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한국)통감부와 일제 식민통치 조선총독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조선 통감부(한국통감부)와 일제 식민통치 중추기관 조선총독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6년 조선 통감부를 설치되면서 일제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강압 대한제국은 국권이 강탈당하고 조선 통감부는 해체되고, 조선총독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식민통치가 시작된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 특명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 주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는 을사오적인 이완용, 이근택, 박제순, 이지용, 권중현 등과 결탁하여 고종황제를 위협하고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았다.

 

 

 

 

 

 

 

 

 

 

 

 

 

1906년 2월 1일 일본 국왕의 직속 기관 조선 통감부(한국통감부)가 설치되고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조선 통감이 된다. 조선 통감부는 친일파 관료 등용하고 친일 내각을 세우는 대한제국 내정에까지 간섭한다.

 

 

조선 통감부는 1907년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 경찰, 군사, 행정, 입법 등을 장악하며 1910년 마침내 권을 침탈한다.

 

1910년 8월 22일 조선 통감부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은 강제병합조약에 서명한다.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은 조선 통감부는 8월 29일 강제병합을 공표한다.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8월 29일 '한국의 국호를 조선으로 한다.'는 칙령 318호와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 319호를 공포했다.

 

칙령 319호에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조선 총독을 두어 (일본 국왕) 위임 범위 내에서 육군과 해군을 통솔하여 일체의 정무를 통할하게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기존에 있던 일제의 한국통감부와 대한제국의 중앙과 지방의 기관을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흡수했다.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 중추기관으로서 입법, 사법, 행정, 군사 등 일체의 정무를 통할하는 최고 행정 관청이 된다.

 

 

 

경술국치로 분노한 대한의 백성들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일제의 식민통치 중추기관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 지배체제를 굳히기 위해 무력으로 제압하는 이른바 무단정치를 한다.

 

 

 

 

 

 

 

 

 

 

 

 

 

 

헌병 경찰제, 즉결 처분, 회사령, 산림령, 광업령, 교육령 발표, 집회 제한, 언론 통제, 일본어 사용, 토지와 임야 조사행정구역 개편 등 총칼을 앞세운 헌병들의 막강한 힘으로 치안을 통제하고, 백성의 삶의 기반이 되는 경제수탈, 민족의 전통과 풍습, 말과 글을 없애는 등 조선 백성을 이른 황국신민화하는 민족말살 작업에 들어간다.

 

    

일제의 식민통치 중추기관 조선총독부는 1919년 3.1만세 운동 이후 1920년대부터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소위 문화통치정책을 펼친다. 일제는 식민통치체제를 무단정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한다.

겉으로 유화책을 쓰는 것 같았지만, 내적으로는 이간과 분열을 획책하면서 철저하게 민족의 리부터 말살하기 시작한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영구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1916년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 1921년 조선총독부 훈령 64호로 '조선사편찬위원회'가 1925년 6월 조선총독부 칙령 218호로 '조선사편수회'로 확대한다.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 조선사편찬위원회, 조선사편찬회는 철저하게 우리의 역사를 왜곡, 날조한다. 

 

 

 

일제의 식민통치 중추기관 조선총독부는 산하에 여러 기관을 두고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전통, 종교, 역사, 문화 등 국가와 민족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조선총독부의 민족개조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이 역사 조작과 주입교육이다.

 

 

1925년 조선사편수회로 명칭을 바꾼 뒤 역사 조작을 통해 조선 백성의 정신을 개조하였고,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교육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가장 역점을 둔 조선사편수회 정책이 가장 성공을 거두었고, 그들이 만든 거짓 역사는 아직도 여과 없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그대로 배우고 있다.

 

 

 

 

 

 

 

 

 

 

 

 

 

1930년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 중추기관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방식을 문화통치에서 민족말살정책으로 바꾼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하였고, 침략 야욕이 강한 일본 제국주의는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등을 일으키며 전쟁을 확대해 나갔다. 조선총독부는 자원수탈, 내선일체, 황민화 정책, 신사참배 강요, 강제징집, 강제노역, 위안부 강제동원, 일본식 성명 강요, 문화말살 등 민족의 뿌리를 뽑는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했다.

 

 

 

 

 

 

 

 

 

 

 

 

 

경술국치로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지기 전 한국통감부(조선 통감부) 통감은 총 3명이다.

한국통감부 1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다. 

 

 

 

일제 식민통치 중추기관 조선총독부 총독은 1대에서 9대까지 총 8명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 총독은,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 4대 총독 야마나시 한조, 5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 6대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 7대 총독 미나미 지로, 8대 총독 고이소 구니아키, 9대 총독 아베 노부유키다.

 

 

 

해군 대장 출신인 사이토 마코토는 3, 5대 총독을 두 번 지냈고, 우가키 가즈시케는 3대와 4대 총독 사이에 임시 총독과 6대 총독을 지냈다. 사이토 마코토를 제외한 나머지 총독은 모두 육군 대장 출신이다.

 

 

 

 

 

 

 

 

 

 

 

 

일본 제국주의와 대한제국은 1876년 불평등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이래, 1894년 갑오 동학농민혁명에서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일본 제국주의 총칼 아래 우리 민족 약 8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 독살과 명성황후 시해를 비롯하여 의병, 독립군, 항일운동가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강제노역, 강제징집, 위안부 강제동원, 자원 착취, 보복 학살 등의 만행을 자행했다.

 

일제의 국권침탈과 민족 대학살,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의 중심에는 한국통감부(조선 통감부)와 일제 식민통치 중추기관 조선총독부가 있었다.

 

 

 

 

 

 

 

 

 

 

 

 

 

식민통치의 사령탑 조선총독부 본부 건물은 대한제국(조선)의 법궁 경복궁 정문(광화문) 일대를 허물고 1926년 완공되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한 뒤 남한을 통치한 미 군정 청사(Capital Hall)로 사용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조선총독부는 해체되었고, 남한을 점령한 미 군정에 통치권이 인수·인계된다.

미 군정의 통치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수립하면서 끝났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행정부 청사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다.

중앙청 건물은 대한민국 행정부 사령탑이면서 우리나라 오욕의 상징이었으며, 문민정부 때인 1996년 완전히 철거되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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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결원 2017.03.11 0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2. 뉴론7 2017.03.11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이 지나도 이런 일들은 기억해야 하는데
    점점 더 사라지네요 그래서 헬조선이라 해외로
    가서 산다고 하나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