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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과 일제 식민사관

by 도생(道生) 2021. 10. 10.

'이씨 조선'은 허구한 날 싸우다 망했다는 소위 '당파성론'은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

철령위 문제로 요동으로 출병한 5만 명의 위화도 회군과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조선을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 왕 명치를 필두로 일제의 민관군(民官軍)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국의 역사와 정신문화의 뿌리를 잘라내고 왜곡 조작된 역사관을 일제 식민사관이라고 합니다. 조선은 옛날부터 스스로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항상 남의 힘으로 발전했고,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다 망한 민족이라는 소위 '타율성론'과 '정체성론'과 '반도성론'과 '당파성론'은 악질적이고 불의한 일제 식민사관입니다.

 

 

한국인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제가 왜곡 날조한 역사관에 세뇌되고 길들어져 올바른 한국사를 모릅니다. 약 15년 전 최초로 정립된 심리학 용어인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타인의 심리를 지배하여 조종하는 일종의 세뇌행위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 개인에 대한 '가스라이팅'과 비교가 안 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19세기 '명치유신'을 전후하여 조선을 정벌하자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됐을 때부터 한국인을 세뇌하고 길들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갑니다. 얼마 전 101세 철학자가 모 신문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조선왕조부터 원수 갚느라 다 죽이고 은혜 갚느라 끼리끼리 뭉쳤다.'라고 했는데, 전형적인 일제 식민사관의 '당파성론'에 세뇌된 발언이었습니다.

 

 

 

 

 

 

서구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체제가 약 200년의 역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붕당정치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정치만 했다고 주장하는 소위 당파성론'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언제나 피 터지게 싸움질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의 역사를 살펴봐도 조선과 같이 500년의 역사를 지속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문화적으로도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강국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인은 학교에서 역사와 정신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오죽했으면 모 언론에서 한국인은 드라마, 영화, 만화 등을 통해 역사를 배운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관에 세뇌된 한국인의 눈에만 조선은 500년 동안 피 터지게 죽고 죽이는 싸움질만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중화 사대주의 국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은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문화를 말살했습니다.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문화강국인 조선 왕조를 소위 '당파성론'으로 조작해 허구한 날 싸움질하면서 죽고 죽이는 역사로 조작해 한국인을 세뇌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일제 식민사관으로 조작된 내용입니다. 위화도(威化島)라는 지명에 '섬 도(島)'가 들어가지만, 위화도는 섬이 아닙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조작한 사실은 한국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류 강단사학자 중 단 한 사람도 이러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사교과서에는 태조 이성계가 회군한 것으로 알려진 위화도는 압록강 중간에 있는 하중도(河中島)라는 섬이라고 쓰여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서력 1388년 음력 5월 고려의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요동으로 출병하게 된 원인은 철령위 문제 때문입니다. 명나라가 현재의 만주 심양 인근 부계시 근처에 철령위를 설치하여 다스리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합니다.

 

 

고려 우왕과 최영 장군은 좌군은 조민수 장군, 우군은 이성계 장군으로 하여 총 병력 약 5만여 명의 요동 공격군이 출병했고, 위화도에서 회군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상고역사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의 역사와 영토를 왜곡 조작한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한 한국 주류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철령위의 위치는 일제 식민사학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동쪽의 함경남도 지역입니다.

 

 

 

 

 

 

모든 사서에는 철령위 문제가 터졌을 때 이성계와 조민수가 압록강 건너 서북쪽의 요동으로 출병했다고 나와 있는데, 철령위가 한반도의 함경남도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이를 추종하는 한국의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태조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는 압록강 하중도(河中道), 즉 강의 중간에 있는 모래섬입니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는 섬이 아니라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고려사>, <비변사등록> 등 여러 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 사서에는 '도압록강渡鴨綠江 둔위화도 屯威化島,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진을 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요동정벌 때 압록강에 있는 하중도(河中島)인 위화도에서 회군했다면 모든 사서에는 '위화도(섬)에 들어갔다'라는 의미로 '입도(入島)'라고 쓰여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압록강 하류에 있는 위화도는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평평한 섬이라는 사실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회군했다는 진짜 위화도에는 '태조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고, '호군천'이라는 개천도 있고, '익원당'이라는 건축물이 있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위화도를 '강가에 있는 땅', 즉 '연변(沿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고려와 조선의 영토를 한반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일제 식민사관의 파렴치한 역사 조작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44권 숙종 32년 11월 13일>

