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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구려를 계승한 대중상과 대조영 황제의 해동성국 대진국(발해)

by 도생 2022. 4. 2.

나라 이름을 바다 이름인 '발해(渤海)'라고 하한 것을 마치 하사한 것처럼 호도하는 한국 역사학계

당(唐), 신라, 왜(倭)도 조공한 고구려를 계승한 대중상과 대조영 황제의 해동성국 대진국(大震國)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의 역사 왜곡 조작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이 한참 진행 중일 때 한국 주류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한 '식민사학 학설'을 정설로 굳히기 위해 묵인하고 방관했습니다. 또한 중국이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大震國)을 '발해'라고 폄하해 부른 것을 큰 은혜를 받은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발해(渤海)'는 본래 우리나라 서쪽 바다인 황해에서 보면 서북쪽 끝에 위치한 중국 쪽의 바다 이름입니다. 국명(國名)으로 바다 이름을 사용하기 경우는 있지만, 바다 이름을 가지고 나라 이름을 만든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당나라로부터 '말갈 집단'으로 비하 받았는데 713년 대조영이 당나라의 은혜를 받아 '발해군왕'으로 책봉 받은 후 나라 이름을 '발해'로 바꾸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일방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대중상과 대조영 부자가 건국한 나라의 첫 이름은 '후고구려'입니다. <환단고기>의 <대진국본기>에는 668년 고구려 평양성을 함락당했을 때 당시 서압록하(지금의 서요하)를 지키던 진국장국 대중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과 함께 힘을 합쳐 동모산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후고구려를 건국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 기록 - 북적北狄: 북쪽 오랑캐 = '발해')

 

 

 

대중상은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고 '중광(重光)'이라는 연호를 사용, 즉 칭제건원(稱帝建元)했습니다. 중광 32년인 699년 후고구려를 건국한 황제 대중상이 붕어하자 태자 대조영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오릅니다. 후고구려의 황제 대조영은 도읍을 홀한성(지금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성)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대진국(大震國)으로 바꿉니다. 대진국 대조영 황제의 연호는 천통(天統)입니다. 당나라는 대진국을 오랑캐로 업신여겨 바다 이름인 '발해(渤海)'라고 비하한 것입니다.

 

 

'칭제건원(稱帝建元)에서 '칭제(稱帝)'는 군주를 황제라 칭하는 것이고 '건원(建元)'은 연호를 정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제후국, 속국, 조공국 등은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칭제건원'한 인물은 북부여를 침공한 한나라 무제 유철입니다. 한무제 유철이 북부여를 쳐들어왔을 때 후일 동명성왕으로 불린 고두막한 단군에게 참패하고 한漢나라로 물러났습니다.

 

 

대진국은 영토가 넓어 5경9京) 60주(州)로 국가를 다스렸는데 5경(京)은 수도가 다섯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한韓민족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대한제국이 황제의 나라였기 때문에 모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통일신라와 남북국 시대를 연 대중상과 대조영 부자가 건국한 해동성국 대진국은 당나라와 신라와 왜(일본)으로부터 조공을 받은 황제의 나라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한반도 평양 일대와 요동 지역 일부만 점령했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진국 건국을 전후하여 국제정세는 당나라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669년 당나라 설인귀가 이끈 10만 대군은 토번(티베트)과의 전쟁에서 전멸당했고, 돌궐의 활발한 재건과 거란군과 전쟁에서 대패 하는 등 대진국과 전면전을 치룰 여력이 없었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를 정통으로 놓기 위해 고구려를 폄하했고 대중상과 대조영 부자가 건국한 대진국 역사는 직접 다루지 않았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 "옛 도읍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으니,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칭하며 와서 도읍하였다."라고 하면서 해모수가 유화부인과 사통하여 고구려 시조인 고주몽 성제를 낳았다고 천륜을 파괴했습니다. 

 

 

고려 때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帝王韻紀>와 일연의 <삼국유사> 중국의 사료와 우리나라 사료인 <삼국사三國史>와 <신라고기新羅古記>를 인용하여 "대조영이 고구려의 장수였다."라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구당서>와 <신당서> 등의 사료는 대진국을 '발해'와 '말갈' 등으로 폄하했습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우리 역사를 비하한 중국의 기록을 무차별적으로 퍼트리는 더 비열한 집단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경주편: 신라 천년 역사의 비밀을 밝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I_OU0gY80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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