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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선학교, 우주1년

인간의 본심(오상지덕) - 인의예지신: 신信

by 도생(道生) 2016. 5. 12.

인간의 본심(本心), 오상지덕五常之德 - 인의예지신: 신信

 

 

 

 

 

 

 

 

 

 

 

 

인간의 본심(本心), 인감의 참마음으로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곧 오상지덕(五常之德)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자리가 신(信)입니다.

 

 

 

신(信)은 인도의 사덕(四德)인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사단(四端)을 사단(四端, 인의예지)이게 하는 터전입니다.

 

오상지덕의 신(信)은 인의예지 사단(四端)을 온전하게 드러나게 하는 진실성 자체를 뜻합니다.

 

오상지덕(五常之德)의 신(信)은 인의예지 사단(四端)과는 달리 구체적인 양상을 갖지 않습니다.

 

 

 

 

 

 

 

 

 

『설문說文』에서 "신(信)은 성실함(誠實)의 의미이다. 사람(人)과 말(言)의 회의자(會意字)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信)이란 사람의 말이 거짓 없이 실천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주자는 이를 두고 '말과(言) 행위(行)가 서로 일치되는 것'이라고 풀이하였습니다.

이처럼 말과 행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 삶에서 찾아보면 대표적인 윤리가 바로 '붕우유신(朋友有信)입니다.

 

 

 

신(信)은 하나님의 조화 생명의 토(土) 자리로서 천지의 정신인 원형이정(元亨利貞)에 배속되지 않습니다.

 

오직 한마음으로 거짓됨이 털끝 하나만큼도 없이 한결같이 정성스럽고 진실함이 바로 신(信)이며, 신(信)은 하나님의 조화 생명 자리, 토(土)의 덕성에 근거합니다.

 

 

신(信)은 토(土)의 정신을 이어받은 덕성으로 인의예지의 근간이 되며, 하나님의 마음자리로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원형이정과 인의예지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가 원형이정과 인의예지로 온전하게 발현됩니다.

 

인간의 본성, 인간의 참마음으로서 인(仁)과 의(義)와 예(禮)와 지(智)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그 일을 수행하게 하는 밑바탕이 바로 신(信)입니다.

 

 

 

 

 

 

 

 

 

 

인간의 본심, 인의예지신의 오상지덕(五常之德)에서 성실성으로서의 신(信)은 초기에는 속일 수 없는 대상인 신(神)에 대한 인간의 자세를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윗사람이 백성을 이롭게 할 생각을 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제관(祭官)이 사실대로 신(神)에게 고하는 것을 신(信)'이라 했습니다.

 

 

주역에서 '신(信)은 인간 내면에서 서로의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부(孚, 참되고 믿음성 있을 부)'로 표현되는데, 정이천은 이를 '성신(誠信)이 속에 충실한 상태로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신(信) 개념의 이러한 심화는 공자의 충신(忠信)을 거쳐 중용성(誠)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성자(誠者)는 천지도야(天之道也)요 성지자(誠之者)는 인지도야(人之道也)라.

정성스러움(眞)은 하늘의 도(道, 길, 마음)요, 정성스러움(眞)을 행하는 것은 인간의 도(道, 길, 마음)이다."

정성(誠)은 충신(忠信)이며, 충신은 성신(誠信)이며, 성신(誠信)은 참된 신(眞信)입니다.

 

 

 

 

 

 

 

 

 

 

 

 

북계자의北溪字義

 

 

신재성지시사자(信在性只是四者)가  도실저도리(都實底道理)라. 

급발출래(及發出來)에  편위충신지신(便爲忠信之信)라.

유내면유차신(由內面有此信)라.  고(故)로  발출래(發出來)에  방유충신지신(方有忠信之信)이라.

충신지시일물(忠信只是一物)이니

이판작이자(而判作二者)는  편시신지단서(便是信之端緖)가 시통외면응접사물(是統外面應接事物)하여  발원처설(發原處說)이라.

 

신(信)은 성(性)에서 이 네 가지가 모두 실질적 도리임을 의미할 따름이다.

드러나는 경우에만 충신(忠信)이라고 말할 때의 그 신(信)이 된다.

