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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월남전쟁) - 미국 참전(한국군 파병)

by 도생 2016. 8. 27.

미국이 전쟁에서 최초로 패전한 베트남 전쟁(월남전쟁) - 미국 참전(한국군 파병)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한민족이 타의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됐고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3년여의 전쟁을 겼었다.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국은 승전도 패전도 아닌 휴전(정전)협정을 맺었다. 

 

전쟁으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안겨준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이념 대결의 장이기도 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했다.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 전쟁(월남전) 역시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의 이념 대결의 장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북한은 공산주의 북베트남을 무기와 군수물자를 지원했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남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했다.

 

 

 

 

 

 

 

 

 

 

 

 

 

 

베트남 전쟁(월남전쟁)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맞붙은 면에서 혹자는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도 한다.

 

베트남 전쟁(월남전쟁)은 미국과 프랑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주의 체제 남베트남 정부와 소련과 중국의 무기와 군사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 체제 북베트남의 한판 전쟁으로 공산주의 진영이 자본주의 진영에게 승리한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나서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베트남과 프랑스와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른 끝에 베트남은 북쪽은 공산주의 체제로 남쪽은 자본주의 체제로 남북이 분단된다.

 

미국은 인도차이나 전쟁 중에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과 자국의 국익을 위해 미국의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있었다.

 

 

 

 

 

 

 

 

 

 

 

 

 

 

1964년 8월 2일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통킹만에 있던 미국 구축함 매독스 호를 공격했다는 일명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1965년 2월부터 베트남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함으로써 베트남 전쟁(월남전쟁)에 전격적으로 참전한다.

  

 

남베트남에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한국, 태국 등 자본주의 진영과 북베트남에는 소련과 중국, 북한 등의 공산주의 진영이 각기 지원을 한 베트남 내전이 인도차이나 국제전쟁으로 커졌다.

 

 

 

 

 

 

 

 

 

 

 

 

 

 

 

민간인 학살로 인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한 전쟁, 미국의 피해 증가와 미국 사회와 국제사회의 반전 여론에 존슨 미국 대통령은 1968년 급기야 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지를 선언한다.

 

그리고 베트남전 미군 철수를 공약한 닉슨이 1969년 미국 대통령이 된다. 전쟁을 끝낸다는 닉슨 대통령은 공약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8월 미국 대통령을 사임하기 한 해 전에야 가서 이루어진다. 

 

 

 

 

 

 

 

 

 

 

 

 

 

 

 

존슨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 한국군 파병 요청에 대한민국은 1964년 9월 11일 선발대가 부산항을 출발하여 9월 22일 베트남 사이공에 도착했다.

 

1966년 3월 7일 베트남 전쟁(월남전쟁)에 한국군 파병을 전제로 한 대한민국과 미국은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며 대한민국은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

 

 

 

의무 장교, 간호 장교, 의무병, 태권도 교관 등이 1차로 파병되었고, 이후 비둘기부대, 십자성부대와 같은 공병 등 군수 지원 부대, 그리고 청룡부대(해병대), 맹호부대(육군), 백마부대(육군) 등의 전투 부대가 파병되었다.

 

한국이 국군 파병을 시작한 1965년부터 한국군이 철수한 1973년까지 베트남 전쟁 중 총 32만 명의 한국군이 파병되었고, 한국군 전사자는 약 5천 명, 부상자 약 1만여 명이 발생하였다.

 

 

미국이 무차별적으로 뿌린 고엽제로 인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다가 사망한 희생자와 피해자, 그리고 고엽제 후유증이 유전된 후손들은 수는 정확한 집계조차 어렵다.

 

 

 

 

 

 

 

 

 

 

 

 

 

 

 

1973년 1월 27일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그리고 미국 사이에 전쟁 종결의 평화협정이 조인된다.

3월 29일 미국은 닉슨 대통령의 전쟁 종결 선언과 함께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미국의 철수와 함께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점령당하면서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으로 바뀐다.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남북의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3백 만명이 사망하였다.

베트남 전쟁(월남전쟁)에서 미국이 베트남과 인근 인도차이나에 투하한 폭탄은 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7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전역에 매설한 지뢰와 폭탄 불발탄을 제거하는데 약 3백 년이 걸린다고 하니 한마디로 베트남 전쟁은 무자비한 파괴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월남전쟁)에 최대 약 55만 명이 동시에 베트남에 투입하며 전쟁에 참전하였고, 5만 8천여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였고, 수십만 명에 이르는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미국이 치른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전쟁이 베트남전쟁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월남전쟁)에 참전하여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한, 미국 전쟁 역사상 치욕적인 참패를 당한 전쟁으로 기록되었고,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참전희생자와 가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미국이 참전하여 최초로 패전한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이득을 본 건 다름 아닌 미국의 군산복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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