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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비문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의 유훈

by 도생(道生) 2020. 4. 25.

<대한민국 국회 환단고기 북콘서트> - 1부 대한大韓,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리다.

잃어버린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 광개토태왕비문과 고구려 창업 시조 고주몽 성제의 유훈

 

 

 

 

 

 

 

 

 

 

 

 

 

대한민국 보물 제722에서 국보 제322-1호와 2호로 승격된 소위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부르는 책은 서력 1145년 김부식을 비롯한 11인이 2년여를 공들인 끝에 편찬한 우리나라 역사서로 원표제명은 <삼국사三國史>입니다.

 

우리가 흔히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 출신으로 우리 역사 왜곡 조작에 앞장섰던 샤쿠오 슌조가 <삼국사三國史>를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번역한 후부터 일제는 의도적으로 '삼국사기'로 불러왔고, 광복을 맞은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가 '삼국사기'라고 주입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샤쿠오 슌조는 부산과 대구에서 교사로 활동했고 대구일보 창간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샤쿠오 슌조는 서울에 올라와 경성중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조선잡지사를 운영하면서 조선을 식민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조선에 관한 지식과 역사 연구가 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샤쿠오 슌조가 비록 역사학자의 정통코스를 밝아온 학자는 아니었지만,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장악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우리의 고문헌과 사료 등을 연구했고 28종 83책의 번역 출판을 주도했습니다.

 

샤큐오 슌조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 날조할 때 '조선통감부'와 '조선총독부'도 개입한 것을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책의 표지에는 분명하게 <삼국사三國史>라고 되어있지만, 대한민국 정부(문화재청)와 주류 강단사학계는 굳이 '삼국사기'라는 이름으로 보물과 국보로 등재했고 영원히 '삼국사기'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김부식의 <삼국사 - 고구려 본기>에는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가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가 동명성왕이라고 하면서명성왕과 고주몽 성제가 누가 봐도 동일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기록했습니다.

 

 

1883년 일본군 사카와 가게노부에 의해 발견된 광개토태왕비가 1,500년의 긴 역사의 잠에서 깨어났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깨어진 글자와 해석의 차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1,802자로 이루어진 광개토태왕 비문은 <환단고기>를 엮어 편찬한 운초 계연수 선생이 1898년 탁본을 떴을 때만 해도 117자만 파악이 어려웠는데, 1912년 다시 탁본을 떴을 때는 138자가 완전히 마멸되어 있었습니다.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태왕께서 잃어버린 옛 영토를 회복한 업적을 기록한 훈적비가 광개토태왕비이며 내용 전문을 광개토태왕 비문이라고 합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를 창업한 해모수 단군의 관계 및 고주몽 성제의 유훈(遺訓)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의 유훈을 그대로 받든 장수태왕은 광개토태왕 비문에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를 창업한 해모수 단군과의 관계와 고주몽 성제의 '이도여치以道輿' 유훈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아버지가 해모수라고 했는데,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환지십칠세손還至十七世孫,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이구등조二九登祚, 호위영락태왕號爲永樂太王" '다시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는데, 18세(391년)에 왕위에 오르셔서 칭호를 영락태왕이라 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서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뿐만 아니라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도 역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을 고구려의 태조(太祖)로 삼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주몽 성제는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17세손이며 고주몽 성제의 13세손이 광개토태왕입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 나와 있는 혈통을 역으로 올라가 보면 광개토태왕은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의 13세손이며, 고주몽 성제가 태조(太祖)로 삼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17세손이개토태이 됩니다. <삼국유사>도 그렇고 <삼국사기>도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 시조 해모수 단군을 부자(父子) 관계로 만든 것은 대한민국에서 국보로 지정된 역사서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 나와 있는 고주몽 성제의 유훈(遺訓)은 "이도여치以道輿治"입니다.

'도道로써 나라를 다스렸다'라는 "이도여치'는 장수태왕 때까지도 인류의 원형문화와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자가 깨어져 확인이 불가하든 석회 칠을 했든 상관없이 지난 1,500년 동안 광개토태왕 비문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글에 나와 있는 분명한 사실은 해모수 단군은 북부여의 시조이면서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뿐만 아니라 구 후손들도 모두 해모수 단군을 고구려의 시조인 태조(太祖)로 모셔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비문을 통해 우리는 인류 창세역사의 천지 광명문화가 온전히 전해져 고구려 장수태왕까지 전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大韓의 역사는 상고 시대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대의 역사와 근대의 역사까지 철저하게 왜곡, 조작, 말살되었습니다.

한韓민족의 상고 시대인 배달국과 단군조선 역사와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사의 고대사를 이어주는 나라가 바로 해모수 단군께서 창업하신 북부여입니다.

 

 

우리는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 날조된 소위 '주몽신화'와 드라마 '주몽' 등의 영향으로 해모수의 아들이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라고 알고 있지만, 해모수 단군은 북부여 창업 시조이시며,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의 고조부님이 되십니다.

동명왕(東明王)은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가 아니라 북부여 5세 단군이신 고두막한 단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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