마음속에 신(信)이 있기 때문에 드러날 때에 충신의 신(信)이 된다.

충신은 한 가지인데도 두 개로 나누어 보는 것은 신(信)이 단서가 곧 외부에서 사물을 대하는 행위 전체를 통괄하는 근원임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신(信, Faith)

 

 

신(信)은 믿음과 정성

 

인간의 본심, 오상지덕(五常之德)로서 인의예지신은 인(仁)에서 발출하여 지의예(智義禮)로 유행할 때, 충심으로 믿고 정성껏 하는 신(信)이 밑바탕이 됩니다.

 

 

 

신(信)은 참(진眞)의 의미

 

인간의 본심으로서 인의예지의 실리(實理)가 바로 신(信)입니다.

신(信)은 오상지덕에서 인의예지의 바탕이며 근간이기 때문에 인의예지가 신(信)이 없이는 내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신(信)은 실제로 이행하는 것

 

신(信)은 성심껏 실질적으로 행하여 거짓되지 않는 것입니다.

 

 

 

신(信)은 인도의 사덕, 인의예지의 바탕이자 체(體)

 

신(信)은 토(土)의 덕성으로 나머지 인의예지 사덕(四德)의 근간이 되고 중축이 됩니다.

신(信)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인의예지 사덕 속에서 늘 함께 작용합니다.

 

 

 

 

 

 

 

 

 

 

 

 

개벽실제상황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강력하게 키우는 힘이 있다. 바로 중앙의 토심, 즉 믿음(信)이다.

 

 "농가에서 추수한 뒤에 곡식 종자를 가려 두는 것은 오직 토지를 믿는 연고니 이것이 곧 믿음의 길(信路)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8:34:2)

 

토(土)는 천도 4덕(元亨利貞)의 근원이 되는 천지의 마음자리다.

가을개벽을 앞둔 인간은 반드시 강력한 천지의 토심(土心), 도심(道心)을 받아내려야 한다.

 

 

 

 

 

 

왜 그런가? 

가을천지로 들어가려면 화생토(火生土) → 토생금(土生金)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토(土) 자리는 신(神)의 세계로서 토심은 본심, 일심, 평화의 마음이며 만물을 조화시키는 마음이며 깨어 있는 마음이다.

 

토심은 선천 종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마음이며, 미국 사상가이자 명상가인 켄 윌버(Ken Wilber)가 강조하는 '변치 않는 항상 의식(constant consciousness)'이다. 토심(土心)은 상수(象數)로 말하면 동서남북, 네 공간과 춘하추동 사계절을 조화하는 조화궁의 15수(數)의 정신이다.

 

이제 선천 닫힌 우주의 개인주의, 자기중심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문화와 문화 사이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야 한다. 토(土)자리에 계신 상제님이 바로 토심(土心)의 주재자이시다.

 

 

 

 

 

 

 

 

 

상제님은 온 우주의 생명과 마음을 다스리시어 천지 만물과 인간이 한마음이 되는 길, 자연과 문명과 인간이 열매 맺는 성숙한 진리를 열어주셨다. 그 상제님 도의 무궁한 조화세계에 머물려는 인간의 순수 감성이 바로 인도 4덕의 근원인 '믿음'이다.

 

믿음이 강해야 순수 진리의식이 활연히 열리고 정의감이 솟구쳐서 선천의 묵은 기운을 과감하게 부수고 사물의 시비와 병든 천지, 그릇된 인간의 역사 질서를 바로잡아 신천지 새 문명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中

 

상제님은 늘 “파고 또 깊이 파라. 마음 얕은 것이 가장 큰 한(恨)이 된다.”(증산도 도전道典 6:3:1∼2)라고 강조하셨다.

 

앞 세상 조화낙원의 새 문화에서는 마음 얕은 것이 가장 큰 한이다. 마음 문이 크게 열리려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꼭 청수(淸水) 올리고 천지부모님께 성스럽게 절하고,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기도하라. 그렇게 해서 가을철 새 하늘의 성령을 받는 신앙을 해야 한다.

