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하늘과 땅의 정신, 그리고 인간의 정신 - 원방각의 비밀(圓方角 ○□△)

by 도생(道生) 2014. 1. 31.

하늘과 땅의 정신, 그리고 인간의 정신 - 원방각의 비밀(圓方角 = △)

원圓(○)일一이 되어 하늘의 무극無極 정신을 뜻하고,

방方(□)은 이二가 되어 하늘과 반대되지만 하늘과 짝이 되는 정신(반극反極)을 말하며,

각角(△)은 三이 되어 천지天地(우주)의 주인인 인간의 태극太極 정신을 형상함이다.

 

 

홍산문명 우하량 원형제단과 무덤 유적(좌) 홍산문명 우하량 원형제단 복원도(우)

 

하늘과 땅의 정신 그리고 인간의 정신 - 원圓 방方각角(△)의 비밀

상고上古시대 둥그런 형태와 네모 반듯한 형태의 제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문헌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삼한의 옛 풍속이, 10월 상일上日에는 모두가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냈는데, 땅에 대한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냈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목角木(세모 나무)에서 지냈다.

산상山像과 웅상雄像은 모두 이러한 풍속으로 전해오는 전통이다." (환단고기 - 태백일사)

 

이러한 제의祭儀는 천원지방 사상의 반영으로 본다.

하늘의 덕성德性은 원만하고 땅의 덕성은 방정하다는 것인데 이는 각기 ○와  □의 도상으로 표현된다.

여기에 사람은 △로 나타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지향하는 형태의 △로써 천지의 중심에서 천지를 조화롭게 하며, 그 뜻을 실현하는 인간의 위상을 담아낸 것이다.

 

△는 곧 조화造化와 인간의 상像이다.

"원(○)은 일一이 되어 하늘의 "무극 정신"을 뜻하고, 방(□)은 창조의 순서에서 이二가 되어 하늘과 반대이지만 짝이 되는 정신(반극反極)을 말하고, 각(△)은 삼三이 되어 천지의 주인인 인간의 태극 정신을 형상함이로다."(환단고기 - 태백일사)

둥근(○) 것은 사제司祭, 네모진(□) 것은 생산, 세모꼴(△)은 통치의 비유며, 1은 정신적인 본질의 실재, 2는 대치, 조화, 충돌,

3은 창조를 위한 형식 혹은 정신적인 종합의 상징이란 풀이도 이와 상통하는 것이다.

 

 

 

△ 혹은 3으로 상징되는 사람은 또한 나무로도 비유된다. "대개 대시에 삼신 상제님께서 천지인 삼계를 만드실 때, 물로써 하늘을 상징하고, 불로써 땅을 상징하며, 나무로써 사람을 상징하였으니, 이는 사람이 땅에 우뚝 서서 하늘을 대신하는 것과 같습니다."(환단고기 -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배달국 치우천황 때 선인 유위자가 한 말이다.

앞서 인용문에서 삼한의 옛 풍속이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진 나무에서 지냈다고 했는데 그 이유도 여기서 헤아릴 수 있다.

 

웅상에 대한 얘기는 또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도해단군께서...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게 하셨다. 그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택하여 환웅상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웅상이라 하셨다." (환단고기 - 단군세기)

이와 관련하여 늘 함께 인용되는 것이 "산해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숙신(조선)국에는 백의민족이 살고 있다. 북쪽에 나무를 모시는데 이름을 웅상雄常이라고 한다." 나무가 조상을 기리는 신물神物로 숭배된 것이다.

 

도의 나무는 "삼국지, 동이전"에도 언급되는데, 별읍別邑에 소도를 세우고 거기에 천군天君이라 불리는 천신天神을 두어서 제를 주관하게 하고 그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워 북이나 방울과 같은 무구巫具를 걸어 두었다는 내용이다.

또 이나무와 유사한 조형물이 사찰의 법당 앞에 있기 마련인 탑 혹은 탑머리란 지적도 문화의 연원관계나 습합과 관련하여 흥미롭다.

 

 

△의 도상은 또 하늘, 땅과 삼위일체가 돼 수행하는 사람의 가부좌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홍산문화의 유적지에서도 △의 요소는, 물론 또 다른 방식으로도 탐색될 수 있겠지만, 이미 알려진 것에서도 너끈히 발견된다. 여신묘의 여신상이 그것이다.

 

종족의 시조묘로 추정되는 여신묘에서는 여신두상을 비롯하여 부서진 여신상의 조각들이 다수 발견 됐다.

크기가 사람에 가까운 여신상은 황토질 점토로 빚어 만든 소상塑像이다.

부서진 파편들을 모아 복원해보니 여신상은 반가부좌한 모습이었다. 오른다리를 왼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쥔 상태로 단전 앞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다. 영락없는  △의 상이다.

후손들의 제사에 대상이었을 이 여신은 시조이면서 당시 문화에 비춰볼 때 정치적 권력자이면서 종교적 스승이었을 터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탈해왕 얘기가 여기에 비교될 수 있다.

탈해왕이 죽어 장사지냈는데, 그 후 신神이 나타나 "나의 뼈를 조심해서 묻으라"고 한다.

이에 뼈를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궐내 안치하니 신이 또 말하기를 "뼈를 동악에 두라"고 했다.

뼈를 부수어 인신상人身像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궐내에 안치했으니 그것은 신상神像과 다를 바 없다.

 

정치적 군주며, 종교적 지도자인 조상의 소상을 부수러진 뼈를 넣어 만들기 위해서는 점토가 재료로 사용돼야 했을 것이다.

만약 홍산문화의 여신묘에서도 유골성분이 발견된다면 둘 사이의 문화적 친연성은 더욱 놀랄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상생문화연구소 황경선 연구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