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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한민족의 9천년 역사와 함께해온 삼신상제님 문화. 우리나라가 하나님(하느님, 상제님) 문화의 원조이다.

by 도생(道生) 2014. 2. 12.

한민족의 9천년 역사와 함께해온 삼신상제님 문화,

우리나라가 하나님(하느님, 상제님) 문화의 원조이다.

 

 

 

 

한민족의 뿌리역사 시대인 환국, 배달, 조선은 삼신三神문화 다시 말해 삼신상제님의 손길이 현실 역사로 전개된 과정입니다.

환국의 환인은 천산에 거처하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였는데 백성들은 환인을 천제天帝(천상 상제님)의 화신化身이라 부르며 거역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때의 풍속은 광명을 숭상하여 태양을 신神으로 삼고 하늘을 조상으로 삼았습니다.

 

배달국 거발환 환웅은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백두산과 흑룡강 사이로 이동했고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상제님께 제사지냄으로서 배달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배달국 14세 치우천황은 한족漢族의 시조인 헌원을 탁록에서 굴복시켰는데, 대전쟁을 벌이기 전에 지은 탁록격문에서는 "삼신상제님께서 오랬동안 헌원의 더러운 행위를 싫어하여 자신에게 헌원을 토벌하게 하셨다"고 전쟁의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단군왕검은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무리 8백명을 거느리고 단목 터에 와서 백성과 더불어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습니다. 또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경영한 삼한관경제를 실현하여 통치체제를 삼신문화로 구현했습니다.

부루태자가 도산에서 우임금을 만나 치수治水비법을 전할 때도 "삼신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고 하여 상제님의 은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환국, 배달, 조선 이후의 열국시대, 사국시대, 남북국시대에도 우주의 통치자인 상제님과 상제님의 대행자로서 인간세계의 통치자인 황제와의 관계는 지속되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 한무제의 침략을 격퇴한 고두막한(동명성왕)은 북부여의 4세 고우루 단군에게 사람을 보내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하여 상제님과의 관계로 자신을 밝히고 북부여의 5세 단군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고구려의 고주몽 성제 역시 "아시천제지자"를 외치며 상제님의 아들임을 자처하였습니다.

또 백성들에게 내린 조칙에서도 "하늘의 신이 만인을 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삼진三眞을 고르게 부여하셨다."라는 가르침을 전수했고, 을지문덕 장군은 일찍이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삼신의 성신聖神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고 나서 신교神敎 진리를 크게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대진국(중국은 "발해"라고 말함) 시대에는 3세 황제 대무예가 3월 16일 대영절大迎節에 서압록하 상류에서 삼신일체(삼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렸고, 동부여에서 파생된 연나부부여인 의려국의 왕은 바다를 건너 왜인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는데 스스로 삼신의 부명에 응한 것이라 하고 여러 신하로 하여금 하례 의식을 올리게 하였습니다.

 

 

이후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역사속에서도 끊어질 듯 이어져오던 상제신앙은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분명한 자취를 보입니다.

대한제국시대인 1904년 애국가 가사에는 "상제上帝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압력으로 무너지는 대한제국의 상황 속에서, 한많은 조선의 백성들은 우주의 통치자인 상제님을 찾으며 대한제국 황제를 도와 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표출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한민족은 태고시대부터 근세사까지 위로는 황제로부터 아래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삼신상제님을 생활속에서 지극히 모셔왔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동서양 하느님(하나님 = 상제님) 문화의 원나라입니다.

 

 

조선의 고종임금은 1897년 10월 원구단에서 하늘에 천제를 올리고 황제로 등극하였다.

곧 이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광무로 정하여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그러면 고종황제는 누구에게 천제天祭를 올렸는가?

원구단 천제 1호 대상은 바로 "상제님"이시다.

상제님은 원구단에 모신 신위 중 제일 상단에 모셔진 분으로서, 고종황제는 상제님께 천제를 올려서 자신의 황제등극과 대한제국의 탄생을 신고한 것이다. 고종황제는 천자天子의 보위에 오르면서 조선 초기 명나라의 압력으로 폐지했던 천제天祭문화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호천상제昊天上帝, 황지기皇地祇, 태조太祖 등의 신위를 제천의례 때는 원구단에 모시고 평소에는 황궁우皇穹宇에 모셨다.

원구단은 제천단, 황궁우는 사당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일제는 1919년 원구단을 파괴하여 현재는 황궁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증산도, 월간"개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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