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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 원조 구례마와 시조 손순과 동학접주 손화중 장군

by 도생(道生) 2023. 2. 19.

《한국의 성씨 32회》

밀양 손(孫)씨 원조(元祖, 도시조) 구례마와 시조(중시조) 손순

동학농민혁명의 3대 지도자 중 한 명 동학접주 손화중 장군

 

 

 

 

 

 

박혁거세는 여섯 마을의 촌장이 임금으로 추대해 신라의 창업 시조가 됩니다. 육촌(六村)의 촌장 중 무산대수촌(無酸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 씨족장의 고유 명칭) 촌장은 밀양 손씨의 최고 조상인 도시조(都始祖), 곧 원조(元祖)가 됩니다. 신라 3대 임금 유리왕 때 이르러 '손씨(孫氏)'로 사성(賜姓)을 받았고, 시조로 받드는 손순(孫順)은 구례마의 31세손입니다.

 

 

손긍훈(孫兢訓)은 본래 신라의 신하였으나 신라가 망한 후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가 삼한(三韓)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워 정1품의 벼슬에 오르고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졌습니다. 손긍훈은 밀양 손씨가 고려에서 명문가로 자리 잡는데 기반을 다진 인물로 대종회에서는 중흥조(중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손홍록(孫弘祿)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안의(安義)와 함께 <조선왕조실록> '전주 사고본'을 지켜낸 인물입니다. 임진왜란 때 '춘추관', '성주 사고', '충주 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안의와 손홍록의 노력으로 '전주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800여 권의 실록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북접도 참여했지만, 남접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후일 천도교 지도자가 되는 밀양 손씨인 의암 손병희(1861~1922)는 북접이었고 손화중 장군은 남접입니다. 동학접주 김개남(1853~1895), 전봉준(1855~1895), 손화중(1861~1895)은 모두 남접으로 세분을 동학농민혁명의 3대 지도자로 꼽습니다.

 

 

1861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부유한 밀양 손씨 집안에서 태어나 20대 초반 동학에 입도한 손화중 장군은 동학접주 중 조직력이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합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총명했던 손화중 장군은 후일 일본군이 '대접주 거괴'라고 표현할 정도로 전라도 고창과 부안 일대에서 포교로 큰 규모의 조직을 만듭니다. 

 

 

김개남 장군과 전봉준 장군과 손화중 장군은 두 살에서 8살까지 나이 차이가 났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지도자입니다. 1895년 1월 전라도 흥덕 재실(齋室)에 숨어 있던 손화중 장군은 이봉우의 고발로 체포되었고, 전주를 거쳐 서울로 이송되어 심문받고 전봉준 장군 등과 함께 처형됐습니다.

 

 

 

 

《한국의 성씨 32회》

밀양 손(孫)씨 원조(元祖, 도시조) 구례마와 시조(중시조) 손순

동학농민혁명의 3대 지도자 중 한 명 동학접주 손화중 장군

https://www.youtube.com/watch?v=1b4Fb0NTU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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