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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와 일본 축구대표팀 엠블럼

by 도생(道生) 2014. 4. 15.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와 일본 축구대표팀 엠블럼

 

 

 

 

삼족오라는 명칭은 단군 조선 8세 우서한 단군 재위 7년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삼족오는 중국에서 기록과 유물이 먼저 발견되었고, 이후 북부여의 해모수 단군, 고구려의 상징으로 대변되며 우리 역사속에서 면면히 내려오다 일본 축구대표팀 엠블럼으로 다시 나타났다.

 

 

태양을 상징하는 새, 삼족오(三足烏)는 일반 대중들에게 고구려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으로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의 불꽃 모양은 칠지도로 알려졌다.

칠지도(七支刀), 백제 최전성기를 구가한 제 13대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보낸 신물, 바로 그 칠지도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 백제와 왜의 관계가 종주국과 속국이라는 관계를 너무나 명확하게 알려주는 그 신물, 일본인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백제의 후손이라고.

 

그리고 일본 축구대표팀 엠블럼으로 사용된 삼족오는 완연한 까마귀의 모습이다.

이것이 고구려의 삼족오와 다른 점이다. 고구려의 삼족오는 머리에 뿔 또는 벼슬 같은 게 서려있다.

 

 

 

 

일본 고대 고분과 각종 유물에서도 삼족오는 계속 등장하고 있다.

구마노 신궁 등에서는 모시는 대상이기도 한다. 천황이 즉위식 때에 입는 곤룡포의 왼쪽 어깨에는 삼족오가 자수로 놓여 있다.

 

여기에 고구려의 삼족오와 연결지어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

가카마츠 고분으로 벽화장식이 있고 천장화에서 성수도(별그림)가 나온 모습과 고구려의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또한 1983년 발견된 키도라 고분은 내시경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현무를 비롯한 사신도와 천장에 그려진 천문도가 있다.

특이하게도 이 천문도는 고구려 평양에서 본 하늘이고, 바로 여기에 삼족오가 있다.

 

죽음을 대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잘 변화지 않는 문화다.

그렇기에 이 고분들은 시간을 통해 과거를 여는 문으로 우리를 새로운 우주로 인도해 준다. 즉 일본 땅에 자리 잡은 고구려 고분 양식은 고구려 문화의 전래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고분 속에 잠든 이는 신령스러운 네마리 영물들이 보호하고, 태양이 이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태양을 상징하는 새 , 삼족오가 있다.

일본의 삼족오는 고구려 하늘을 비상하던 한민족 삼족오의 변형된 모습이다.

 

 

 

 

환단고기 - 단군세기 中

삼족오(三足烏)가 비원입중(飛入苑中)하니 기익광(基翼廣)이 삼척(三尺)이니라.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삼족오)가 동산에 날아들어 왔는데, 그 날개 길이가 무려 석자나 되었다.

(고조선 8세 단군 우서한 재위 7년 갑인(甲寅)년)

 

고대인들에게 태양은 달과 더불어 천지(天地)를 상징하는 절대적인 자연물이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는 태양을 숭배하는 풍습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한(韓)민족은 태양숭배 문화가 특히 발달했는데, 국가 형성 이후 천자(황제) 상징하거나, 최고 통치권을 상징함과 동시에 하늘자손의식(천손天孫의식)을 가져오게 되었다.

 

천지일월로 대변되는 영원성의 상징인 천상과 인간이 살며 복잡다단한 삶의 모습을 연출하는 지상을 잇는 매개자 또는 사자 역할을 하는 존재로, 서조(瑞鳥), 현조(玄鳥)의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특히 이 현조에 대한 개념은 신화에서 난생설화난 탄란회임설화(알을 삼키고 아이를 낳았다는 탄생설화)와 함께 동이족의 특징적인 신화형태로 전해져 내려왔다.

은나라 시조인 설이나 진나라 시조인 대업의 실화에는 천신의 사자로 이 현조가 등장한다.

 

특히 동이족의 주요 활동무대인 산동성과 발해만, 요동지역에는 새에 관한 신앙과 풍습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동이계 설화에서 까마귀는 태양과 황제를 상징하거나 왕과 왕재를 보필하거나 위험에서 구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태양신의 성격을 지닌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머리에 쓴 관이 오우관(烏羽冠)이라거나,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된 일월지정(日月之精)의 상징인 연오랑과 새오녀 설화에도 이 부부의 이름 가운데 까마귀를 상징하는 오(烏)자가 들어 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에게 왕(王) 자가 새겨진 조각을 전한 새 역시 까마귀다.

 

그 외에도 고구려 시조 추모를 도운 3대신 중 한명인 오이(烏伊)와 백제 온조왕 남하시 동해한 오간(烏干), 동부여 대소왕이 고구려 대무신열제에게 보낸 적오(赤烏)기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사금갑(射琴匣) 설화에서 신라 소지왕을 위급에서 구한 까마귀, 일본 신무천황을 돕기 위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일본의 시조신)가 보낸 까마귀, 천 태조 누르하치를 구한 까마귀 이야기(이에 대한 보답으로 심양 고궁에 솟대를 세워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었다 한다) 등을 통해 볼 때, 동이족의 강역에는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까마귀 또는 현조(玄鳥)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내려온다.

 

하지만 삼족오의 문헌 기록이나 유물 흔적은 중국에서 먼저 보인다.

삼족오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동한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라는 책이다.

산해경(山海經, 이를 동이족의 신화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에도 "태양 가운데 까마귀가 있으니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日中有鳥謂三足烏也)"라는 삼족오에 대한 기록이 있다.

 

기원전 4,000년경의 중국 황하문명의 양사오문화 유적지의 토기에서 처음으로 삼족오가 발견되었으며, 랴오닝성 차오양 지구 벽화 묘에도 삼족오 문양이 나왔다.

 

그러나 초기 태양의 새로 인식된 삼족오는 중국 내부에서는 단순한 전달자라는 의미로 그 위격이 격하된다.

중국 섬서성 유림시 수덕현 화상석(무덤의 외벽과 내벽에 새겨진 장식그림) 박물관에 있는 유물 자료에는 전설의 여신 서왕모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는 새로 삼족오가 묘사돼 있다.

 

후베이성 장사(長沙) 후베이성박물관의 마왕퇴한묘 진열실에 있는 초나라 여인의 미라에도 비단과 그 위에 그려진 그림들 속에서 태양 속 까마귀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도 초기의 태양의 새라는 의미에서 음양론적 세계관으로 달과 비견되는 그저 그런 조류로서 모습만 보인다.

 

한(漢)대 이후 사라진 삼족오의 모습은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것은 면면히 내려오면서 중국에 대한 제후국을 자처했다고 여겨지는 조선에서도 그 모습이 보인다.

 

조선 세종실록에 나타난 의례기 중 세 머리, 세 발을 갖춘 삼족오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무속에서 삼재부로 사용하는 세 머리 매 등의 모습으로 남아있고, 지금 일본 축구대표팀의 엠블럼으로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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