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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한사(白衣寒士, 벼슬이 없는 가난한 선비)로 일어난 위대한 영웅 

동학혁명으로 새 시대를 연 만고(萬古)의 명장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

 

 

 

 

 

 

 

 

 

 

 

흔히 칭기즈칸을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하여 지구촌을 움직인 위대한 영웅이라고 평가합니다.

칭기즈칸의 리더쉽은 둘째치고 칭기즈칸의 정복전쟁은 영토 확장으로 대제국을 만들겠다는 야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칭기즈칸과 같은 정복자와 구시대를 혁파하고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창업군주도 많습니다.

 

 

 

동학혁명으로 새 시대를 연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은 비록 벼슬도 없고 가난한 선비 백의한사(白衣寒士)였지만, 야망을 좇아 세계를 제패하고 나라를 창업한 위대한 정복자 및 창업군주와 비교해도 그 기개와 웅대한 기상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이 동학에 입도(入道)한 때는 38세가 되던 1892년입니다.

(전봉준 장군의 동학 입도 시기를 학자에 따라 1885년, 1888년, 1890년 등을 주장하기도 함)

 

 

전봉준 장군의 아버지 전창혁은 한 때 서당 훈장을 지냈으며, 1893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과 학정에 저항하다 잡혀 모진 매를 맞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운동으로 불린 동학농민혁명은 동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과 삼정(三政)의 문란과 같은 부정부패와 지배권력의 수탈이 극심했던 1894년 일어났습니다.

 

 

 

 

 

 

 

 

 

 

혹자는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을 주축으로 동학농민군이 봉기한 갑오 동학농민혁명을 미완의 혁명, 좌절된 혁명, 절반의 혁명, 때론 실패한 혁명과 성공한 혁명이라고 말합니다.

 

 

위대한 영웅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은 일체의 사사로운 욕심 없이 내우외환으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건지겠다는 대의(大義)를 품고 일어났습니다. 사회적 부정부패와 불의를 뿌리 뽑고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제도 개혁을 주장하며 봉기습니다.

 

 

1893년 11월 동학도들이 모여 거사를 계획했고, 1894년 1월 9일 집결하여 1월 10일 고부관아를 습격했을 때만 해도 고부민란이라고 했습니다.

 

 

 

 

 

 

 

 

 

 

조선 정부가 사태 수습을 약속하면서 자발적으로 해산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음력 3월 20일 고창 무장에서 전면 봉기하면서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됐고, 음력 4월 27일 전주까지 점령했습니다.

 

 

위대한 영웅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은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 후 조선 정부에 폐단이 많은 정치를 개혁하자는 이른바 폐정개혁안(弊政改革安)을 제시했습니다.

 

 

폐정개혁안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몇 차례 세부화하여 24개까지 확대했다가, 1894년 6월 11일 전주화약(全州和約) 때 최종적으로 12개조 폐정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민씨정권은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했고, 일본은 톈진조약을 근거로 일본군을 급파했습니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은 조선의 내정개혁을 주장했고 경복궁을 점령해 민씨정권이 쫓겨났습니다.

 

 

이른바 갑오경장이라 부르는 영의정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갑오개혁정부가 들어섰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개혁의 일부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동학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과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표면적으로 보면 신분제폐지(노비제), 인신매매 금지. 과의 재가, 조혼 금지, 인신매매 금지, 조세의 금납 통일, 고문 및 연좌법 폐지 등 폐정개혁안으로 제시한 내용 부분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 민중을 힘들게 했던 조세제도가 개혁되면서 그동안 백성이 과도하게 납부한 세금 고통을 덜게 됐다는 것입니다.

1894년 10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는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것에 대한 항일투쟁의 성격입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군은 1894년 11월 9일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대하면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는데,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전투할 때는 일방적이라고 할 정도로 약 30만 명이 무참하게 학살됐습니다.

 

 

동학혁명으로 조선의 제도를 개혁하고 세계를 움직인 위대한 영웅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은 12월 2일 옛 부하의 밀고로 순창 피노리에서 관군에 체포되어, 1895년 음력 3월 29일(양력 4월 24일) 순도(殉道) 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은 1920년 간행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약 30만 명의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게 학살됐다고 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시대적 배경은 내우외환의 위기적 상황에서 발생했지만, 동학도들이 추구한 이상은 소위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의 사회 개혁을 위해서 일어난 것만이 아닙니다.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과 동학혁명에 참여한 동학도들이 불편부당한 정책과 수탈과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사회 개혁을 주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탐관오리 척결과 나라의 제도 개혁을 넘어 동학의 궁극적 이상인 시천주(侍天主)와 후천개벽과 무극대도(無極大道)의 동학의 핵심 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새 세상을 열려고 분연히 일어난 것입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인내천 사상은 1907년 동학 3대 교주 의암 손병희 선생이 주장한 교리이며, 1865년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처음으로 주장한 인시천(人是天)과 양천주(養天主) 사상이 의암 손병희 선생의 인내천 사상의 뿌리가 됩니다.

