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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형제에게 멸망당한 페루의 잉카제국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9. 1. 25.

스페인의 일자 무식쟁이 프란시스코 피사로 형제에게 멸망당한 페루의 잉카제국

 

 

 

 

 

 

 

 

 

 

 

 

페루의 정복자로 불리는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귀족이었던 스페인 군인과 천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돼지를 키우는 일을 생업으로 했던 문맹자였다.

 

 

그는 친척이었던 멕시코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와 함께 서인도 제도로 갔다. 그리고 후에 다른 원정대와 함께 페루를 발견했다. 파나마에서 시장과 관리인을 하다가 페루를 탐험한 뒤 금이 있다는 확신을 한다.

 

 

그는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5세(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혈통이며 당대 유럽 최고 권력자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고 유럽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영토를 구축했던 인물)로부터 정복지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문서를 받고, 파나마에 돌아와서 형제들과 군인들을 데리고 약탈 원정에 나섰다.

 

 

 

 

 

 

 

 

 

 

 

잉카인들은 찾아오겠다는 손님은 기꺼이 만나는 특성 때문에 1532년 11월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는 페루의 북쪽 안데스 고원의 온천도시 카하마르카에서 기꺼이 외부인들을 만났다.

 

 

 

그러나 간교한 침략자들 중 도미니크 수도회 신부 벨베르데는 기도서를 보여주면서 이 속에 그리스도교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어있다고 하며 아타왈파에게 내밀었다. 그는 책을 받아보고는 책장을 넘겼지만 곧 바닥에 던져버렸다.

 

 

 

 

 

 

 

 

 

 

 

벨베르데 수사는 피사로에게 신을 모욕하는 족장을 공격하라고 소리쳤고 피사로의 명령을 받은 63명의 기병대와 200여명의 군인들은 대포와 화승총을 쏘았다.

 

 

 

천둥같은 고리와 함께 사람들이 쓰러지자 잉카인들은 천둥 신(神)이 진노한 줄 알고 혼비백산 하였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또한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동물인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스페인 병사들이 2시간이 채안되어 6,000에서 7,000명의 원주민을 모조리 죽였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그리고 아타왈파를 사로 잡았다.

 

 

 

 

 

 

 

 

 

 

황제는 피사로를 자신이 감금된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손을 천정으로 뻗쳐 손이 닫는 곳까지 금으로 채워줄 테니 자신을 풀어달라고 하였다. 피사로는 약속된 금이 모였지만 약속을 어기고 황제를 화형에 처했다.

 

 당시 검은 옷을 입은 기독교 수사는 기독교 유일신을 믿지 않으면 불에 태워 죽여서 내세로 갈 수 없어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잉카인들은 미라로 온전하게 죽어야 내세로 갈 수 있는데 육체가 피괴되면 흉조 중에 흉조였다.

 

 

1533년 피사로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로 진격해서 잉카제국을 점령했다.

1533년에는 금과 은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항구도시 리마(현 페루의 수도)를 건설했다.

당시 기록에는 '산에서건 강에서건 페루 전역에 금이 발견되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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