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로 세계를 제패한 한국이 낳은 무도인, 극진가라데(공수도) 창시자,
전설이 된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최영의, 大山培達 오오야마 마쓰다츠) 명언
일본의 공수도(가라데)는 오키나와 지방 무인들이 중국 남권을 기반으로 만든 무술로 20세기 초 일본 공수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후나코시 기친에 의해 일본 본토에 전수되었다고 한다. 후나코시 기친은 가라데(공수도)를 가르치는 송도관 공수도(松濤館 空手道)를 만든다.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무도인으로 전설이 된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최영의)는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최배달(최영의)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조종사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나시 소년 항공학교에 입학하였다.
최배달은 소년 항공학교 재학 중이던 1939년 일본 송도관 공수도에서 가라데에 입문하여 무도인의 첫발을 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과 일본 패망은 일본 국민뿐 아니라 최배달에게도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게 한다.
그 어려운 과정에서도 최배달은 전일본 가라데 선수권대회를 제패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 여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미국 군인을 폭행하는 바람에 미군에게 쫓기는 등 최배달의 삶은 극에 몰리게 된다.
최배달은 지바현 남부 기요즈미 산으로 입산하여 약 20개월 동안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가며 피나는 훈련을 한다.
에도 막부 시대 일본의 전설적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술에 대한 내용이 담긴 오륜서를 읽으며 무도인으로서 무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열망은 극진가라데라는 모습으로 태어난다. 50여 마리의 황소와 격투를 벌여 황소 뿔을 꺾어 버리고 그 중 3마리는 즉사할 정도로 바람의 파이터 전설을 만들어 나갔다.
최배달(최영의)는 자신의 무예에 온 힘을 다하였다. 자신이 창시한 극진가라데로 이른바 도장 깨기로 일본의 가라데 10대 문파를 모두 격파하고 나서 세계 무술인과의 100여 차례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여 무패의 기록으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파이터가 된다.
1953년 최배달은 도쿄에 오야마 도장을 열었고 1957년에야 비로소 극진(極眞)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나오게 된다.
1964년 국제가라데연맹 극진회관을 창설하여 극진가라데를 지구촌으로 전파하여 140여 나라에 천만 명에 육박하는 수련생이 있다고 한다. 최배달은 무도인으로는 드물게 62권의 많은 책을 썼다.
최배달은 일본의 전설적인 유도왕이며 유도의 귀신이라 불린 기무라 마사히코의 소개로 유도를 배우며 무술의 기본기를 익히기도 하였다. 기무라 마사히코는 유도를 바탕으로 프로레슬링으로 입문하였고 역도산에게 패배하게 된다.
일본 유도계에는 '기무라 전에 기무라 없고, 기무라 후에 기무라 없다.'라는 말이 회자하였는데
기무라 마사히코는 최배달에 대해 "최배달 앞에 최배달 없고, 최배달 뒤에 최배달 없다."라고 하며 최배달(최영의)을 최고의 무도인으로 인정했다.
극진가라데 창시자이며 세계 최고의 파이터 최배달은 1994년 향년 72세로 전설의 파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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