 

 

동학혁명을 일으킨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과 동학도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1860년 동학을 창도(創道)하고 1864년 순도(殉道)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시천주(侍天主)와 후천개벽과 무극대도(無極大道) 사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이 알든 모르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과 60만 동학농민군의 동학혁명은 조선을 움직였고,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1894년 갑오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만고의 명장이며 위대한 영웅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

천하의 난(亂)을 동(動)하게 하다. - 동학농민혁명은 성공한 혁명이다.

http://www.jsd.or.kr/?m=bbs&uid=13091

 

 

 

 

백성을 위해 한번 죽기로 맹세한 백의한사(白衣寒士,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

동학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명숙(전봉준) 장군 만고의 명장이 되다.

http://www.greatopen.net/index.php?m=ci&cc=gb&mm=view_text&idx=6051

 

 

 

 

동학혁명의 위대한 영웅, 만고의 명장 녹두장군 전명숙(전봉준)의 큰 공덕

http://www.jsd.or.kr/?m=bbs&uid=1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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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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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9.05.18 0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2. kangdante 2019.05.18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위 위정자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달보다는
    티클끌만큼이나마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3. korea cebrity 2019.05.18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학운동만 잘됐으면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텐데 아쉽네요 ㅠ

  4. 죽풍 2019.05.18 2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작 이 글을 보았더라면 지난 정읍여행 시 녹두장군 전봉준 유적지에 가 봤을텐데...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5. 버블프라이스 2019.05.27 0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학혁명의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의 몰랐던 내용을 덕분에 알고 갑니다^^

갑오년(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불요불굴(不搖不屈)의 만고명장(萬古名將) 녹두장군 전봉준

 

 

 

 

 

조선 고종 31년,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적인 인물은 다름 아닌 녹두장군이라 불린 전봉준 장군이다.

자는 명숙(明淑)이고, 호는 해몽(海夢), 1855년 전라북도 고창군 죽림리 당춘에서 태어나셨다.

봉준(蓬準)은 초명(初名)이며 녹두(綠豆)는 그 체구가 작아서 불리워진 별호이다.  

 

 

봉건체제에 짓밟히고 있는 민권을 제창하고, 세계 제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 민족을 구하려 민중을 이끌고 무명 동학접주로 갑오동학농민혁명을 지도한 혁명가요, 사상가였다.

 

전봉준 장군은 불요불굴(不搖不屈)의 의지력과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분이었다.

조선 말기의 민란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대개는 조정에서 안핵사(란을 무마 또는 진정 시키기 위해 파견된 임시 직책)를 보내면 평정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고부(古阜)의 전봉준은 그렇지가 않았다.

 

 

 

 

 

정월봉기(고부봉기) 후 이용태 안핵사가 역졸(포졸)을 거느리고 내려와 뿌리를 뽑겠다고 서슬이 시퍼렇지만, 이때 전봉준 장군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무장(茂長)의 손화중과 손을 잡고 마침내 삼월봉기(백산봉기)를 일으켰다.

 

이어 9월에는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여 다시 구월봉기(삼례봉기)를 일으켜 서울로 진격을 하다가 10월 23일 공주에서 15일 동안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면서 저항하였으나 패하였으며, 11월 27일 최후의 전투인 태인 전투에서도(전봉준 장군의 주력부대로서는) 패하여 결국은 갑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갔다.

 

 

 

 

 

갑오동학농민혁명 당시 삼남지방 각지에서 많은 접주들이 항거하여 봉기하였으나 전봉준 장군처럼 호남의 5천 군대를 거느리고 일사불란의 대오로 일본군에 최후까지 혈전을 벌인 영도인물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청도 관찰사 박제순은 9월 봉기 후 전봉준 장군이 논산으로 진격하여 공주감영이 위급해지자 교주 최시형이 거느리는 북접의 10만 대군을 막는 일보다도 호남의 전봉준을 방어하는 일이 더 화급하다고 천안에 머물고 있는 선봉장 이규태에게 급전을 보냈으니 이에 전봉준 장군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봉준 장군은 다음해 2월 9일, 11일, 19일, 3월 7일, 10일 5차례에 걸쳐 일본 영사의 심문을 받고 3월 30일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성두환과 함께 최후를 마치니 향년 41세였다.

 

  

 

 

 

전봉준 장군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나는 바른 길을 걷고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역죄를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 라고 개탄을 하였다.

장군은 죽음에 다달아 다음과 같은 유시(遺詩)를 남겼다.

 

시래천지개동방 時來天地皆同方

때를 만나서는 천지(天地)도 내 편이더니

운거영웅불자모 運去英雄不自謨

이 다하니 영웅도 할 수가 없구나.

애민정의아무실 愛民正義我無失

백성사랑 올바른 길 무슨 허물이더냐.

위국단심수유지 爲國丹心誰有知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편단심(一片丹心) 그 누가 알리요.

 

 

갑오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이며 만고의 명장인 전봉준 장군의 천추의 한이 담긴 녹두의 동요는 영원히 전해지고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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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4.12.12 0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하고 갑니다.
    활기찬 하루 시작하세요^^

  2. 아쿠나 2014.12.12 0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오년에 대해서 잘 보고 가요 ^^
    존 하루 되세요~

  3. Hansik's Drink 2014.12.12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간답니다 ^^ 좋은 하루가 되세요~

  4. 죽풍 2014.12.12 08: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조금이나마 하고 갑니다.
    눈내리는 금요일이네요.
    주말과 휴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5. 뉴론7 2014.12.12 0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나라가 존재하는거 같네요

  6. 브라질리언 2014.12.12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분들이 있기에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죠!!

  7. 한콩이 2014.12.12 1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8. 명태랑 짜오기 2014.12.12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을 다시한번 새기고 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9. 여행쟁이 김군 2014.12.12 15: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녹두잘군 전봉준에 대해서 잘 알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래용~~~~

  10. 세상속에서 2014.12.12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잠시 들려서 포스팅 잘봤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수고하세요.

  11. 유라준 2014.12.12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동학혁명은 우리 역사에서 큰 의미, 그리고 아쉬운 의미를 가지고 있죠.
    덕분에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