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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유사역사학 비판

by 도생(道生) 2020. 4. 26.

<국회 환단고기 북콘서트> - 2부 대한,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리다.

대한大韓의 역사를 조작한 심장부,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유사역사학 비판

 

 

 

 

 

 

 

 

 

 

 

 

 

숭례문은 한양 도성을 출입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 중 남쪽에 위치한 성문이며 흥인지문은 동쪽에 위치한 성문입니다. 2008년 2월 10일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습니다.

 

숭례문(남대문)은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과 이후에도 과연 국보 1호로서 자격이 있는지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호, 2호, 3호라는 서열화를 떠나서 국보 1호와 보물 1호라는 상징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일제 잔재를 하루빨리 없애거나 수정해야 합니다.

 

 

 

흥인지문과 숭례문, 돈의문과 숙정문(홍지문, 숙청문)의 사대문(四大門)과 홍화문과 광희문, 소덕문과 창의문의 사소문(四小門)은 조선 창업의 일등공신 삼봉 정도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조선의 새 도읍으로 정한 후 만든 한양 도성의 4개 대문과 4개 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500여 년의 조선 역사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사대문과 사소문은 일본 제국주의가 한양을 현대적인 도시로 완전히 개조한다는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미 기능을 상실한 문을 제외하고 도심에 있던 문을 철거하려 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도시계획이라는 미명아래 철거계획을 수립했지만,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은 임진왜란 당시의 승전기념물이라는 이유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도시계획을 강행하면서도 두 대문을 남겨 놓은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최초로 입성한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남대문)을 통과했고, 흥인지문(동대문)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 입성 당시 통과한 문이라는 것입니다.

 

1926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대한제국의 황제가 집무를 보는 경복궁 근정전 바로 앞 광화문을 부수고 조선총독부를 세웠습니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 관보 고시를 통해 지정문화재에 멋대로 번호를 부여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흥인지문(남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했고, 흥인지문(동대문)을 보물 2호로 지정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보물은 1955년 국보로 승격되었고,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 1962년 숭례문(남대문)은 국보 1호, 흥인지문(동대문)은 보물 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일방적으로 지정한 보물 1호와 2호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근거도 없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는 일제 잔재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것을 그대로 인정한 꼴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민족말살정책을 실행하면서 1936년 일본의 신도(神道)와 외래종교를 제외한 우리 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묶고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사교와 사이비종교 등으로 매도하는 소위 '유사종교 해산령'을 내렸습니다.

 

식민통치 제1의 심장부 일제 조선총독부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고 민족의 정기를 완전하게 끊어버린 제2의 심장부가 조선사편수회입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일본 왕의 칙령으로 만들어진 총독 직할의 독립관청입니다.

 

 

 

1936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소위 유사종교 정책을 실행하면서 외적으로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흩어놓았으며, 1938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우리의 역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 조작한 <조선사 35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무력을 앞세워 우리 민족을 탄압했지만, 조선사편수회는 우리의 근본뿌리인 역사와 정신문화를 조작 말살한 일제 식민사학 이론을 만든 유사역사학의 본거지로 현재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뿌리가 됩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는 내로라하는 일제의 관변사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뿌리이며 일제 식민사학 탄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병도와 신석호 등이 맹활약하며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한 유사역사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1년 남짓 만에 유명무실해지면서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인 유사역사학은 두 어깨에 날개를 달고 거침없이 활개 쳤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일제 식민사학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한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면 일제강점기처럼 사이비역사학, 유사역사학이라고 매도하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들이 유사역사학이면서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잃어버리고 사라진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찾고자 하는 학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사역사학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해방 후 대한민국의 주류가 된 친일파와 친일파 후손을 보는 듯 합니다.

 

일제 조선총독부와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복원하여 우리의 참모습을 회복할 때 근본뿌리를 잃고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을 치유해 희망찬 미래를 열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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