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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발해 왕 계보, 신라 왕 계보, 고려 왕 계보?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

by 도생(道生) 2021. 10. 2.

황제(皇帝)의 역사 '본기(本紀)', 제후국 왕(王)의 역사 '세가(世家)'

발해 왕 계보, 신라 왕 계보, 고려 왕 계보?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발해)이 북쪽에 자리를 잡고, 남쪽에는 (통일) 신라가 자리를 잡아 우리나라 첫 번째 남북국시대가 열렸습니다. 신라 말기였던 서력 892년 견훤이 후백제,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태봉)를 건국하면서 소위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고 말하지만, 북쪽에 대진국(발해)이 있었기 때문에 '후삼국 시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용어입니다.

 

 

궁예의 태봉국(후고구려)을 접수한 태조 왕건은 서력 918년 고려를 건국합니다. 서력 926년 북쪽의 대진국이 갑작스럽게 멸망했고, 936년 고려의 왕건이 남쪽의 신라와 후백제까지 통일하면서 고려는 '통일국가'로 자리 잡게 됩니다. 대진국,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 고려는 모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황제가 통치한 천자의 나라입니다. 

 

 

중화 사대주의자인 김부식이 주도하여 편찬한 고려 시대 관찬사서 <삼국사기>는 황제의 기록인 본기(本紀)제후(왕)의 기록인 세가(世家), 신하의 기록인 열전(列傳) 등 기전체(紀傳體) 양식입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군주 기록을 황제의 역사 기록인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라고 명명했지만, 그 내용은 제후국 군주의 기록인 세가(世家), 즉 왕(王)으로 격하 시켜 편찬했습니다.

 

 

 

 

 

 

고려 중기 유입된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중화 사대주의에 정신이 오염되어 황제의 나라였던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국(발해), 후백제, 후고구려, 고려를 왕이 다스린 제후국의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 국권을 강탈하면서 잘못된 역사 기록을 본래부터 왕이 다스린 나라의 역사인 것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시작되어 개수를 거쳐 세종을 거쳐 문종 1년에 완성된 고려 역사 기록인 <고려사>는 고려의 역사를 황제의 역사가 아닌 제후들의 사적을 기록한 '세가(世家)'로 편찬했습니다. 고려 시대에 들어온 유교 사상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중화 사대주의 세계관에 매몰된 것입니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이 <고려사>를 개수할 때 고려가 황제의 나라였다는 사실 그대로 담아 편찬하려고 했다는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나와 있습니다. '성황', '천자', '황제' 등의 호칭은 고려 때 편찬된 <제왕운기>와 <보한집>에 등장하고, 조선 시대 편찬된 <고려사>에도 고려가 황제의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고려는 25대 충렬왕 때 원나라(몽골제국)의 속국인 제후국이 되었고, 34대 공양왕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문을 닫게 됩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 24대까지는 군주에 대하여 폐하(陛下)라는 경칭을 사용했습니다. 고려의 건국 시조 태조 왕건부터 24대 원종까지는 황제의 계보, 25대 충렬왕부터 34대 공양왕까지는 고려 왕 계보라고 해야 맞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국(발해), 후백제, 후고구려, 고려 등의 나라가 군주에 대하여 대왕, 태왕, 어라하, 황제 등 다른 호칭을 사용하면서 모두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한 황제의 나라였기 때문에 '왕 계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라를 다스린 군주를 말할 때는 대진국 황제 계보, 고구려 황제 계보 또는 고구려 태왕(대왕) 계보, 신라 대왕 계보, 백제 어하라 계보 또는 백제 대왕 계보라고 해야 옳습니다.

 

 

칭제건원(稱帝建元)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를 황제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여 천자의 나라임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중화 사대주의 사상에 근거해 편찬된 고려 시대의 <삼국사기>와 조선 시대의 <고려사> 등과 일제 식민사관은 황제가 다스린 나라를 모두 제후국의 왕으로 격하시켰습니다.

 

 

 

 

 

 

대진국(발해)의 정효공주 묘지(墓誌), <삼국사기>, 고구려의 광개토태왕 비문, 신라의 진흥왕 순수비, 백제의 무령왕릉 지석(誌石)과 칠지도 등 다양한 기록에서 대진국,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가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했다는 것은 황제의 나라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곡된 역사가 수백 년 동안 고착화되면서 고구려 황제 계보는 고구려 왕 계보, 백제 황제 계보는 백제 왕 계보, 대진국(발해) 황제 계보는 발해 왕 계보, 신라 황제 계보는 신라 왕 계보, 고려 황제 계보는 고려 왕 계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 역사학계는 이런 왜곡된 역사를 알면서도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고려가 외부적으로는 왕이었고 내부적으로는 황제라고 칭했다는 이른바 '외왕내제(外王內帝)' 체제였다고 주장하지만, 고려 시대 이승휴가 편찬한 <제왕운기>와 이규보의 <보한집>, 원나라 때 편찬된 <금사金史> 등에 고려의 임금을 천자, 황제, 성황, 제왕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는 천자의 나라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상생문화연구소 정원식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Apx_2Ozpz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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