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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제국의 딸 황녀에서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여걸 여황제 소서노

by 도생(道生) 2026. 3. 7.

김부식이 주도하여 편찬한 <삼국사기>의 원문(原文)과 주석(註釋) 의도적 오류?

대부여 제국의 딸 황녀(皇女)에서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여걸 여황제 소서노 어하라

 

 

 

 

김부식이 중화 사대주의자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더불어 김부식이 정사(正史) <삼국사(三國史)> 편찬을 주도하면서 역사의 중심을 신라로 삼았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시조 온조왕' 조는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단순히 오기(誤記)인지 몰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북부여 6세 고무서 단군이 다스린 북부여를 '부여'로, 해부루의 동부여를 '북부여'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편찬은 130여 년 차이가 납니다. 두 사서는 모두 조선시대 말까지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는 우리 고대 역사를 기록한 <고기(古記)>를 인용합니다. <삼국사기>는 원문과 편찬자들이 달아놓은 주석이 함께 기술되어 있고, <삼국사기> 원문은 '온조왕', 주석은 '비류왕'을 시조로 삼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의 원문에는 "(비류와 온조가) 오간, 마려 등 신하 10여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어떤 경로를 거쳐 현재의 인천과 하남까지 왔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삼국사기> 원문에는 북부여 6세 고무서 단군의 딸, 곧 대제국의 황녀(皇女)이자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어머니 여황제 소서노 어하라에 관한 기록은 없고 원문 주석과 해설에만 몇 차례 등장합니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중국 문헌을 인용해서 본인들의 생각을 써놓은 '주석'"무리를 거느리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하수인인 '국사편찬위원회'는 '비류와 온조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건너온 '패수와 대수'를 한반도 청천강(또는 예성강)과 임진강(또는 한강)이라고 해석해 놓았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한국 제도권 역사학계는 식민사학 논리에 따라 BCE 108년~CE 313까지 한반도 북부에 현도군,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이라는 한(漢) 나라 한사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고구려와 한(漢) 나라의 한사군(漢四郡)은 만나면 반드시 죽이거나 생포해야 할 대상입니다. 한반도 북부 전역을 완전히 장악한 한사군과 아무 충돌 없이 천리가 넘는 길을 무사히 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합리적 근거도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식민사학 논리에 맞춘 주장일뿐입니다. 북부여 6세 고무서 단군의 외동딸 황녀(皇女)에서 동북아 대제국의 고구려 건국과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여걸입니다. 고주몽 성제가 첫 번째 예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 유리를 황태자로 삼게 되면서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현재 북경 북쪽의 난하(요수)의 패대(浿帶) 지역에 정착하여 고구려 제후국을 세웁니다.

 

 

 

 

《환단고기》에서 고구려 건국시조 고주몽 성제는 소서노에게 '어하라(於瑕羅)' 왕호(王號)를 내려줬고, 여황제 소서노가 세상을 떠나면서 비류가 즉위했지만,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온조는 한반도 미추홀(인천)로 내려왔다가 다시 하남 위례성으로 옮겨 백제를 세웁니다. 북부여에서 시작되어 고구려를 거쳐 백제가 건국됐고, 백제 26대 임금 성왕(어하라)은 국호(國號)를 '남부여'로 바꿉니다.

 

 

<삼국사기> 원문에는 고주몽이 비류와 온조의 친아버지라고 기록했고, 여황제 소서노의 아버지가 상인 '연타발', 남편이 '우태'라는 기록은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주석에 기록한 것입니다.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중국 <북사>와 <수서> 등 문헌을 인용하여 '동명(東明, 고주몽)의 후손 중에 구태(仇台)라는 사람에게 한(漢) 나라 요동태수 공손도가 사위로 삼았는데 동이(東夷)의 강국이 되었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라고 주석을 붙였습니다.

 

 

<주서>, <수서>, <북사> 등 중국 문헌에는 '백제가 처음 나라를 대방의 옛 땅에 세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방은 206년 후한(後漢)의 공손강이 낙랑군 둔유현 남쪽에 설치한 대방군(帶方郡), 곧 지금 북경 윗쪽의 하북성 난하 일대를 말합니다. 한국 제도권 역사학계가 '대방군은 한반도 황해도 지방'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과 중국 문헌 어디에도 백제가 황해도에서 건국됐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tJD03q0g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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