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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세종대왕 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반포 한글날

by 도생(道生) 2017. 10. 8.

조선의 제4대 왕 세종대왕 이도의 한글 창제, 세종 25년(1443) 음력 12월 30일의 한글 창제일

세종 28년(1446) 음력 9월 10일(양력 10월 9일) 훈민정음 반포의 한글날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된 한글날은 실제 훈민정음 반포일은 아니다.

한글날이 훈민정음 반포일로 지정되는 과정은 다소 복잡하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반포는 다르다.

 

 

일제강점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기념하기 위해 민간단체가 정한 한글날은 일차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반포 날짜를 추정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한글 창제는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서력 1443, 계해년)년 12월 30일(경술)에 '상친제언문이십팔자(上親制諺文二十八字,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라는 기록과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서력 1446, 병인년) 음력 9월 29일에 임금(세종대왕)께서 직접 쓴 글, 즉 '어제(御製)와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이란 기록을 토대로 정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음력 9월 29일의 '훈민정음성(訓民正音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과 '어제왈(御製曰, 임금께서 지은 글에 이르기를)', 그리고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의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양력 11월 4일에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던 순수 민간단체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의 전신)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1446년 음력 9월 29일, 갑오일)한 기념일이라고 '가갸날'이란 이름으로 최초의 한글날을 처음 정하게 된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해 정한 '가갸날'은 1927년 조선어연구회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면서 '한글날'과 '가갸날'이 혼용되어 사용된다.

 

 

 

일제강점기 민간이 자체적으로 지정한 날이다 보니 다수의 의견에 따라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양력 10월 29일이 훈민정음 반포일로 정한다. 그리고 다시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여 양력 10월 28일이 한글날이 된다.

 

서양은 1582년부터 오차 발생의 율리우스력(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반포 당시 역법)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사용했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이 발견되면서 다시 한글날 날짜가 조정된다.

'세종 28년 9월 상한(上澣)'이라는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 내용이 근거로 9월 상순이 끝나는 음력 9월 10일을 다시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바꾸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라는 순수 민간 한글 연구단체가 지정한 한글날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후 정권에 따라 법정 공휴일, 일반기념일, 국경일 등으로 바뀌었다.  

 

 

 

명칭과 기념 일자는 다르지만, 북한에도 한글날이 있다.

북한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일이 아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기념하여 양력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부르고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여 정해진 한글날은 음력 9월 29일 → 양력 10월 29일 → 양력 10월 28일 양력 10월 9일(음력 9월 10일)로 우여곡절의 제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종대왕의 한글과 고조선 가림토 문자 

http://gdlsg.tistory.com/809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庚戌)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9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이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일렀다.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갑오(甲午)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 中)

"계해년(세종 25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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