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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한글)은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다.(환단고기-단군세기)

by 도생(道生) 2013. 10. 8.

조선에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한글)은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환단고기 - 단군세기)

 

조선의 세종대왕께서 1443년 훈민정음(한글)을 반포 하셨다.

한글이 전세계 어떤 문자와 비교해 보아도 아주 우수하다는 것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한글은 옛 글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훈민정음(한글)이 옛 글자를 모방하여 만들어 졌다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세종 25년(1443 계해) 12월 30일(경술)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당시 훈민정음(한글) 창제에 참여했던 정인지가 쓴 머릿말(序文)에도 옛 글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세종 28년(1446 병인) 9월 29일(갑오)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니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 그래서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천.지.인)의 도를 심었으므로 후세에도 능히 바뀌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다르게 되니 소리의 기운도 역시 달라졌다. 대개 외국의 말은 소리는 있으나 그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 통용케한 것은 오히려 그 소리에서 벌어지게 하는 것이 되었다. 어찌 능히 통달한다 하여도 뚫음이 없으리오? 대개 그 처한 방에 따라 편안하게 할 필요가 있으나 가히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은 화하(중화)와 같으나 방언의 말이 그와 같지 아니하다.........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庚子二年이라 時俗이 尙不一하고

경자이년      시속    상불일

方言이 相殊하야 雖有象形表意之眞書나

방언    상수      수유상형의지진서

十家之邑이 語多不通하고 百里之國이 字難相解라.

십가지읍    어다불통      백리지국    자난상해

於是에 命三郞乙普勒하사

어시   명삼랑을보륵

撰正音三十八字하시니 是爲加臨土라.

찬정음삼십팔자         시위가림토

其文에 曰

기문    왈

辛丑三年이라.

신축삼년

命神誌高偰하사 編修倍達留記 하시니라.

명신지고설       편수배달유기

재위 2년 경자(단기 153, BCE 2181)년, 이때 풍속이 일치하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비록 상형象形 · 표의表意 문자인 진서眞書가 있어도 열 가구 정도 모인 마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많고, 땅이 백 리가 되는 나라에서는 서로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가륵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 글자는 다음과 같다.

 

재위 3년 신축(단기 154, BCE 2180)년에

신지神誌 고설高契에게 명하시어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찬하게 하였다.

 

(진서眞書 = 신지 혁덕이 만든 녹도문鹿圖文,『배달유기』는 한민족 최초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으나 현존하지 않음)

고조선 3세 단군 가륵 嘉勒 (BC 2182 기해 - BC 2138 계미) 재위 45년

가륵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해(환기 5016, 신시개천 1716, 단기 152, BCE 2182)년.

 

 

단군조선 이전 배달국 환웅천황 시대의 녹도문(진서眞書)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是日에 罷獵卽歸하야 反復審思하고  廣察萬象하야 不多日에 悟得刱成文字하니 是爲太古文字之始矣라.

시일    파렵즉귀      반부심사       광찰만상       부다일   오득창성문자      시위태고문자지시의

이 날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골똘히 생각하며 온갖 사물의 형상을 널리 관찰하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깨달음을 얻어 문자를 창제하니, 이것이 태고 문자의 시작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제」을 보면, 초대환웅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지 혁덕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힌트를 얻어 궁구한 끝에,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또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제」의 기록을 보면,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사슴의 발자국 모양)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케 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당시에 녹도란 문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제3세 가륵단군 시대보다 1500년 이상 앞선 초대 환웅시대에 이미 문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훈민정음(한글)의 우수성  

세종대왕의 훈민정음(한글)에 대한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는 지난 1994년 7월호 특집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한글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 

한마디로 말해서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는 것이다.  

 

세계 문자 역사의 종주는 바로 우리 배달민족이다.

 

앞으로 우리 나라 상고사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 우리 한민족이 세계 문자 역사의 종주이며, 배달국은 세계최초로 문자를 가졌던 일등 문명국이었음이 만천하에 밝혀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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