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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일본의 국민적 영웅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 역도산

by 도생(道生) 2016. 2. 28.

한국이 낳은 일본의 국민적 영웅

프로레슬링 헤비급 세계 챔피언 역도산(力道山 리키도잔, 본명: 김신락)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스포츠는 단연 프로레슬링이었다.

 

지금처럼 텔레비전이 가정마다 보급되기 전이었지만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라디오와 텔레비전 앞에 모여 프로레슬링 경기를 관람하기에 길거리는 한산할 정도였다.

당시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 박치기왕 김일 선수는 대한민국의 국민적 영웅이었다.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 김일 선수의 스승 역도산은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함경남도 흥원군에서 태어나 일본에 건너가 레슬링으로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된 사나이, 일본 레슬링의 전설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체격과 힘이 좋았던 역도산은 발군의 실력으로 조선 씨름 대회에서 우승한다.

역도산의 탁월한 실력을 눈여일본인의 눈에 띄어 좀 더 큰 무대인 일본에서 활동할 것을 권유받아 일본으로 건너간다.

 

 

 

 

 

 

 

 

 

 

 

1940년 일본 이름 모모타 미츠히로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고, 역도산이란 이름으로 스모계인 진출해 뛰어난 실력으로 승승장구하며 3위인 세케와케까지 올랐으나 더 이상은 오를 수 없었다.

 

실력은 스모 최고자리인 요코즈나를 하고도 남았으나 일본인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스모 규정 때문에 역도산은 스모 선수의 상징인 칼로 마게(일종의 상투)를 잘라버리고 스모를 그만두게 된다.

 

 

일본인이 아닌 조선 출신의 역도산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방황하다가 우연히 프로레슬링을 접하고 1951년 레슬링으로 진로를 바꾼다.

 

 

 

 

 

 

 

 

 

 

미국에서 레슬링의 여러 기술을 배워 일본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키며 일본의 국민적 영웅으로 한발 다가서며 1953년 일본 프로레슬링협회를 설립하였다

 

 

역도산의 주특기는 가라테에서 배워 자신의 기술로 만든 가라데 촙이었다.

1954년 미국의 샤프 형제를 초청해 역도산은 기무라 마사히코와 짝을 이뤄 승리를 거뒀다. 역도산은 미국 프로레슬러를 때려눕히며 일본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일본 선수들을 때려눕히던 미국 프로레슬러를 당수로 때려눕힌 장면은 일본인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줬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절망과 실의에 빠져 열등감에 몸부림치던 일본인의 마음을 잊게 해주었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미국 샤프 형제를 이겼던 일본 유도왕 출신의 기무라 마사히코와 대결를 벌이게 된다.

 

무적으로 소문났던 기무라 마사히코는 일본 최고의 유도 실력에 최배달(최영의)에게 기술을 배워 출전하였으나 결과는 역도산의 승리로 끝났다.

 

 

 

 

 

 

 

 

 

 

 

역도산은 1957년 '프로레슬링의 전설'로 대적할 사람이 없었던 '프로레슬링의 제우스'로 불리던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 루 테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프로레슬링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는 사업가로도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1963년 30년 만에 고국 땅을 처음 밟고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판문점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1968년 12월 8일 도쿄 나이트클럽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폭행으로 이어지면서 칼에 복부를 찔렸다.

상처가 깊지 않아 치료를 받아 회복하던 역도산은 복막염이 원인이 되어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불과 39세였다.

 

역도산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음모론이 나돌기 시작했고 부인과 아들, 그리고 비서는 죽음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역도산의 마취를 담당했던 의사는 수십 년이 시간이 흐른 뒤 역도산의 죽음은 의료사고라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레슬링 영웅 김일, 자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 등이 역도산의 제자로 그 이름을 떨쳤다.

 

역도산이 조선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았다는 말도 있으나 전후 패전국 국민으로 실의에 빠져 살던 일본인들에게 일본 왕 다음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국민적 영웅이 조선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일본사회의 암묵적인 묵계였다고도 한다.

 

 

역도산은 일본에서 조선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에 올라 대한민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에서도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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