"의주의 진사 김덕호가 상소하기를 "본주(本主)의 익원당(翊原堂)은 태조(이성계)께서 회군하신 곳이고, 선조(宣祖)께서 주필(駐蹕, 임금이 머물러 묵는다) 하신 곳입니다..... 또 태조께서 회군하실 때 주필하신 태조봉(太祖峰), 호군천(犒軍川)이라는 곳도 아울러 봉표(封表, 글을 써서 겉을 봉한다) 하소서."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45권 숙종 33년 1월 25일>

예조 판서 서문유가 작년 의주 유생의 상소한 일로 품지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위화도는 이미 비(碑)를 세울 곳이 아니다. 그리고 태조봉(太祖峰)과 회군천(回軍川)은 모두 비를 세우기가 어렵고, 익원당(翊原當)은 그 장소를 적실히 알지 못하니, 본도(本道) 감사로 하여금 다시 살펴서 보고하게 하라."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48권 정조 22년 1월 15일>

비국 당상 정민시가 아뢰기를 "의주부는 본디 사람은 많고 땅은 좁은데, 그중 위화도는 토지가 비옥한데도 오랫동안 버려져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곳 백성들이 농사를 짓도록 허락해주기를 원하고 있으나, 의논하는 자가 어렵게 말하기를 '성조(이성계)께서 군대를 주둔시켰던 곳이다.' 또는 '연변(沿邊)의 땅이다.' 또는 '오래 버려진 땅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곳 읍지(邑誌)에 의하면 '땅이 비옥하여 농사지은 백성이 많았는데.... 서쪽으로 강가의 칠읍(七邑)과 북쪽으로 삼수, 갑산과 육진(六鎭)은 모두가 연변(沿邊, 강가에 있는 땅)의 땅인데도 백성들이 그곳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어찌하여 유독 이 위화도에 대해서만 어렵게 여긴단 말입니까."

 

 

 

 

 

 

<고려사 열전 권제26 최영> (서북면도안무사) 최원지가 또 보고하기를, "요동도사가 지휘 2명을 보내어 군사 1,000여 명으로 강계(江界)에 와서 장차 철령위를 세우려 하고 있으며, 명(나라) 황제가 이미 관아와 역참을 설치하였습니다."

 

<고려사 열전 권제50 우왕 14년> "철령 이북은 원래 원조(元朝, 원나라)에 속했던 것이니, 아울러 요동(遼東)에 귀속시키겠다. 그 나머지 개원, 심양, 신주 등지의 군민은 원래 생업에 복귀시키도록하라."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

명나라 황제(주원장)가 말하기를 "철령을 따라 이어진 북쪽과 동쪽과 서쪽은 원래 개원로(開元路)에서 관할하던 군민이 소속해 있던 곳이니, 중국인, 여진인, 달달인, 고려인을 그대로 요동(遼東)에 소속시켜야 된다."고 하였다, 최영이 백관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명나라에 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우왕은 최영과 비밀히 의논하여 요동(遼東)을 치려고 하매, 공산부원군 이자송이 최영의 사제에 나아가서 옳지 못함을 힘써 말하니, 최영은 자송이 임견미에게 편당(偏黨)해 붙었다고 핑계하고는 곤장을 쳐서 전라도 내상으로 유배시켰다가, 조금 후에 그를 죽였다. 우왕이 서북면 도안무사의 "요동 군사가 강계(江界)에 이르러 장차 철령위를 세우려 한다."는 보고를 받고 울면서 말하기를, "여러 신하들이 나의 요동을 공격하려는 계책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하였다. 명나라가 다시 요동 백호 왕득명을 보내어 철령위를 세움을 알렸다."

 

'개원로(開元路)'는 원나라(몽고)가 요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입니다. 원나라와 명나라, 고려와 조선에서 말하는 철령위는 요동입니다. 고려와 조선의 영토를 조작한 일제 식민사관과 식민사관을 계승한 한국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철령위'는 세상 어느 문헌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장소입니다.

(PPT: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허우범 연구원 자료)

 

 

 

 

 

<환단고기 북콘서트 미국편: 3, 4, 5회 대한, 천지광명의 역사를 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X1KpgNUr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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