 

자꾸 절하고 참회하고 주문 잘 읽고 기도하고, 그러면 영대가 밝아진다. 천지가 밝아진다. 그래서 모든 일이 다 잘 된다. 개인 일도 풀리고 도장 일도 잘 풀린다. 천지 조화성령을 받는 공부, 그것이 바로 뾰족한 수다.

 

이 공부 되는 걸 다시 한마디로 하면, 뜻(의意)을 굳히는 것, 뜻을 체험하는 것이다.

 

 

 

 

 

 

 

 

 

 

 

큰 뜻을 품어라!

상제님 도에서 대의(大義), 큰 대 자 옳을 의 자, 이 대의가 원 우주의 마음이다.

 

우주의 도의 속마음. 수행할 때에는 큰 뜻, 우주의 큰 꿈, 우주의 마음자리를 품는다. 의지라고 하는 것은 이 의(意) 자에다가 뜻 지(志) 자를 쓴 것이다. 그러니까 천지의 중앙 오십토(五十土)의 토의 조화기운의 본성, 그걸 의(意)라고 한다.

 

 

 

모든 변화를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

모든 걸 조화하고 다스리고 하나가 되게 하고, 끊임없이 만물을 변화하게 하는 토(土)의 정신, 그 순수 변화의식 그게 의(意)의 뜻이다. 그런데 그 천지조화의 큰 뜻을 품었다고 할 때, 그 큰 뜻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없다.

 왜냐하면, 무극(無極)이니까.

 

 

주문 읽을 때, 공부할 때에도 그런 천지의 본래 마음자리, 도(道)의 큰 뜻을 딱 품는다.

하늘도 거기서 나오고 땅도 거기서 나오고 인간도 거기서 나오고 신명도 거기서 나온 본래의 도심(道心)을 그것이 온화한 마음으로 꽉 들어찬 것처럼 느껴질 때, 이 말씀을 들여다보라!

 

 

심야자(心也者)는 귀신지추기야(鬼神之樞機也)요 문호야(門戶也)요 도로야(道路也)라.

개폐추기( 開閉樞機)하고 출입문호(出入門戶)하고 왕래도로(往來道路)에

신(神)이 혹유선(或有善)하고 혹유악(或有惡)하니

선자사지(善者師之)하고 악자개지(惡者改之)하면

오심지추기문호도로(吾心之樞機門戶道路)는 대어천지(大於天地)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100:6, 7)

 

 

 

 

 

 

 

 

 

 

큰 뜻을 품는다는 게 뭐냐?

직접 느껴보라!

 

태을주 읽으면서 완전히 나도 잃어버리고 하늘과 땅과 내가 하나가 됐을 때, 기분이 극치로 좋다. 이른 새벽에 앉아서 한 네댓 시에 수도하다가 강력한 체험을 하면, 참 멋지다. “인간은 대우주다!” 이것을 깨닫는다.

 

“ 내가 우주다! 내 마음이 하늘과 땅과 같다!” 이렇게 돼야, 상제님 천지대업을 집행하는 일꾼의식을 가진다.

그래야 이 몸뚱어리 색신(色身)의 경계를 벗어나서 너의 본래 몸, 법신(法身)의 세계가 뭔지를 안다. 이 진리의 몸뚱어리는 우주와 같다. 인간의 영체, 정신세계, 생명의 몸뚱어리라는 게 우주와 같다.

 

 

사람 몸 색신(色身)은 끊임없이 바뀌면서 때가 되면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 썩어버리지만, 영체는 남는다.

그 영체의 본래 주인 되는 마음이 열려 하늘과 같은 의식이 되면, 법신의 경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상제님도 가끔 법신을 드러내 주시지 않는가. 태을주를 읽어야 그걸 안다.

 

한 일주일 정도는, “생활 속에서 집중하면서 밤낮으로 공부한다.” 이래야 한다.

그런데 하루에 한두 시간도 마음속으로 안 읽고 다니면서, 일주일 죽고 살기로 몰입하면 뭐 좀 오지 않겠나 하겠지만, 소나기식 공부로 몸을 괴롭히면 그만큼 힘들기만 하다. 평소에 준비돼서 공부하면, 하루만 해도 단박에 신도(神道)세계 체험도 하고, 개벽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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