌍성총관부를 설치했습니다. 몽고(원나라)는 조휘를 쌍성총관부의 총관에 임명하고 탁청을 쌍성총관부 천호(千戶)로 삼았습니다.

 

 

고려의 31대 왕 공민왕 5년(1356) 원나라에 부역한 기철 일파를 척살하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고려의 영토를 되찾게 됩니다. 원나라(몽고)의 역사책인 <원사>에는 쌍성총관부가 화주(和州), 즉 요동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쓰다 소키치는 현재의 함경남도 영흥 지역에 쌍성총관부가 있었다고 위치를 조작합니다.

 

 

 

 

 

 

'고려사 세가 권제39'에는 "공민왕 5년 5월 평리 인당, 동지밀직사사 강중경을 서북면병마사로, 사윤 신순·유홍, 전 대호군 최영, 전 부정 최부개를 부사로 임명하여 압록강 서쪽의 8참(站)을 공격하게 하였다. 또 밀직부사 유인우를 동북면병마사로, 전 대호군 공천보, 전 종부령 김원봉을 부사로 임명하여 쌍성(총관부) 등지를 수복하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려사>에는 공민왕의 명을 받들어 강중경, 신순, 유홍, 최영 등은 압록강을 서쪽을 공격하여 고려의 서북쪽 국경선(서북계)을 위치를 확장했고, 유인우, 공천보, 김원봉 등은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여 고려 동북쪽 국경선(동계) 위치를 확장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쌍성총관부의 위치는 동계(東界)와 전혀 다른 함경남도 영흥입니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동계(東界)는 본래 고구려의 옛 땅으로....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9성을 두었는데, 공험진 선춘령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 이남에서 삼척 이북을 통틀어 동계(東界)라 일컬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두만강의 경원에서 북쪽 700리에 공험진, 동북으로 700리에 선춘현(선춘령)이 있다."라고 기록하여 고려의 북방 동계의 국경선 위치가 만주였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고려는 군사를 압록강 서쪽과 북쪽 두 군데로 나누어 영토를 회복했는데, 한국의 모든 국사교과서는 고려 국경선 위치에 대하여 요동과 만주는 기록조차 없고, 한반도의 동쪽으로 진군하여 원나라(몽고)가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수복했다고 써놓았습니다. 한국 역사학계는 일제가 조작한 내용을 확인하고도 사료와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주장을 '만고의 진리'라고 받들고 있습니다.  

 

 

 

 

 

 

1368년 원나라(몽고)를 몰아내고 건국한 명나라는 고려 32대 왕 우왕 13년(1387) 철령 이북은 본래 원나라(몽고)의 땅이었기 때문에 요동(遼東)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옛 쌍성총관부 위치에 직할 통치기구인 철령위를 설치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명나라가 빼앗은 철령위의 위치를 쌍성총관부와 마찬가지로 함경도라고 위치를 조작합니다.

 

원나라(몽고)의 역사책인 <원사> "(1273)요동의 쌍성(총관부) 및 화주 등처에서도 금을 캐게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명나라 역사책인 <명사>에도 "홍치 16년(1503) 3월 경오에 요동 철령위에 북두성 같은 불이 떨어졌다."라는 기록과 <원사>의 기록은 모두 '쌍성총관부와 철령위의 위치가 요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13대 인종 황제 원년(1123) 사신으로 온 송나라의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에 맞닿고, 북쪽은 거란의 옛 땅과 접하고, 동쪽은 대금(大金)과 맞닿는다."라고 하여 고려의 서북 국경선이 요동반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해(遼海)'를 '발해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요해'는 바다가 아닙니다.

 

금나라 역사책인 <금사> '지리지' "동경로(東京路) 신하 징주(澄州)가 본래 요해주(遼海州)"라고 하여 '요해'는 금나라가 설치한 요동반도 일대의 행정구역입니다. 중국 역사학계는 '요해'를 지금의 요녕성 해성시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명나라가 쌍성총관부 위치에 새롭게 설치했다는 철령위 위치도 조작된 것입니다. 쌍성총관부와 철령위 위치 문제는 원나라(몽고)와 명나라가 설치한 기구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중국의 <원사>와 <명사>가 가장 확실합니다. 한국 강단사학은 원나라(몽고)가 쌍성총관부를 설치한 곳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고 했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쌍성총관부 위치가 조작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철령위 위치 문제도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명나라의 지리지인 '요동지(遼東志)'에는 "철령위는 요양성 북 240리에 있다, 옛날에는 철령성이 지금의 철령위 치소 동남 500리에 있었다. 고려와 경계를 접했다. 홍무 21년(1388)에 철령위를 그곳에 설치하여 26년(1393)에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명사 지리지' "철령위는 홍무 21년(1388) 3월 옛 철령성에 설치했다. 홍무 26년(1393) 4월 옛 은주(嚚州)땅으로 이전했는데, 곧 지금 다스리는 치소이다, 철령은 서쪽으로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으로 범하(汎河)가 있고, 또 남쪽으로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흘려서 요하로 들어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문헌 사료는 모두 고려의 북쪽 국경선인 서계와 동계가 요동과 만주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식민사관의 소위 '반도사관' 틀에 맞추기 위해 사료를 조작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역사 바로 세우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을 '만고의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서울편: 1, 2회 천지광명의 역사를 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eu7hAS4xDQ&list=PLGD5OCKBh-RP7cx4SWxNapepRBZalI_LM&index=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