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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 상생방송

남양 홍씨 당홍계 선시조 홍천하 시조 홍은열과 토홍계 홍선행

by 도생(道生) 2023. 2. 16.

STB상생방송 《한국의 성씨 29회 남양 홍(洪)씨》

고구려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당홍계(唐洪界) 선시조 홍천하와 시조 홍은열

고려 고종황제 때 금오위별장(金吾衛別將)을 지낸 토홍계(土洪界) 시조 홍선행

 

 

 

 

 

 

2021년 8월 15일 광복절 카자흐스탄에 78년 동안 잠들어 계시던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가 조국의 품으로 봉환되었습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지만, 조국의 광복을 끝내 못 보고 이역만리에서 순국한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3일 후인 8월 18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일제와 독립전쟁의 선봉에 서서 봉오동 대첩과 청산리 대첩이라는 빛나는 두 개의 금자탑을 쌓은 여천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인 운초 계연수 선생(1864~1920)께서 한국의 1만 년 정통 역사와 정신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환단고기桓檀古記> 출간에 어려움을 겪자 오동진 장군(1889~1944)과 함께 개인재산을 털어 출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봉오동 대첩은 병력과 화력 면에서 월등한 일본 정예군을 섬멸한 전투로써 독립전쟁 역사상 최초의 전면전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당홍계 남양 홍씨 후손인 홍범도 장군뿐만 아니라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전쟁과 함께 일제가 왜곡 날조한 한국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지켜왔습니다.

 

 

 

 

 

 

한국의 참역사와 정신문화의 진실을 찾는 것과 우리의 뿌리를 찾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양 홍씨는 두 가지 계보가 있는 성씨로 당나라에서 귀화한 당홍계와 토착 성씨인 토홍계로 나뉩니다. 남양 홍씨의 첫 번째 계보는 약 1,400년 전 당나라에서 고구려로 파견된 8학사 중 한 명인 홍천하(洪天河)입니다.

 

 

여덟 명의 당나라 학사가 고구려에 왔다 당나라로 돌아갈 즈음 고·당 전쟁이 일어나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후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후일 신라의 선덕여왕의 보살핌으로 신라에서 벼슬을 합니다. 선시조(先始祖) 홍천하의 11세손 충정공 홍은열(洪殷悅)은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 창업 때 크게 이바지한 공으로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고 삼중대광태사의 자리에 오르고 당홍계 남양 홍씨의 시조가 됩니다.

 

 

두 번째 계보는 고려 23대 고종황제(재위 1213~1259)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남양 홍씨 당홍계와 토홍계 모두 고려 때 최고의 명문 갑족이었습니다. 당홍계와 토홍계는 조상이 다르다고 주장하며 서로 계보를 달리하지만, 동성동본이라고 하여 서로 결혼도 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냅니다. 토홍계가 당홍계의 후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토홍계 후손들은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STB상생방송 《한국의 성씨 29회 남양 홍(洪)씨》

고구려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당홍계(唐洪界) 선시조 홍천하와 시조 홍은열

고려 고종황제 때 금오위별장(金吾衛別將)을 지낸 토홍계(土洪界) 시조 홍선행

https://www.youtube.com/watch?v=Ut0-ddYD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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