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

한韓민족의 역사를 철저하게 파괴한 일제 식민사학의 1세대와 2세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와 대부(代父)가 된 스승과 제자 이병도와 이기백 인연

 

 

 

 

 

 

 

 

 

 

 

 

 

일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신봉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이병도(1896~1989)와 이기백(1924~2004)의 위상은 매우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병도와 이기백의 이름 앞에는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입니다.

 

 

스승 이병도와 제자 이기백의 필생의 역작 <조선사대관>(한국사대관, 1948년)과 <한국사신론>(1967년, 1961년 국사신론의 개정판)은 모두 한국 통사(通史)로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 한국사를 결정지은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준 책입니다.

 

 

<조선사대관>의 저자이며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 역사 조작과 파괴에 직접 참여해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습니다. <한국사신론>의 저자이며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기백은 이병도의 제자이며 일본 와세다대학 후배이기도 합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태산북두) 이병도는 1896년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병도는 1916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해 1919년 졸업했습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갔습니다.

 

 

이병도는 해방 후 임시 교원양성소에서 교사 양성을 했으며, <국사 교본>을 만들어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1946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기백과 이병도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입니다.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던 이병도를 찾아가 이병도에게 역사를 공부하겠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기백이 이병도를 만난 것은 1941년 와세다 고등학원을 졸업하고 1942년 봄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확전되면서 일제가 재학 중인 대학생의 징병 연기 제도를 폐지하자 이기백은 1944년 봄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기백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1년여가 지난 1945년 5월 징집 영장을 받고 6월 20일에 만주 관동군에 입대했는데, 불과 2개월도 안 돼서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이기백은 약 5개월간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고향에서 몇 달간 머물렀고, 1946년 봄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온 이기백은 이병도를 찾아가 학업과 관련된 진로 문제를 상의했고, 1946년 가을 이병도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습니다.

 

 

1946년 가을 이기백이 서울대 사학과 3학년에 편입했는데, 1946년 6월 미 군정이 경성대, 경성의전, 치전, 법전, 경성 고공, 경성 고상, 경성 고농 등을 통합하는 국립대학안 및 국립서울대학교 신설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이 반대 데모를 했고, 1947년까지 동맹휴학에 들어가면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이 막상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은 했는데 정작 학교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배재와 용산 등의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서울대학교로부터 졸업논문을 제출하면 졸업을 인정해 준다고 하여 졸업논문을 제출해 서울대 사학과 졸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됐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은 와세다대학 사학과 재학 시 쓰다 소키치가 이끈 연구발표회에 늘 참석했고,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쓰다 소키치는 식민사학 이론을 만들어 우리 역사 조작과 말살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로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스승입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은 아주 작은 인연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일제 식민사학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와 배운 것이라고는 오직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일제 식민사학을 배운 것뿐인 한국 역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에 의해 대한의 역사가 난도질당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스승과 제자이기도 한 이병도와 이기백이 배운 역사란 모두 일제 식민사학이며, 이병도와 이기백이 쓴 역사는 모두 일제가 왜곡 조작 말살해 짜깁기한 식민사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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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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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블프라이스 2019.03.19 0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와 대부 이병도와 이기백 두 인물에 대해서 공부하고 갑니다^^

  2. kangdante 2019.03.19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년 동안 끊었던 역사를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복원을 못하고 있네요
    역사는 잃기는 쉬어도 찾기는 어렵습니다

  3. 청결원 2019.03.19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정보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