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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 상생방송

고려 건국의 개국공신 남평 문씨 시조 문다성 중시조 문익

by 도생(道生) 2023. 2. 17.

STB상생방송 《한국의 성씨 30회》

고려 건국의 개국공신 남평 문씨 시조 문다성과 중시조 문익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인 '이자춘 신도비(神道碑)'는 고려 말 포은(圃隱) 정몽주(1337~1392)와 야은(冶隱) 길재(1353~1419)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불린 목은(牧隱) 이색(1328~1396)이 지은 것입니다. '이자춘신도비'와 <고려사> 등에 이성계의 6대조 이인(李璘, 이린)의 기록이 나옵니다.

 

 

고려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문신(文臣)을 우대한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의방을 비롯한 이고와 정중부 등 무신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무신(武臣)의 난(亂)을 주도했습니다. 이의방의 동생인 이인(이린) 황제에게도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충직한 문신(文臣) 문극겸의 딸과 결혼하면서 남평 문씨와 전주 이씨의 큰 인연이 시작됩니다.

 

 

이후 문극겸의 7대손인 문익점의 딸이인의 6대손인 이원계가 결혼하면서 남평 문씨와 전주 이씨가 집안의 인연이 다시 이어집니다. 이원계는 이자춘의 장남이며 이복동생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입니다. 고려 말 이성계 세력의 전제개혁 반대한 문익점은 탄핵받고 낙향하여 목화 재배에 성공합니다. 고려의 신하였던 문익점은 조선이 건국된 후 강성군에 추봉된 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세조 때 이르러 문익점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집니다.

 

 

 

 

 

 

이원계(완풍대군으로 추봉)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이원계는 고려의 신하로서 국가와 임금을 배신할 수도 없고 이복동생이지만, 우애가 깊었던 동생 이성계와 칼을 들고 싸울 수도 없어 자결합니다. 남평 문씨 시조는 신라 말 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태어나 고려 건국에 기여한 건국공신 문다성입니다.

 

 

남평백에 봉해진 문다성의 묘는 실전(失傳)되었고, 문다성의 아들 문탁 이후 세계까지 실전됩니다. 남평 문씨는 고려 문종 황제 때 과거에 급제하고 참지정사(參知政事, 종2품) 벼슬을 한 문익을 1세로 하여 중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남평 문씨의 시조 문다성은 고려 건국의 개국공신이지만, 명실공히 고려의 명문 집안으로 다져진 것은 중시조인 문익부터입니다.

 

 

중시조 문익의 네 아들 중 출가하여 조계종 대선사가 된 셋째 아들 문가관을 제외하고, 첫째 문공인, 둘째 문공원, 넷째 문공유은 모두 재상을 역임합니다. 문익부터 증손자까지 종3품이상 2명과 종2품 이상 6명이 배출되면서 명문거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익의 손자가 무신이 난 때 문신들을 구하고 문무 겸직했던 문극겸입니다.

 

 

 

 

 

STB상생방송 《한국의 성씨 30회》

고려 건국의 개국공신 남평 문씨 시조 문다성과 중시조 문익

https://www.youtube.com/watch?v=2m50p7a3z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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