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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훌륭한 리더, 위대한 군주(君主), 세종대왕의 소통의 리더십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4. 10. 8.

훌륭한 리더, 위대한 군주(君主)

세종대왕의 소통의 리더십

 

 

 

 

신하와 백성과 소통한 군주.

국정운영에 책임지는 군주.

최일선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군주.

자기관리에 철저한 군주.

인재를 알아 보는 군주.

언제나 깨어있는 군주.

신하와 백성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군주.

훌륭한 리더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성군(聖君) 세종대왕.

 

 

권력 투쟁의 시퍼런 칼날이 휘몰아치는 모습을 보며, 조선의 4대 국왕으로 등극한 세종대왕.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벌어졌던 피로 얼룩진 세상사, 인간사의 허무함을 처절할 정도로 경험한 인간 이도(李).

 

그의 국정운영의 출발은 이런 허무(虛無)에서 출발한다.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권력이 무한할 것이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권력의 불꽃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유한의 인간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 그 측은지심은 세종대왕이 군주로서 나설 때는 백성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승화된다.

 

유교(儒敎)가 조선이라는 국가의 통치 근본이었지만, 조선의 군주로서 그가 시작한 것은 노자의 도교 사상인 '대은(大隱)은 어시은(於市隱)'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즉, 깊게 은둔하는 것은 시끌벅적한 시장 속에서 세상 사람과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만백성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불교(佛敎)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세종대왕은 신하와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권력은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한 나라가 안정되게 유지되려면, 백성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兵)과 백성들이 충분한 먹을거리(食), 그리고 만백성의 마음(民)과 믿음(信)을 얻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셋 중에서 부득이하게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먼저 군사를 버릴 것이며, 그 다음은 먹을 것을 버려야 하고,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고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백성들의 마음과 믿음임을 강조하였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마음의 화합이 국가 존립에 본질이며 우선이라고 보았다.

고려가 무너진 것도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서 버렸다고 보았다.

군주와 백성은 하나이며, 백성이 곧 국가이고,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세종대왕의 위민(爲民)사상은 자신이 평생을 실천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와 무실역행(務實力行,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한다)은 또 다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적인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며, 그가 말년에 지은 '월인천강지곡'에 세종대왕의 이상이 잘 나타나 있다.

 

 

 

 

세종대왕은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 닦음을 근본으로 하기 위해서 유교 불교 도교의 고전과 가르침으로 항상 수신(修身)하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였다.

백성들의 삶 속에 직접 들어가 현장중심의 철저한 국정운영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만백성이 잘 살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를 발굴함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세종은 인재발굴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능력에 부합하는 부서에 배치하여 그들의 능력을 한껏 배양하였다.

인간 세종의 탁월한 능력이 아니라 능력있는 인재들을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한 인간경영을 하였던 것이다.

 

 

세종대왕의 재위에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많은 인재들이 모였다고 한다.

그것은 인재들간의 경쟁심과 긴장감을 유발시켜 그들이 가진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세종대왕의 또다른 인재경영법이었다.

정치의 대가 황희 정승과 맹사성, 군사에서는 김종서와 이종무, 천문과 역학 등에서는 장영실 이순지 이천 등, 문화의 꽃을 피운 집현전은 정인지 성상문 신숙주 박팽년 이개 등, 그리고 예악을 담당한 박연은 국악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신하들과 소통하고, 백성들과 소통하며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문자 훈민정음(한글)은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다.

 

 

 

 

권력 투쟁의 무상함과 무모함을 보았고, 왕권 강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그 희생된 사람들 속에는 세종의 백부와 숙부들, 외숙과 장인, 그리고 세종대왕 사후에는 자신의 둘째 아들의 칼아래 두 아들과 손자(단종)가 무참하게 희생됐다.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칭송 받고 있지만, 인간 이도(李)는 어찌보면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한 인간이었다.

한 나라의 군주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큰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군주로써 만백성을 위해 살다간 세종대왕,

그는 가장 훌륭한 리더였으며, 가장 위대한 군주였고, 성군(聖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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