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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3758

항일운동가 헤이그 특사(밀사) 이준열사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항일운동가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밀사)로 파견된 이준(李儁) 열사(烈士) 항일운동가이며 고종황제의 특명으로 헤이그 특사(밀사)로 파견된 일성(一醒) 이준(1859~1907) 열사는 본관이 전주 이씨이지만,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후손이 아니다. 동생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위해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내쫓자 고려의 신하로 남겠다고 자결한 태조 이성계의 형 이원계의 17대손이다. 이준 열사는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한학을 배우다 한양에 상경하여 한동안 공부하였다. 29살에 초시에 합격하고, 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한다. 1895년 설립된 법관양성소 교육을 이수하고 한성재판소 검사보가 되지만, 탐관오리들의 비행을 들추다가 면직되고 만다. 일본 와세다.. 2017. 1. 27.
대한제국 충정공 민영환 혈죽 을사늑약에 항거하며 자결한 대한제국 충정공 민영환과 혈죽(血竹) 일본 제국주의가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며 대한제국의 외교 주권을 빼앗자 충정공 민영환은 자결하였다. 민영환의 피가 묻은 옷을 보관하고 있던 마루에서 그의 충절을 기리는 듯한 혈죽(血竹)이 돋아났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민영환에게 충정공(忠正公)의 시호를 내렸다. 조선 26대 왕 고종의 어머니 여흥부대부인 민씨(1818~1898)는 민치구(1795~1874)의 딸이다. 민치구의 아들이며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남동생 민겸호(1838~1882)는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의 친아버지다. 민치구의 아들이며 여흥부대부인의 남동생 민승호(1830~1874)는 아들이 없는 11촌 민치록(1799~1858)의 양자로 들어갔다. 고종(1852~1.. 2017. 1. 26.
위대한 사상가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위대한 사상가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牧民心書)』 조선 중기 권문해, 한백겸, 이수광 등은 조선 실학사상의 문을 열었다. 유형원, 이익, 안정복 등이 실학의 싹을 틔우기(맹아기萌芽期) 시작했으며,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담헌 홍대용, 다산 정약용 등에 이르러 실학이 발전되었다. 실학(實學)은 말 그대로 실용적인 학문이다. 유학이 관념, 명분, 이론 등에 치우쳤다면, 실학은 사회개혁을 실천하여 백성의 삶을 변화시키고 국가를 부흥하는 한 마디로 현실에 사용하는 학문이다. 혹자는 실학이 근대사상의 맹아(萌芽, 싹이 트기 시작), 자본주의의 맹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산 정약용은 지방 수령이 지켜야 할 덕목과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하는 내용의 『목민심서(목민심서)』를 비롯하여 500여 .. 2017. 1. 25.
조선의 명필 서화가 추사 김정희 조선의 명필 서화가, 금석학자이며 실학자 추사 김정희 명필(名筆), 최고의 서화가(書畵家), 조선 최고의 금석학자(金石學者), 실사구시를 추구한 실학자, 해동제일통유(海東第一通儒) 등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어려서부터 명필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란 추사 김정희는 왕실의 외척이면서 문벌(文閥) 가문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보면 노론에 속했다. 추사 김정희의 고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김흥경이고, 증조부는 월성위 김한신으로 조선 21대 왕 영조와 정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순옹주가 증조모다. 정조대왕의 치적을 파괴한 정순왕후(영조의 계비)는 김노경의 딸이다.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과 김한구(정순왕후 아버지)는 10촌 형제간이다. 조부는 형조판서를 지낸 김이주, 아.. 2017. 1. 24.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초정 박제가 북학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정조대왕(1752~1800, 재위 1776~1800)은 개혁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실학파를 대거 등용했다. 채재공, 정약용, 이가환 등의 남인(南人)과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홍대용 등의 북학파는 대다수가 개혁과 실용을 중시하는 실학자들이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노론(서인)계열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열중하며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등과 교류하였다. 1780년(정조 4)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1711~1799, 재위 1735~1796)의 칠순(고희)을 맞아 조선에서 축하 사신단을 파견한다. 정조대왕은 1780년(정조 4) 3월 20일에 박명원을 진하 겸 사은정.. 2017. 1. 23.
