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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증산도 도전 - 중일전쟁(태평양전쟁)

by 도생(道生) 2016. 1. 14.

증산도 도전道典 - 20세기 아시아 최대 전쟁 중일전쟁(태평양전쟁)

 

 

 

 

 

 

 

 

 

 

1905년 한반도와 만주 등 지배권을 둘러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한 일본 제국주의는 만주에 철도 부설권 등의 권익을 차지하며 남만주철도회사를 설립하고 일본군을 주둔시킨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탄한 일본 제국주의는 호시탐탐 중국 대륙 진출 기회를 엿보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을 만든다.

 

 

 

 

 

 

 

 

 

 

일본과 중국(청나라)은 1894년에서 1895년에 걸쳐 일어난 청일전쟁 이후 두 번째로 맞붙게 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전쟁이라기보다는 간헐적 전투와 교전만 있었다. 그러다 1937년 노구교(일명 마르코 폴로의 다리) 사건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은 전면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중일전쟁은 20세기 들어 아시아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바로 중일전쟁이다.

서양에서는 이를 제2차 중일전쟁(제1차는 청일전쟁)이라 하였고, 중국에서는 중국 항일전쟁이라 하였으며, 일본에서는 일중전쟁 또는 지나 사변이라 한다.

 

 

 

 

 

 

 

 

 

 

 

노구교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벌어진 중일전쟁이 시작된 뒤 10여 일 만에 중화민국 수도 남경(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벌인다. 이른바 난징(남경)대학살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 난징대학살을 약 80년이 중국은 다 된 지금도 일제의 만행과 나라의 수치를 아직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있으며 당시 약 30만 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다.

 

 

 

 

"장차 일청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하고 말 것이요,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증산도 도전道典 5:405:1~2)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일본은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과 중국의 중일전쟁, 그리고 동아시아와 미국에까지 마수를 뻗친 일본에 의해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된다.

 

1941년 일본은 미국 하와이의 오아후 섬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으로 들어가며 헤어나올 수 없는 늪 속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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