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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5년 일본 침략전쟁, 1592년 임진왜란

by 도생(道生) 2016. 11. 13.

선조 25년 일본의 침략전쟁,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전쟁에 대한 아무 준비가 없던 조선이 일본 왜군에 의해 한반도가 쑥대밭이 된 침략전쟁이다.

일본은 열도 안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 120년간 자기들끼리 전쟁을 지속했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많은 전쟁 경험과 조직화한 군대로 조선을 침략했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1592년에서 1597년 재침한 정유재란까지 포함하여 6년 7개월(약 7년)의 일본 침략전쟁으로 말한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구분하기도 한다.

 

 

 

조선 13대 왕 명종대왕 이환(재위 1545~1567)이 후사 없이 승하하면서 방계였던 하성군 이연이 조선 14대 왕(재위 1567~1608)으로 즉위한다.

 

 

 

 

조선은 1392년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세웠다.

이성계가 개국한 이래 조선은 200년 동안 국경 인근에서 작은 전쟁과 왜구의 노략질은 있었지만, 나라끼리 전면전을 하는 큰 전쟁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국방은 남쪽보다는 북쪽 변방에 치중되어 있었고, 큰 전쟁을 준비한 대비책은 없었다.

 

 

명종 10년(1555)에 왜구가 전라도 해안가를 습격한 을묘왜변으로 군사 체제를 변화시켰으나 국지전에 대비한 것이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과 같은 전쟁상황을 대비하기에는 부족했다.

 

 

 

 

 

 

 

 

 

 

 

 

 

 

선조가 즉위하기 전 선대왕 명종 재위 23년간은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파가 권력을 전횡하여 국정이 문란해졌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하고 국정을 쇄신하기 시작했으나, 1575년 사림세력은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어 붕당정치가 시작됐고, 급기야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까지 일어났다. 부국강병을 위해 국정에 전념해야 할 조정 신료들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전 이미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였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4월 13일 20만 명의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전쟁 임진왜란의 시작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왜군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을 침공하고 파죽지세로 북상하며 한양 도성으로 진격한 왜군은 5월 3일에 한양을 점령했다.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고, 신하들도 모두 도망갔다.

1592년 6월 13일 평양성까지 함락당하면서 선조는 의주로 도망간다.

 

 

 

 

 

 

 

 

 

 

 

 

 

 

풍신수길의 꿈처럼 명나라로 가는 길이 쉽게 열릴 것 같았다.

그러나 조선 팔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왜군의 해상 진출로와 보급로는 전라 좌수사 이순신 장군에 의해 완전히 차단됐다.

 

 

 

선조의 요청으로 명나라는 1차 원군 조승훈 부대와 2차 원군 이여송 부대 등 4만여 명의 지원군을 보냈다.

조선과 명나라 군대가 연합하여 평양성을 탈환하였으나 한동안 전선은 고착화 되었고, 일본군은 남쪽으로 후퇴한다. 

 

 

 

왜군은 현재의 울산에서 순천에 이르는 해안가에 왜성을 쌓고 강화 회담을 지켜본다.

강화회담 도중 지난 임진년 1차 진주성전투에서 일본에 큰 치욕을 안겨준 진주성을 공격한다.

1593년 6월 20일에서 29일까지 지속한 2차 진주성 전투는 일본군이 승리했고, 조선 군인과 백성 약 7만 명이 몰살을 당했다.

 

 

 

 

 

 

 

 

 

 

 

 

 

 

명나라 심유경은 독자적으로 일본과 화의 교섭을 한다. 풍신수길은 심유경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한다.

명나라 황녀를 일본 왕비로 보낼 것, 조선 8도 중 4도를 일본에 줄 것, 무역 허가서 감합인(勘合印)을 복원할 것, 조선 왕자와 대신 12명을 일본에 인질로 보낼 것 등이었다.

 

얼토당토않은 풍신수길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심유경은 풍신수길이 일본 왕으로 책봉해 줄 것과 조공을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며 일본과 강화 협상을 성공시킨 것처럼 명나라 황제에게 거짓말을 한다.

 

 

 

 

1596년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 풍신수길을 일본 왕으로 책봉하는 사신을 보낸다.

풍신수길은 심유경에게 속은 것을 알고 1597년 조선을 다시 침략한다.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심유경은 황제를 기만한 죄로 도망가다 붙잡혀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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