문벌가문 서포 김만중 구운몽 사씨남정기 숙종의 정비(正妃) 인경왕후의 숙부이며 최고 문벌(文閥) 가문의 후예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쓴 서포 김만중 조선왕조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저술한 교산 허균(1569~1618)에 이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저술한 서포 김만중을 한글소설의 선구자라고 부른다. 서포 김만중(1637~1692)은 문벌(文閥) 가문의 후손으로 정치적으로 서인(西人)에 속했다. 아버지 김익겸(1614~1636)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청나라 군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자결하였다. 어머니 해평 윤씨는 21살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었고, 서포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서포 김만중의 증조부는 서인(西人)의 영수로 문묘에 배향된 동방(동국) 18현 중 한 사람인 문원공 사계 김장생(1548~1.. 2017. 1. 22.
소론의 영수 백의정승 명재 윤증 소론의 영수 백의정승(白衣政丞)으로 불린 명재(明齋) 윤증(尹拯) 조선 19대 왕 숙종이 환국(換局) 정치를 하면서 잠시 남인이 정국을 주도한 것을 빼면 인조반정 이후 서인(西人)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서인(西人) 천하에서 우암 송시열의 노론과 명재 윤증의 소론으로 분열된다. 조선왕조는 그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즉 문벌(문벌)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의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가 우계 성혼이다.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을 백의정승(白衣政丞), 또는 백의재상(白衣宰相)이라 부른다. 백의정승이나 백의재상은 같은 의미로 뛰어난 학문과 훌륭한 인품을 겸비하여 덕망이 있는 선비(유생)가 단번에 정승(재상)의 반열에 올랐다거나, 야인이지만 정승(재상)과 같은 대우를 받는 인물을.. 2017. 1. 21.
고산 윤선도 오우가 어부사시사 조선 시조 문학의 대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오우가(五友歌)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조선왕조 시조 문학의 대가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는 가사 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1536~1593)과 함께 조선왕조시대 시가(詩歌) 사상의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여러 작품을 보면 학자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정치가로서의 모습이 더 크게 비친다. 한양에서 태어난 고산 윤선도는 백부 윤유기가 후사가 없자 양자로 들어갔다.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전라도 해남 윤유기의 집으로 내려갔다. 고산 윤선도의 집안은 동인(東人)이었고,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면서 남인 계열이 되었다. 고산 윤선도는 18세 진사초시에 합격하였다. 양어머니와 친어머니가 연속해서 돌아가시면서.. 2017. 1. 20.
조선의 명필 서예가 한호(한석봉) 조선의 명필 서예가 한호(韓濩, 한석봉韓石峯)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주지번은 당대 명나라 최고 문인이며 명필가로 유명했고, 서울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편액을 썼다고 한다. 명나라에서 조선에 사신으로 와 있던 주지번은 교산 허균으로부터 허난설헌의 시를 가져가 명나라에 소개하였다. 주지번은 조선의 명필이며 서예가인 한호(한석봉, 1543~1605)의 글씨를 보고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명필이며 문장가였던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 글씨와 비슷하다고 극찬했다. 명필(名筆) 석봉 한호가 조정에 출사한 시기는 사림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시기였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된 시기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문인들이 정치세력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석봉 설화에도 나오듯 황해도 송도(개성)에서 .. 2017. 1. 19.
명의 구암 허준 동의보감 조선 3대 명의(名醫) 구암(龜岩) 허준과 동의보감(東醫寶鑑) 조선왕조시대 가장 높은 품계(品階)는 정1품으로 조선의 3대 명의로 『동의보감』을 편찬한 구암 허준은 작위와 품계가 양평군(陽平君) 숭록대부에 이르렀고, 사후(死後)에 정1품의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추증되었다. 정1품은 대광보국숭록대부(상上계 품계)와 보국숭록대부(하下계 품계)로 구분되어 있다. 구암 허준(1539~1615)이 명의로써 명성과 정1품의 높은 벼슬보다 의학서적 동의보감 편찬이 그의 이름을 더 빛나게 한다. 구암 허준은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양반으로 무과에 급제한 허론의 서자였던 허준은 의원의 길을 선택했다. (혹자는 허준의 어머니가 첩이 아니라 두 번째 부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구암 허준은 정사(正史) 조선왕조실록.. 2017.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